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증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by 마잇 윤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누군가 이런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엄마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조문객들과 이야기하며 웃는 모습이 아주 이상해 보였다는 이야기였어요.


귀담아들을 이야기라며,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말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더 정확히는 매우 억울하고,

분노가 차올랐어요.

어이가 없었거든요.


그 무렵,

3kg 살이 빠지면서 배란을 하지 않았고,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첫 봄, 보름이 넘도록 열감기로 고생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상의 틈새마다 불쑥불쑥 엄마의 흔적을 마주했어요.


시장 골목에서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다가는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도 참 고왔을 텐데...' 생각에 눈물이 났고,


미디어에서 암을 잘 치료한 출연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왜 우리 엄마는 잘 치료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었습니다.


언젠가는 지나가는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어요.


목놓아 울어야 슬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 순간,

하나의 결심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누구에게도

슬픔을 증명하며 살지 않겠다고.


얼마나 아팠고,

얼마나 무너졌는지,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설명할 의무도,

설명해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정말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묻지 않았고, 그런 말을 전해오지도 않을 테니까요.


오히려 그 이야기는 전해준 사람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한참이 지나서야 들었습니다.


타인의 말을 빌려 자기 마음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슬픔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있는 것이며,


이제 말을 전하는 사람은 깊이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마음을 잇는 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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