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 사람은 뭐가 이렇게 죄송해?

by 마잇 윤쌤

"엄마, 이 사람은 뭐가 이렇게 죄송해?"



초등 5학년 딸아이가 시를 읽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딸아이는 윤동주의 「서시」를 읽고 있었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아이는 '부끄럽다'는 말보다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나 봅니다.



저는 아이 옆에 앉아 하나씩 설명해 주었습니다.


윤동주는 기독교인이었단다.

인류를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믿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그가 살던 시대는,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힘이 정의가 되던 어지러운 국제 정세 속이었어.


누군가는 독립을 위해 일본을 향한 무장투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일본 지도자들을 향한 거 사를 준비하고 있었지.


그런 시대에 윤동주는 시가 쓰고 싶었던 거야.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창씨개명을 해야 하던 시대인데 말이야.


이야기를 듣는 딸아이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습니다.


유학 생활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그는 옥사에 갇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결국 돌아가셨다 말해주었어요.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기에,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에게는 더 쓸모없이 느껴졌을지도 몰라.


그런 마음이 그대로 시에 묻어나는 것 아닐까.

뭔가 가라앉는 듯한 어두운 기운.


엄마도 어릴 때는, 이 사람의 시가 왜 이리 어두운지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잘 이해할 수 없었어.


그런데 나이가 들고 이 사람의 나이 스물 남짓이라고 생각하니, 한없이 안타깝더라고...


그래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쓴 게 아닐까.



"그럼, 참 불쌍하다. "



설명을 한참 듣고 난 딸아이가 말했어요.


딸아이 덕분에,

저도 시인이 아닌 스물 남짓한 한 청년 윤동주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사람.


그리고 끝내 그렇게 살지 못할까,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했던 사람.


어쩌면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아직 양심이 살아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영화 「동주」 도 함께 봐야겠습니다.









딸과 함께 크는 엄마의 이야기,


우리의 하루에도 다정한 순간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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