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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Feb 08. 2022

한국 문학의 정신, 최인훈

당신의 광장은 어디에 있나요?

▲ 6.25 전쟁 중 피난하는 북한 주민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1936년의 함경북도 회령, 한국 문학의 거장이 될 한 소년이 탄생해요. 그의 이름은 최인훈. 그는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죠. 유달리 비상하고 똑똑했던 그는 중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2학년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또, 그는 도서관에서 소설이나 사상집을 읽는 것을 즐겼는데요, 훗날 다채로운 글을 쓰는 멋진 소설가가 되겠다 꿈꾸며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하지만 광복 이후, 공산주의* 세력이 북한을 지배했고 그들은 부의 분배를 명분으로 당시 부유층의 재산을 강제로 징수했죠. 이는 풍족하게 생활했던 최인훈의 가족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갑작스러운 재산 징수에 인훈의 가족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고, 억압적인 사회의 분위기로 인해 자유로운 생활에 제약이 생겼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말죠. 가난에 허덕이며 통제당하는 삶을 살아가던 그때, 최인훈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든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그 사건은 바로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 마침 북한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최인훈과 그의 가족은 남한으로의 이주를 결심하고, 남쪽으로 철수하는 국군을 따라 월남했죠. 이후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이념과 체제를 마주한 그의 삶은 훗날 그의 문학 세계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공산주의 : 개인의 재산을 없애고 생산 수단을 공공으로 소유하는 것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사회•정치적 움직임.


평화로운 삶을 살다가 사회 배경으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났던 거네요!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일궈나가야 했다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 작가 최인훈,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경계에 서 있는 한 남자


맞아요!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오게 된 최인훈은 남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듯 보였으나, 그는 마음 한편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바로 남과 북 어느 곳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기력함과 혼란스러움 때문이었죠. 이러한 공허함에 사로잡힌 그는 하던 공부를 멈추고 대학교까지 중퇴하고 만다고.


이후, 최인훈은 어린 시절부터 유일하게 사랑했던 문학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쓰기 시작하죠. 이때 그의 첫 소설인 <GREY 구락부 전말기>가 탄생하게 돼요. 1959년 발표된 이 소설은 주인공 이 'GREY'라는 동아리에 가입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현실과는 동떨어진 문학, 철학과 같은 관념적인 주제를 갖고 토론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여러 평론가들이 현실적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사회 문제에 대해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었던 당시 청년들의 무기력함을 덤덤하게 표현했다고 평가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으로 유명해요. 그리고 이때 최인훈은 회색을 뜻하는 책 제목의 영향으로 검지도 희지도 않은 경계선에 서 있는 ‘회색인’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고!


검지도 희지도 않은 회색이라니! 남과 북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최인훈에게 딱 맞는 별명인 것 같아요.

▲ 1960년 4.19 혁명 당시 시민의 모습,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당신의 광장은 어디에 있나요? 


첫 소설 <GREY 구락부 전말기> 발표 이후에도 최인훈은 스스로가 느끼는 사회 현실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싶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각양각색의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오고 가는 현대 사회와는 달리,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사회 전반의 활동에 대한 통제와 검열이 철저하게 이루어져 사회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쓰기가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1960년, 민주화의 상징인 4.19 혁명*을 기점으로 억압적인 시대에서 벗어나고자 자유를 부르짖는 움직임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해요. 


*4.19 혁명 : 1960년 4월 19일, 학생들과 시민들이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시작된 민주주의 운동.


바로 이때, 최인훈은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 <광장>을 발표하죠. 이 소설은 분단국가의 현실에서 갈등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들의 가치관에 상처 받는 주인공 이명준의 이야기를 그려요. 그는 사회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광장과 개인적인 삶이 철저히 보장되는 밀실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중립국으로 떠나려 발버둥 치죠. 이러한 소설 <광장>에는 실제로 남한과 북한의 서로 다른 이념을 모두 경험한 최인훈의 이야기가 투영되어 있어요. 분단과 사상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되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사회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던 작품이라고. 그래서 소설 <광장>은 분단 문제에 직면한 최초의 소설로서 문학을 통해 현실 사회 문제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아요.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작품답게,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린 작품이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고!

또한, 최인훈은 <회색인><웃음소리>와 같은 연작소설들에서 혼란스러운 사회 속 방황하고 고뇌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죠. 그리고 1966년에는 한국문학에서 위상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동인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된다고!


문학 교과서에서 봤던 소설인데 이렇게까지 큰 의미를 지닌 소설인 줄은 몰랐어요. 그럼 최인훈 작가님은 이후에도 계속 소설을 쓰셨나요?

▲ 연극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무대 스케치, 출처 : 공연아트센터


새롭게 탄생한 한국 설화들 


최인훈은 소설가이자 극작가로도 활동했는데요, 그는 1970년대 이후 소설 집필을 그만두고 연극의 대본인 희곡을 쓰는 데 집중하겠다 발표해요. 그는 소설보다 희곡을 바탕으로 무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죠. 소설을 쓸 때는 창작의 희열을 경험하지 못했던 반면, 희곡을 쓸 때는 엄청난 환희를 느낄 정도라고도 했다고.

그가 작성했던 희곡의 기반은 독특하게도 옛날 옛적부터 전해져 오는 신화나 설화였어요.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들을 희곡에 살려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거죠. 최인훈의 대표적인 희곡 작품으로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아기장수 설화를 바탕으로 쓴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심청전을 재해석한 <달아 달아 밝은 달아>등이 있어요. 최인훈은 <달아 달아 밝은 달아>를 통해 부모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기를 강요당하는 심청이라는 인물을 들여다보고 한국의 유교 문화를 비판하고 싶었다고. 또, 낙랑 공주와 호동 왕자의 사랑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둥둥 낙랑둥>은 낙랑 공주의 죽음 이후의 호동 왕자의 심리에 주목한 것이 원작과 달라 새롭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또, 이 작품은 소설 <광장>과 더불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기도 했다고!


문학 교과서에도 수능 지문에도 실린 작품이라니, 역시 최인훈 작가는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군요! 엇, 그런데 소설 <광장>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 있다고요? 

▲ 연극 <광장, 너머>


연극으로 돌아오는 소설 <광장> 


오는 29일, 소설 <광장>을 각색한 연극 <광장, 너머>가 무대에 오른다고 하는데요, 원작을 바탕으로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주인공 이명준과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극단 떼아뜨르 봄날만의 넘치는 생동감으로 소설 <광장>을 만나 볼 수 있다고!


극단 떼아뜨르 봄날은 연극을 통해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시적인 화법, 연기와 음악의 조화 등을 바탕으로 배우의 호흡과 연극의 현장감을 관객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다고. 그래서 원작 소설 속 등장하는 다양한 장면을 노래와 몸짓이 조화를 이루는 형식으로 각색했다고 해요. 이번에도 역시 에디터들이 직접 연습실 참관을 다녀왔는데요, 그 생생한 후기를 들려드릴게요!


에디터 B의 참관 후기


학창 시절 글로만 읽으며 공부했던 소설 <광장>이 눈앞에서 펼쳐지면서 <광장>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넘치는 열정으로 땀을 흘려가며 연기하는 배우님들의 모습도 인상 깊었어요. 각 캐릭터의 고유한 특색을 살리면서도 입체적이고 풍부한 감정을 극대화해 표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연극에 푹 빠졌거든요. 게다가 소설의 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초반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신나게 을 추면서 노래하듯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부터 저도 함께 어깨를 들썩이고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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