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 행정팀에서 혹시 사무실에 필요한 것이 없냐고 하길래 냅다 스탠딩 옷걸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평소에 사무실에 있는 인원에 비해 옷걸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 외근을 나갔다가 들어오니 큰 상자가 사무실 복사기 앞에 놓여 있었다. 두둥! 내가 요청한 옷걸이였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이것을 조립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정해져 있기도 하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봤는가? "나인가 싶으면 해라."라는. 그렇다. 사무실에서 내 서열은 막내는 아니지만, 밑에서 두 번째이다. 사무실에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잡일들은 막내인 주임님과 나, 둘이서 한다. 게다가 옷걸이를 사달라고 행정팀에 요청한 것은 나인데 조립을 막내한테 떠넘기는 것은 상도의에 맞지 않는다.
마침 특별히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없기도 해서 바로 조립을 시작했다. 전체를 떠받치는 판에 첫 번째 기둥을 꽂고 아래쪽에서 강하게 조여 고정하고, 두 개의 기둥을 차례로 올리기만 하면 된다. 완성된 옷걸이는 '저기에 옷걸이를 하나 놓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며 눈여겨보던 위치에 두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출근해 보니 내가 어제 설치해 둔 옷걸이에 옷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순간 어제의 내 작은 수고가 헛되지 않고 의미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이 날 그렇게 기분 좋게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별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이 아니다. 옷을 걸어둔 직원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적당한 자리에 적당한 옷걸이가 있었고 마침 어딘가에 걸어둬야 할 점퍼가 있었으니까 그랬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거기에 옷이 하나 걸려있단 사실이 그렇게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느낌을 또 언제 받아봤더라-생각해 보니 그리 멀리 갈 필요가 없었고 그 역시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간식 관리를 담당하는데(원하는 간식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실로 막강한 권한이다), 내가 사다 놓은 간식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 비슷한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혹시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서로 경쟁관계인 경우는 제외한다)
"아이씨! 내가 노트북을 살 때 체크해야 하는 것들을 영규한테 알려줘서 영규가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던 노트북을 살 수 있었어. 짜증 나."
"내가 영어 공부하는 방법을 유성이한테 알려줬는데, 유성이가 이번 시험에서 영어 점수가 20점이나 올랐대. 그래서 열불이 나서 어제 잠을 못 잤어."
아마도 이런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로 인해 누군가 도움을 받거나, 원하던 것을 이루거나, 행복해지면 뿌듯해한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얼핏 생각하면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보다는 남에게서 뭔가를 얻어내거나, 번거로운 일은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 이득 보는 삶인 듯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로 인해 누군가 기뻐한다는 데서 오는 소소한 보람은 단순히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정만은 아니다. 이러한 작은 일들이 반복되면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자리 잡아 자아효능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신은 "내가 이런 일을 해서 저 사람이 기뻐하니까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쓸모가 있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람이라는 긍정적인 정서는 소리 없이 당신의 생각 메커니즘과 건강한 자존감 형성에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일방적으로 착취 또는 이용당하는 형태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보통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나와 타인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도움임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잠시 잡아주는 일, 복사기의 용지를 채워놓는 일, 그저 회사에서 맡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설거지가 귀찮지만 피곤해 보이는 가족을 위해 고무장갑을 손에 끼는 일. 이 모든 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나 기쁨이 될 수 있는 일이다. 상담원이나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밝게 인사했을 뿐인데 상대방은 그것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간직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당신이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감격일 수도 있다(!).
현대인으로 살다 보면 참 칭찬받을 일은 적고, 눈치 보이거나 잘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잘난 사람들은 많은 것 같은데 나는 어떤 발버둥을 쳐도 거기에 끼지 못하는 듯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 같아 쪼그라들곤 한다. 뭐, 그렇다면 나라도 나 자신을 좀 칭찬해 줘야지 않겠는가. 남들이 안 해준다는데. 오늘부터 아주 작은 사소한 일이라도 스스로 '나 참 쓸모 있는 일을 했다.'라고 칭찬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