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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Feb 08. 2022

진정한 나를 찾아, 뮤지컬 <헤드윅>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나

▲ 뮤지컬 <헤드윅> 포스터


저를 사랑해주세요 


독일 베를린에 동독과 서독을 나누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던 날, 동독에서 태어난 한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아이의 이름은 한셀. 어린 시절부터 왜소한 몸과 소심한 성격을 지녔던 한셀은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어요. 심지어는 그의 아버지까지도 그를 성폭행했죠. 이렇게 한셀은 성장 과정 내내 쌓여온 아픔을 잊을 새도 없이 성적으로 농락당했고, 결국 한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한셀과 둘이 살기로 결심했어요. 그러나 아버지와 멀어졌다고 해서, 이미 뼈아프게 새겨진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는 것은 아니었죠. 이런 한셀의 마음을 유일하게 다독이고 그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었던 건, 바로 미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리드미컬한 로큰롤* 음악이었어요.


*로큰롤: 195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대중적인 음악으로 비트가 강하고 열광적임. 몸을 흔드는 식으로 춤을 추는 데에서 기인해 'rock and  roll'이라고 불림.


로큰롤 음악을 들으며 어느덧 20대가 된 한셀은 우연한 계기로 동독으로 파병을 온 미군 장교인 루터를 만나요. 그리고 그들은 마법처럼 서로에게 푹 빠져 사랑을 나누었죠. 얼마 뒤 루터는 한셀에게 자신과 함께 미국으로 가서 결혼을 하자는 제안을 해요. 여기에 루터는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는데, 그건 바로 한셀이 성전환 수술을 해 여성의 몸을 갖는 것이었죠. 루터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나머지 한셀은 성전환 수술을 시도했지만, 1인치의 작은 성기가 남게 되면서 수술은 실패하고 말았어요. 실패한 수술에 크게 낙심한 한셀. 그렇지만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어머니의 이름을 따 ‘헤드윅’으로 개명하고는 미국으로 떠났어요. 그러나 루터는 헤드윅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렸고 결국 루터에게 버림받고 말았죠. 공교롭게도 그날,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헤드윅의 상황과는 대조되게 독일의 자유를 가로막던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고!


어린 시절부터 당해왔던 폭행에도 모자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까지 받았다니.... 헤드윅이 너무 걱정돼요. 그럼 미국에서 헤드윅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나요?

▲ 밴드 'Angry Inch' 출처: 네이버 영화


음악으로 다시 일어나기 


홀로 미국에 남겨진 헤드윅은, 쓸쓸한 감정을 치유받고자 다시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더 나아가 ‘Angry Inch’라는 밴드를 만들고 트랜스젠더가 된 본인의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며 생계를 유지했죠. 그러던 중 우연히 토미라는 소년을 만나 새로운 사랑에 빠진 헤드윅. 그는 토미에게 로큰롤 음악과 노래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열심히 이야기해줘요. 그러나 기쁨도 잠시, 헤드윅이 트랜스젠더임을 알게 된 토미는 큰 충격에 빠지고 얼마 되지 않아 헤드윅을 떠나고 말죠.


그 후 토미는 시간이 지나 헤드윅에게 배운 음악과 노래로 스타 가수가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이를 지켜본 헤드윅은 다시 한번 큰 상처를 받아요. 헤드윅은 잃어버린 자신의 저작권을 되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 토미를 뒤쫓기 시작하죠. 그렇게 헤드윅은 토미의 대형 콘서트 앞에서 자신의 밴드의 콘서트를 열어 토미의 노래가 원래 자신의 노래였음을 알려요. 이에 자신의 과거 행동을 뉘우친 토미는 답가를 통해 헤드윅에게 용서를 빌고, 동시에 헤드윅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를 기원해 주죠. 그렇게 토미의 진심을 듣게 된 헤드윅은 과거의 상처는 타인에게 의지하기보다 결국 스스로 극복하고 살아가야 함을 알게 돼요. 이를 깨달은 헤드윅은 홀로 서기 위해 밴드 멤버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떠나고,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고!


사랑을 위해 수술까지 했지만 버림받았고 다시 스스로 이겨내려고 했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데 뮤지컬에 성전환 수술 소재가 쓰일 게 신선하게 느껴지는데요?


▲ Hedwig- 'The Origin of Love'


헤드윅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맞아요. 뮤지컬 <헤드윅>은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라는 소재부터 록 뮤지컬이라는 장르까지 신선한 충격을 주는 요소로 가득한 작품이에요. 또한 뮤지컬 무대 위에서 주인공 헤드윅이 선보이는 화려한 음악 뒤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죠. 


특히 그가 부른 ‘The Origin of Love’라는 노래에서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데요, 이 노래는 플라톤의 <향연>을 모티브로 한 노래로 알려져 있어요. 플라톤의 <향연> 중 헤드윅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구절은 ‘인간은 원래 둘이 붙어 있는 하나의 몸이었다가, 신의 분노로 인해 둘로 나누어졌고, 그 뒤로는 자신의 반쪽을 찾기 위해 사랑을 해야 한다’ 는 것이었죠. 이런 플라톤의 메시지는 헤드윅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헤드윅도 살아가는 동안 자신에게 꼭 맞는 반쪽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나 헤드윅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토미의 노래를 듣고서 궁극적인 사랑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죠. 그리고 그 끝에,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채워주고 이해해 주는 반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해야 완성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뮤지컬 헤드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존 카메론 미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어요. 그는 “드래그 퀸 헤드윅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성 정체성 혹은 성폭력처럼 헤드윅과 비슷한 아픔을 안고 사는 모든 분들께 격려의 미소를 보낸다”라고 말했어요. 실제로 동성애자였던 미첼은 한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고도 말했다고!


뮤지컬을 통해서 사랑과 성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위로할 수 있다니. 정말 감명 깊게 다가오네요. 그런데 미첼 감독님이 말씀하신 ‘드래그 퀸’은 어떤 의미인가요?

▲ 영화 <헤드윅>, 출처: 네이버 영화

화려한 게 좋아


‘드래그 퀸’이라는 용어는 Drag와 Queen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인데요, 먼저 Drag(드래그)란 사회에 주어진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를 말해요. (�: 여자처럼 입는다는 ‘Dressed as girl’에서 유래됐대령!) 드래그는 연극과 오페라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요, 과거 중세 시대에는 여성이 무대에 오르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남성 연기자가 여장을 통해 여성 역할까지 소화해야 했어요. 이와 유사하게, 중국의 정통 연극인 경극이나 일본의 전통 연극인 가부키 역시 과거부터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여 공연을 했다고 하죠. 그리고 1870년에 들어서 이러한 남성 연기자를 ‘드래그 퀸’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반대로 남성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여성 연기자는 ‘드래그 킹’이라고 부른다고!


그리고 시대가 변할수록 드래그 퀸의 범위는 확장을 더해갔어요. 드래그 퀸은 단순히 여장을 한 남자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페르소나* 설정을 통해 자아 정체성을 발휘하는 문화 행위라는 인식을 이끌어내기 시작했죠. 실제로 미국에서는 드래그 퀸들의 공연인 드래그 쇼가 점차 활성화되면서 화려한 의상, 춤과 노래를 통해 서브컬처로서 대중문화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고!


*페르소나: 본래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을 가리켰으나, 인격을 가지고 행동하는 주체로 의미가 확장됨.


아하 그래서 성전환 수술과 여장을 한 헤드윅을 드래그 퀸이라고 불렀던 거네요! 들어보니까 다양성을 중시하는 지금은 드래그 퀸의 영향력이 더욱 클 것 같은데요~?

▲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성 소수자의 아이돌 


맞아요! 특히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요즘 시대에 특히 성 소수자들에게 드래그 퀸의 의미는 더욱 중요해졌어요. 드래그 퀸이 단순히 여장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출중한 노래와 춤 실력, 토크 능력, 코미디 능력까지 갖춘 만능 엔터테이너로 발전하면서 드래그 퀸은 성 소수자들을 가장 화려하게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다고!


요즘에는 <헤드윅>, <킹키부츠>, <제이미>등 드래그 퀸을 다루는 다양한 작품들이 많지만, 사실 드래그 퀸이 생기기 시작한 초반에는 음지의 문화라며 비난 받기도 했어요. 그러나 2009년 미국의 방송인 루폴 안드레 찰스의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라는 TV 쇼가 시작하면서, 드래그 퀸 문화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크게 바뀌게 되었죠.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는 성 소수자인 호스트와 출연진들이 여장을 하고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는데요, 루폴은 이 쇼의 호스트를 맡고 있었죠. 그리고 그는 쇼를 시작하던 당시 드래그 퀸들의 무대가 대중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할 수 있는 대중오락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루폴의 예상대로 대중들은 드래그 퀸들의 화려한 의상과 춤과 노래 그리고 스탠드 코미디 무대에 열광했죠. 그 결과 드래그 퀸 문화는 화려함의 절정을 맛볼 수 있는 쇼라는 평가를 받으며 훌륭한 오락 콘텐츠로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이 TV 쇼는 드래그 퀸 문화를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이끌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고!



<헤드윅> 뿐만 아니라 드래그 퀸을 다룬 다양한 작품들이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했네요. 그럼 한국에서는 뮤지컬 <헤드윅>에 대해선 반응이 어떤가요?

▲ 뮤지컬 <헤드윅> 오만석, 출처: 매일경제


수강신청보다 힘든 티켓팅 


뮤지컬 <헤드윅>은 한국에서도 엄청난 팬덤을 보유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요. 국내에서는 2005년에 초연을 올렸는데, 본고장인 뉴욕을 뛰어넘어 역대 최다공연최다 관객을 동원한 <헤드윅> 공연이 되었죠. 이렇게 당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던 <헤드윅>의 티켓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면서 암표 가격은 기존 가격의 250%를 호가하기도 했다고!


그리고 이 인기는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아, <헤드윅> 공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화려한 분장이 매력인 헤드윅 역할을 어떤 배우가 맡을 지가 항상 이슈가 되고는 해요. 지금까지 오만석, 조승우, 조정석, 유연석 등 내로라하는 유명 배우들이 헤드윅 역할을 맡아 관객들에게 화려한 공연을 선사했죠. 또, <헤드윅>을 탄생시킨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이 내한공연을 올 당시에 “오만석의 헤드윅을 보고 한국행을 결정했다”라고 말을 하면서 그의 연기를 칭송하기도 했다고!


플롯 TMI �                

넷플릭스에서 가장 화려한 쇼

https://www.youtube.com/watch?v=8jf5IU7GmuI


여러분,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드래그 퀸들의 화려한 무대와 의상 뿐만 아니라 무대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다고 해요. 또한, 현실 헤드윅이라고 볼 수 있는 실제 드래그 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고 하죠. 그리고 드래그 퀸의 대모라고 불리는 루폴의 실제 무대도 볼 수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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