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외할머니 댁에 다녀왔어요.
90 이 넘으신 할머니는 손녀가 온다는 소식에 고구마 맛탕을 준비하고 계셨어요.
초인종을 누르자, 할머니는 마당까지 나오셨어요.
집 안에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가득했지요.
소파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시며
"왔냐?" 하고 반겨주셨어요.
일곱 살 때 이 집으로 이사 왔던 그날이 떠올랐어요.
그때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요.
집도, 냄새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머물러 있었어요.
한 때 저의 몸집보다 컸던 벽장 시계도,
동생이 낚서 했던 도배 벽지도,
벽에 걸린 오래된 가족사진들도,
할머니와 엄마의 손길이 가득한 부엌도...
딸아이와 나, 남편,
세 식구가 찾아간 주말 오후...
할머니는 가장 맛있고 아껴두었던 모든 것을 내어 주셨어요.
과일과 과자, 손수 만든 고구마맛탕까지...
딸아이에게는 어린이날이라며 용돈까지 쥐여주셨지요.
저에게는 "집에 가서 한 번 더 먹어라" 하시며 고구마맛탕을 가득 싸주셨네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저는 더 이상 어디에서도 가만히 앉아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준비하고 정리하고
챙겨야 하는 사람이 되었지요.
그런데 90 이 넘은 할머니는
40 이 넘은 저를 아기처럼 챙겨주십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라.
내가 이 정도는 아직 할 수 있어!"
그 말에 울컥해 코끝이 시큰거렸어요.
"할머니,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간신히 설거지를 하며, 고구마를 튀기는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할머니의 주름진 손과 작은 어깨...
그런데 할머니의 뒷모습은 신이 나 보였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증손녀가 와서였겠지요.
할머니는 저의 체중 변화를 가장 빨리 아는 사람입니다. 얼굴이 말랐는지, 통통해졌는지...
저만 아는 작은 변화도 할머니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셨어요.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할머니는 늘 걱정이 많으십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저는 할머니의 눈물 버튼이에요.
"불쌍한 내 새끼..."
할머니는 저를 볼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끌어안고 우시거든요.
처음에는 엄마를 잃은 제가 더 슬프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할머니를 만나면, 제 슬픔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작게 느껴집니다.
자식을 앞세운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엄마를 먼저 보내드린 저도 슬프지만...
딸을 먼저 보낸 할머니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 깊이는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자식이 먼저 가는 건,
정말 불효가 맞구나...
그 말이 피부로 와닿고 있어요.
"잘 가라, 또 와라."
할머니의 배웅을 뒤로하고,
양손 가득 고구마맛탕과 먹을 것을 들고 집으로 왔어요.
할머니...
소녀 같이 순수한 미소를 짓는 모습 그대로,
부디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곁에 계셔 주세요.
할머니, 사랑해!
오늘도 마음을 잇는 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