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관찰 대상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법원이나 보호관찰심사위원회에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사람들을 <보호관찰 대상자>라고 부른다. 같은 보호관찰 직원들끼리 대화할 때는 대상자라는 호칭을 쓰지만, 나는 보호관찰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대상자들에 대해 말할 때는 <고객, 클라이언트> 등의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대상자는 실무에서 쓰는 용어이므로 딱딱하고 사무적인 느낌인 반면, 고객이라고 부르는 순간 대화의 분위기가 환기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가댁 부모님들께서는 내가 대상자들을 고객이라고 부르는 것을 꽤나 즐거워하신다.
보호관찰 대상자들에 대해 말하려면 보호관찰이 도대체 뭘 하는 것인지를 짚고 가는 게 순서상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포털에 검색하면 적확한 정보가 나오지만 그걸 줄줄이 읊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나만의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보호관찰 처분이란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지 않는 대신에 일정 기간 동안 몇 가지를 지키면서 생활하라고 지시하는 것이고(예를 들면 야간에 외출 금지, 학교를 성실히 다닐 것,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 등등이고, 재범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보호관찰관은 대상자가 그 지시를 잘 지키면서 사는지 감독하다가 지키지 않는다면 판사에게 일러바치는 법적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보호관찰관은 사람의 신체적 자유를 제한해 달라는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꽤 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이 보호관찰관의 요청을 항상 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보호관찰관의 신청을 통해 재판이 열린다는 것만으로 대상자에겐 상당한 압박이 된다. 특히 소년범에 대한 수용시설 처분 신청은 웬만하면 받아들여지는 편이다. 성인 범죄자의 경우에는 법원이 좀 더 신중하고 까다롭게 판단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보호관찰 대상자들은 자신을 어딘가에 가둘 수도 있는 보호관찰관을 두려워할까?
답은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다."이다.
보호관찰관을 두려워하는 대상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두려워하지 않는다>가 <만만하게 여긴다>와 동의어는 아니다. 실상 그 중간의 회색지대인 대상자들이 대다수이다. 보호관찰관이 마법 부리듯 오늘 갑자기 나를 수갑 채워 가둘 수 있는 건 아니니 특별히 두려워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만하게 대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니까.
보호관찰에 순응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악의는 없으나 그냥 생활습관이 나태하고 경각심이 부족해 지시사항을 지키지 않는 대상자, 교묘하게 보호관찰관의 허점을 파고들거나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편하게 지내보려고 하는 대상자, 대놓고 <네가 뭔데 내 인생에 사사건건 간섭이냐>는 불만을 숨기지 않는 대상자, 태도는 깍듯한데 지시사항은 안 지키는 대상자, 반대로 지시사항은 잘 지켜서 태클걸 건더기는 없는데 태도가 불량한 대상자, 첫 신고접수하는 날부터 판결 내용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대상자....(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냐고요) 기타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대상자들은 적어도 내 앞에서는 고분고분한 편이다. 다만 입직한 지 5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은 바로 대상자들이 범죄자들이란 사실이다.
대상자들은 당연히 범죄자들인데, 그게 왜 적응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대상자가 보호관찰 선고를 받고 7일 간 본인과 검사가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되면 법원에서 판결문을 보호관찰소로 보내준다. 일단 대상자가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게 맞는지, 판사가 지키라고 한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범죄사실을 읽어본다.
여러 종류의 범죄들 중에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나 사기 등은 느낌이 다르다. 범죄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물기 없는 문체로 작성되어 있는데, 대인범죄나 사기의 경우 그런 문체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심과 고통이 전달되는 기분이다. 내가 살면서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사기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대상자들 중 가장 흔한 사례는 지인들에게 투자를 하면 불려서 되돌려주겠다며 돈을 편취한 경우인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변명하는 태도인 대상자들이 많다(예를 들면 정말 이익을 내서 돌려주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기다려달라고 요청해으나, 채권자가 기다려주지 않고 고소했다 라는 둥).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전적 사기는 생활의 안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범죄이다. 그걸로 유죄판결이 났는데도 죄책감이 부족하다는 건, 나로서는 그들의 뇌 구조가 일반인들과는 다르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토록 사회적 병폐가 심각한 범죄들을 저지르고 내 앞에 온 대상자들이 내게 "선생님, 선생님"하며 고개를 조아리거나 친근하게 굴 때마다 나는 종종 이질감을 느낀다. 면담실에 한 차례 웃음소리가 번질 정도로 즐거운(?) 면담을 마친 뒤 자리에 돌아와 방금 만난 대상자의 판결문을 읽어 본다.
술에 취해 도로를 질주하는 무법자의 모습, 주먹이나 흉기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모습, 돈을 뜯어내려고 감언이설로 상대를 속이는 모습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모습과 좀 전에 나와 웃으며 대화한 뒤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고 돌아간 대상자의 얼굴이 겹쳐진다. 무엇일까, 이 차이는. 무엇이 이 대상자의 진짜 얼굴일까. 내 앞에서는 허허실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지만, 보호관찰소 문을 나서는 순간 악마의 얼굴로 변하는 걸까?
소년범일수록 그 괴리감은 더욱 심하다.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았고 앳된 모습이 선한데도 보호관찰소를 나서면 또래들 사이에서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무서운 아이이고, 무면허운전이나 보복폭행을 일삼으며 부모에게 욕설을 하는 소년이라니 말이다. 이 아이가 범죄사실에 적혀있는 행동을 하는 모습을 아무리 상상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종종 뉴스에서 흉악범죄자의 얼굴이 공개될 때, 댓글창에 관상가 양반들이 출몰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관상은 과학이다"라며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확신에 찬 댓글이 있는 반면, "뭣같이 생겼다"는 원색적인 외모 비하도 있다. 과연 그들은 자신과 도플갱어 수준으로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때도 똑같이 반응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이 결코 될 리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무자비하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범죄자들은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얼굴들이고, 특별히 뭣같이 생긴 사람도 없으며, 얼굴만 봐서는 절대 범죄자를 가려낼 수 없다고.
월요일이 되면 나는 다시 두 얼굴의 고객들을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