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반갑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by 마잇 윤쌤

어릴 때 설날은 참 좋았어요.

명절이라고 새 옷 입고, 느지막이 일어나면 부엌에서는 만둣국이 끓고 있었어요.


늦은 아침을 먹고 나면 거실 TV에서는 할아버지의 애청 프로인 씨름 중계 소리가 윙윙 울렸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며 세배를 드리면,

알찬 세뱃돈 봉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설날은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더 이상 설이 반갑지 않은 나이가 되었어요.


결혼을 하고부터 명절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남편과 저는 말없이 누가 더 어색한 시간을 잘 견디는지, 누가 더 자연스럽게 이방인이 될 수 있는지 배틀을 하는 듯했어요.


공손한 인사와 분주한 손놀림 사이에서 우리는 잠깐씩 눈을 마주쳤어요.


그러다 "이제 갈까?!"는 사인이 맞으면 집으로 돌아왔고, 그제야 진짜 휴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집에,

저는 저의 집에 다녀왔을 뿐인데


왜 그리 우리 '집'에 돌아와서야 한숨을 돌릴 만큼 피곤한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또 한 번 달라졌습니다. 아주 많이...


시댁에 가도, 친정에 가도

저는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있을 때의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딸이었는데...


엄마가 떠난 뒤의 저는

이제 어디에서도 딸이 될 수 없었어요.


마음껏 풀어져도 되는 사람이 이제 없으니까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설이 더 이상 휴일이 아니라,

역할이 몰려오는 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다릅니다.


세뱃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들떠 있어요. 설레는 얼굴을 보면 알겠어요. 설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요.


저는 이제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당연히 주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을 뿐입니다.


양가 부모님 용돈과 세뱃돈 봉투까지 준비하며,


문득 누군가 저에게도 "참 애썼다."라고,

봉투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도 설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어요.

아이에게는 여전히 축제의 기간일 테고, 저와 남편에게는 조금 분주한 연휴가 되겠지요.


설이 반갑지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올해도 딸아이의 세뱃돈 봉투를 준비합니다.

아이에게는 여전히 설이 기다려지는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마음을 잇는 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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