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프 카디건에 담긴 명동의 공기

by 마잇 윤쌤

출근을 서두르며 옷장에서 자라 그레이 스트라이프 카디건을 꺼냈어요.


작년 가을, 딸아이의 손을 잡고 명동 자라 매장에서 사 온 옷이에요. 단추를 잠그는데 문득 작년 그날의 공기가 느껴졌어요.


8층짜리 다이소를 가보고 싶다며, 불편을 마다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갔던 명동 나들이.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었던 점심 식사.


그리고 오랜 시간 마음의 터전이었던 충무로와 명동의 익숙한 풍경들까지...


사실 저에게 명동은 특별합니다.

성공보다는 설익고 풋내 나던 사춘기 시절의 실패의 기억이 가득한 곳이거든요.


열세 살의 어느 날, 학교 소풍을 앞두고 친한 언니를 따라갔던 첫 명동 나들이를 기억합니다.


부모님 없이 언니와 명동을 간다니, 혼자 옷을 산다니! 해방감에 들떠 골랐던 옷은, 집에 돌아와 입어보니 옷보다는 목도리에 가까울 만큼 작았습니다.


디자인과 색상에 눈이 멀어, 맞는 사이즈인지 디자인인지도 확인할 줄 몰랐던 열세 살의 첫 쇼핑은 참담하게 실패했습니다.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야심 차게 사온 첫 쇼핑 아이템은 엄마가 아랫집 동생에게 인심 쓰며 주었고, 그것을 지켜본 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어요. 20년 넘게 충무로와 명동을 누비던 저는 이제 아이와 남편의 손을 잡고 다시 그 거리를 찾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이즈를 틀리지도, 옷을 사고 이불속에서 울지도 않는 어른이 되었어요. 가끔은 이렇게 나들이를 하며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구매하고 싶더라고요.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구매하면, 그 옷을 입을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온도가 함께하는 기분이 듭니다.


스트라이프 카디건을 입을 때도 그랬어요. 딸아이의 웃음소리와 따사로웠던 가을 햇빛, 많이 변한 명동의 풍경까지 말이죠.


덕분에 저는 오늘 하루, 넘치게 행복할 것 같아요.








오늘도 마음을 잇는 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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