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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Feb 08. 2022

세기의 예술인, 찰리 채플린

찌그러진 중절모와 콧수염의 사나이

▲ 영화 <키드>, 출처 : 네이버 영화


쓰레기통에서 시작된 인연 


어수선하고 복잡한 런던의 어느 뒷골목. 한 여인이 자선 병원에서 나와 갓난아이를 품은 채 발걸음을 옮겨요. 미혼모였던 그녀는 아이를 키울 경제적인 여력이 전혀 없었죠. 그래서 그녀는 거대하고 웅장한 저택 앞에 주차된 고급 승용차에 아이를 버리고 떠나버려요. 하지만 승용차는 어느 도둑에 의해 도난당하고, 아이는 쓰레기통에 또 한 번 버려지고 말죠. 바로 그때! 길을 지나던 떠돌이 찰리가 아이를 발견해요.


찰리는 주변의 눈치와 등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려왔는데요, 찰리는 아이에게 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그와 누구보다도 끈끈한 가족이 돼요. 흰 셔츠를 잘라 기저귀를 만드는가 하면, 커피포트를 젖병으로 쓰면서 찰리의 육아생활이 시작되죠. 그렇게 5년이 지난 후, 아기였던 존은 아이가 되어 찰리와 함께 장난스러운 일을 하나 시작해요. 남의 집 유리창에 돌을 집어던져 주인이 튀어나오면, “유리를 새로 갈아 끼우세요!” 라고 외치며 황당한 사기극을 벌이는 거였죠. 


그렇게 유리를 갈며 생계를 이어가던 어느 날, 찰리는 고열로 끙끙 앓던 존을 병원에 데려가게 돼요. 그런데 진단서를 살피던 의사는 존이 버려진 아이임을 알아차리죠. 이 사실을 알게된 경찰은 찰리가 아이를 납치한 것으로 오해하고, 찰리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보육원에 보내려 한다고. 과연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요?


버려진 아이와 가족이 되다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네요. 그런데 어쩐지 익숙한 얼굴인데요? 


▲ 영화 <키드>, 출처 : 네이버 영화


떠돌이 역을 맡은 사람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배우이자 영화감독, 찰리 채플린! 앞서 들려드린 이야기는 1921년 개봉한 영화 <키드>의 줄거리로, 찰리는 이 영화의 감독이었을 뿐 아니라 제작자, 각본가, 연기자이자 편집자까지 도맡을 정도로 영화에 깊은 애정을 보였어요. 촬영을 마친 후 영화사와 갈등을 빚는 바람에 파일이 담긴 원본 필름을 빼앗길 위기에 놓이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리는 필름 롤을 꽁꽁 숨겨 호텔 방으로 가져갔는데요, 그 안에서 약 120km 길이에 달하는 필름을 홀로 편집했다고.


 출연도, 감독도, 편집도 직접 했다구요? 왜 이렇게 이 영화에 진심인 거예요?


▲ 어린 시절의 찰리 채플린, 출처: 모던 할리우드


다섯 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소년 


그 이유는 바로 영화 <키드>가 채플린의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었기 때문! 찰리 채플린의 어린 시절은 영화 속 존과 굉장히 닮아 있어요. 그는 1889년 런던의 빈민가 월워스에서 태어났는데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말아요. 고아와 다를 바 없었던 찰리는 구호소와 보육원을 들락날락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신문이나 양초를 파는가 하면, 병원이나 공장에서의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했죠. 때로는 잘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생활했어요. 그래서인지 굶주림과 추위는 훗날 찰리의 영화에 메인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데요, 이는 어린 시절 직접 겪었던 일들을 생생히 드러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이렇듯 어린 소년 찰리는 홀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하나 발견하죠. 그건 바로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었던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관객이 몰입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연기력! 덕분에 찰리는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극단에 들어가 무대에 올랐고, 관중들은 어린 소년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깜짝 놀라요. 그리고 이 무대가 바로 찰리 채플린이라는 대배우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고.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아픈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대단한 사랑을 받는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거였군요! 그는 어떻게 유명한 배우가 되었나요?

▲ 찰리 채플린의 상징이 된 떠돌이 캐릭터, 출처: 네이버 영화


세모난 콧수염에 땡그란 눈 


헐렁한 바지, 꽉 끼는 상의, 까만색 중절모, 칫솔 모양의 콧수염, 그리고 지팡이까지. 사진의 주인공은 플로터도 한 번쯤 만나보셨을 텐데요, 이는 찰리 채플린이 할리우드에 입성해 처음으로 연기한 영화 캐릭터죠. 찰리가 할리우드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건 당시 코미디의 왕이었던 맥 세넷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맥 세넷은 코미디 영화와 슬랩스틱*의 전성기를 개척한 인물로, 영화 제작사를 직접 운영하던 할리우드의 큰 손이었죠. 맥은 순회공연을 하던 찰리의 무대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전속 계약을 제안했다고.


* 슬랩스틱: 과장된 동작이나 소리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 


사실 찰리가 시도한 모든 작품이 다 흥행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가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 <생활비 벌기>는 대중들로부터 지루하고 따분하다 평가받으며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그는 다음 작품인 <메이블의 이상한 곤경>에서 본인이 직접 새로운 떠돌이 캐릭터를 만들어냈죠. (이 떠돌이가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예요.) 그는 이 캐릭터를 통해 소외당하고 가난한 떠돌이를 누구보다 생생히 표현했어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위기를 능청스럽게 넘기며, 온몸을 사용해 풍부하고도 익살스러운 연기를 선보였죠.


▲ 스텔라의 집에 모여 있는 사람들, 출처: Esquire Magazine


찰리의 몸 개그에 제작진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개봉 후 수많은 관객들이 그의 연기를 보며 웃음과 눈물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렇게 찰리 채플린은 일반 대중은 물론 영화계에서도 대단한 사랑을 받으며 미국 진출 4년 만인 1917년, 영화 여덟 편을 촬영하는 대가로 100만 달러를 받는 대배우로 등극한다고. 


100년 전 100만 달러면 무려 2400억 원 정도라면서요? 어마어마한 배우로 성장했군요. 그렇다면 대배우가 된 찰리 채플린이 전하고 싶었던 다른 이야기들이 또 있나요?

▲ 영화 <모던 타임즈>,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람은 기계가 아니야 


찰리 채플린은 작품을 통해 웃음을 선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를 비판하기도 했어요. 플로터에게도 익숙할 영화 <모던 타임즈>는 1936년 개봉한 뒤 지금까지도 시대의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죠. 주인공 찰리는 컨베이어 벨트 공장에서 나사못을 조이는 일만 반복하는 노동자예요. 그런데 이 일을 쉴 틈 없이 지속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여버리는 강박에 시달리게 되죠. 또, 일을 하다 잠시 화장실에 들르면 공장의 사장이 화장실 화면에 나타나 당장 일하러 가라고 소리치기까지 해요. 심지어 점심 식사를 할 때엔 자동 식사 기계에 온몸이 묶인 채, 기계가 주는 대로 밥을 받아먹어야 했죠.


이 영화는 산업화가 진행되던 191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당시의 노동자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한 명의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부품처럼 여겨지곤 했어요. 생계를 위해 경영자들의 끊임없는 압박에 굴복하며 일을 했고, 갑작스레 찾아온 대공황*에 노동자는 다시 가난 속에 내몰리는 상황이 반복됐죠. 그래서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를 통해 현대 문명의 기계 만능주의와 인간 소외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가난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었다고.


* 대공황: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침체기.


영화 <모던 타임즈>를 통해 찰리 채플린은 자신이 직접 관찰한 산업화의 명암을 뚜렷하게 드러내요. 자본가가 요구하는 장시간의 단순 반복 작업이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파괴한다는 것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삶과 존엄성보다 수입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간 소외 문제를 콕 집어 표현했던 거죠. 이렇듯 비인간적인 시대가 만들어낸 병든 인간상을 떠돌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그려내며 아이러니함을 강조했다고.


웃기다고만 생각했던 찰리 채플린의 행동들 속에는 모두 의미가 담겨있던 거였군요.

▲ 영화 <위대한 독재자>, 출처: 네이버 영화


독재 멈춰! 히틀러 멈춰! 


영화 <모던 타임즈>를 통해 산업화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것에 이어, 찰리 채플린은 히틀러의 독재와 전체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제작했어요. 영화가 개봉한 1940년은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고, 폴란드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만들어 유대인을 대량학살하기 시작한 시기였죠.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찰리 채플린은 독재자이자 유대인 이발사라는 두 가지의 역할을 한 번에 소화하는데요, 여기서 독재자는 히틀러를, 이발사는 히틀러에게 핍박받는 유대인을 상징해요.


* 전체주의: 구성원 개인을 국가나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극단적인 정치 사상.


* 나치: 히틀러가 이끌었던 독일의 정당으로 유대인과 집시족 등 수많은 인종들을 조직적으로 대량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름. 


찰리 채플린은 대중 앞에서 과장된 모습으로 웅변하는 독재자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해 히틀러를 희화화했어요. 악인을 조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연설에서는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감동적인 연설도 잊지 않았죠. 언젠가는 독재자들이 사라질 것이며, 그들이 인류로부터 빼앗은 인간 고유의 가치는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위로를 건네요. 또, 목숨을 바쳐 싸우는 한 자유는 절대 사라지지 않음을 강조하며 대중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죠. 그랬기에 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개봉 당시 독일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상영 금지되었지만, 독재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함과 동시에 국제사회 전반에 자유에 대한 투쟁 의지를 촉진시켰다고.


 무시무시한 독재자에 맞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다니, 대단한 예술가였네요.

▲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는 찰리 채플린, 출처: 시네마앤


웃음 뒤에 찾아오는 씁쓸함 


여러 분야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한 예술인, 찰리 채플린. 그는 전 세계의 영화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197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했어요. 또,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남자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죠. 찰리 채플린은 대부분의 영화를 감독하고 직접 각본을 작성했으며, 주연 배우나 영상 편집, 음향 감독까지 맡았던 완벽주의자였어요. 이 모든 건 영화에 대한 애정과 뚜렷한 작품세계에 대한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의 코미디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어딘가 씁쓸한 비애가 담겨있어요.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연기 속에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큰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대단한 파급력을 지닌 예술인이었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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