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외향형인지 내향형인지 묻는다면 나는 내향형이라고 답하겠지만, 고민 없이 흔쾌히 답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은 분명하니 내향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겠으나 사람들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고, 심지어는 모임을 주도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회사에서 가는 워크숍도 좋아하는 편이다. 코로나19는 단체생활이 사장되어가는 속도에 불을 붙였고, 이제 우리 조직에서는 워크숍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일이 많아졌다. 어차피 많이 가봐야 1년에 두어 번 가는 워크숍인데 당일치기로 가는 것이 나는 못내 아쉽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데 약간의 주저함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만나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자리에서는 급격한 에너지 소모를 일으킨다. 나는 3~6인으로 이루어진 모임을 가장 선호한다. 6명을 넘어가면 산만해지고 집중이 되지 않아 둘, 셋씩 따로 떠드는 각개전투가 시작되는데, 그 정렬되지 않은 혼돈이 나는 달갑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대학교 새내기 MT에서도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한 나는 멀쩡한 제정신을 가지고 일찌감치 시체방(만취한 사람들을 수감하는 수용소)에 들어가 좀비들 사이에 누워있다가, 유성매직을 들고 낄낄거리며 시체들의 얼굴에 낙서를 하러 들어온 학생들을 비명지르게 만들기도 했다(뭐야!! 깨어 있어!! 따위의 말도 들렸던 것 같다).
나는 3~6명이 있을 때 가장 활발하고, 말도 많고, 남들을 웃긴다. 6명이 넘어가면 나란 사람이 자리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해진다. 그저 적당히 배가 채워지면 집에 가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소모임에서는 에너자이저와도 같은 지속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서울대학교 연구진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내가 높은 텐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딱 3시간이다. 3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생기를 잃고 귀소본능이 발동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에너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3시간 동안 최고치의 텐션으로 수다를 떨다가, 때가 되면 풍선 속 바람이 빠지듯이 푸슈슈슉-하고 시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집이거나 대학 MT같은 게 아니라면 항상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에 귀가하곤 했었다. 더 놀고 싶어도 에너지가 고갈돼서 그럴 수 없었다. 약속된 3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머릿속에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내 지인'이라는 카테고리는 여태까지 몇 명을 담아봤을까. 한 번이라도 카테고리 속에 들어왔다가 지금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은 몇 %나 될까. 문자 그대로 스쳐간 사람들, 자주 연락했을 정도로 친했던 사람들, 친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한 몸처럼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서로를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소중하게 여기기도 했고, 그러다가도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타협할 수 없는 이유로 각자의 갈 길을 갔다. 생활권이나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했다. 연결고리였던 사람이 사라지면서 당연하게도 단절되었다.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내게 아픔을 준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뽑아 보라고 하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줄줄이 읊을 수도 있다. 한 때는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어서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한 친구, 내 부모님을 모욕하는 말을 한 친구, 내가 싫다는 걸 계속 해서 말다툼을 했던 친구...그렇지만 왜인지 그들은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다. 그런가 하면 나를 특별히 아프게 하지 않았는데도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된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만났고, 대체로 알 수 있는 이유 때문에 멀어졌고,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아직까지 곁에 있다.
만나고 나면 피곤하고, 내게 상처를 입히는 존재들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단 한 번도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본 적이 없다. 혼자일 때 채워지는 에너지와는 다른 것이 필요했고 그걸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람뿐이었다. 사람 이야기를 빼면 내 인생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사람이 나를 아프게 할수록 나는 더욱 사람을 갈망하고 끌어안았다. 외로운 것보다는 차라리 아픈 게 나았다. 그들은 나를 울게 만들었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그들이었다.
구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시절, 한 선임이 자신은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때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건다고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 땐 그 얘길 듣고 단지 발이 참 넓구나,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나-정도의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의미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