불친절을 당할 의무까진 없어요

by 단기소년원송치

보호관찰소는 그 특성상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주로 오는 곳이다. 보호처분을 받은 사람들을 유죄라고 통칭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지만 어쨌든 그들도 혐의가 인정되어 보호처분을 받은 것이니 넓은 범위에서 유죄라고 하자.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대상자들을 잘 다루는지"가 능력 평가의 척도 중 하나인데, 좋게 말해서 다룬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대상자들에게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지 또는 얼마나 강경하게 대응하는지 정도의 의미로 보면 정확하다. 대 인권의 시대가 열려 20년 전처럼 대상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때릴 수는 없지만(옛날엔 정말 그랬다 카더라), 아직까지도 대상자들에게 '거칠게' 대할수록 왜인지 인정을 받는 분위기가 은근하게 깔려 있다. 소년원은 수용기관이다 보니 보호관찰소에 비해 그 정도가 훨씬 심해서, 아예 애들을 쥐 잡듯이 잡을수록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직 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해오다 보니 나 또한 은연중에 대상자들에게 친절할 필요 없고, 오히려 무리한 요구 또는 준수사항 위반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격하게 대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조 주임님은 대상자들한테 진짜 무섭게 하시는 거 같아요."라고 말하면 이 조직에서 필요한 인재로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 뿌듯했고, 예전 소년보호관찰을 하던 때 내가 담당했던 어떤 아이가 재범으로 재판을 앞두고 결정전 조사관에게 "차라리 시설 들어가게 해 주세요. 보호관찰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요."라고 말한 것을 두고두고 무용담처럼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현재 수강명령 부서에 있는 내가 맡은 대상자들 중 한 사람인 A가 있다. 내 전임자는 A가 생업을 이유로 자기가 참석 가능할 때만 자유롭게 와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허가해 주었고, A는 어떤 날은 3시간, 어떤 날은 5시간, 어떤 날은 아예 출석하지 않는 등 자기 시간 되는 대로 편하게(?) 교육을 들었다(보통 하루에 8시간씩 집행한다).


이처럼 전임자로부터 온건한 처우를 받아온 대상자를 인계받았을 때가 참 난감하다. 내 스타일대로 하자니 전임자는 그렇게 해주었는데 왜 이제는 안 되냐며 반발이 있을 것이 뻔하고, 진상에게 제대로 걸리면 민원을 넣을 소지까지 있다. 물론 <보호관찰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99%의 민원을 방어해 낼 수 있는 수단이 있지만 어쨌든 민원이 접수되는 것 자체가 귀찮고 부담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불만을 품은 대상자는 향후에도 집행지시에 삐딱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결국 전임자가 했던 대로 A에게 계속해서 분할집행을 허가했지만, 썩 마음이 내켜서 그리했던 것은 아니다. 속으로는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전임자는 도대체 왜 이렇게 허용적으로 했던 걸까, 등의 생각을 하며 내심 불만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A에게 수강 참석을 지시했고, A는 언제나처럼 일 때문에 이 날은 못 가고, 저 날은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고, 또 다른 날은 오후 2시까지만 들을 수 있고... 블라블라 말을 했다. 순간 '도대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모르겠네. 법원에서 받은 처분인데 이렇게도 경각심이 없나.' 하는 생각에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하, 참."하고 코웃음이 나왔다. 어찌어찌 통화가 끝났는데,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A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무관님, 근데 왜 저를 비웃으세요?"

"네?"

"아니, 아까 통화할 때 저 비웃으셨잖아요. 아니에요?"

"제가 언제 A씨를 비웃었나요?"

"제가 이러저러해서 조정을 신청한다고 하니까 비웃으셨잖아요."

아차. 코웃음을 쳤었지.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비웃는 것처럼 "느꼈다면" 미안하다고, "내겐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네가 기분이 그렇다면 사과할게"의 뉘앙스가 담긴 야비한 사과를 하고, "A씨가 법원에서 받은 처분인데도 자기 편할 때 들으려고 하는 태도가 황당해서 그랬다."라는 구차한 이유까지 덧붙여 끝까지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 야비한 사과이든 아니든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내가 숙이고 들어갔기 때문에 A도 더 항의를 하지는 않았고, 조정 신청을 위해 보호관찰소에 왔을 때도 그저 평상시처럼 내게 깍듯하게 대할 뿐, 우리 사이에 있었던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기에 나는 내심 안심했다. A는 민원을 넣지도 않았고, 그저 해프닝으로 여기고 조용히 넘어가 주었다.


이후 이 일에 대해 곱씹어보다가 나는 한 가지 생각에 닿았다. A는 법원에서 수강명령 처분을 받아 40시간의 교육을 받을 의무가 있을 뿐이지, 교육 일정 조정을 원한다는 이유로 수강명령 담당자에게 비웃음을 들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국민들은 수용자에게 냉난방이 제공된다는 사실에 분개하지만, 그들은 실형을 선고받았을 뿐 감옥 안에서 인권적인 처우를 받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다.

경찰에 입건되어 조사를 받는 사람도 피의자라는 이유로 무례한 언사를 당하거나, 유죄가 입증된 사람처럼 대우받을 이유는 없다.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에 다다르자 내가 A를 비웃은 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물론 보호관찰관이 대상자에게 마치 콜센터 직원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할 필요는 없으나, 굳이 불친절하게 대할 필요도 없다. 대상자의 조정신청을 승인할 수 없다면 그저 승인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면 될 뿐이다.


나는 앞으로 차라리 시설에 보내달라고 했던 소년 이야기를 자랑하지 않을 생각이다. 뭐 잘한 일이라고 떠들고 다니는가. 다음에 또 A 같은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볼 것이다.

"OOO씨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늦지 않고 알맞은 때에 집행을 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100점짜리 답안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코웃음을 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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