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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윙크의사 Jan 02. 2023

나는 나쁜 의사인가

아니면 미련한 바보였을까

2주일 전, 우리 파트 1년차 선생님이 내과 수련을 포기했다.


평소 근면성실하고 열심이던 분이었는데, 아마 내과 의사로서 늘 맞닥뜨리게 되는 중환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원인 이었던 것 같다.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만두게 한 원인을 분석 하고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첫 주는 행정상 휴가 처리를 한 채 다들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나 또한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그렇다고 따로 연락해서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파트 시니어 로서 할 일은, 그가 맡던 환자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그저 묵묵히 공백을 메꿔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주가 흘러갔다. 2년차 휴가 백을 포함하면 3주 째 차트를 잡고 있다. 그간 벌려  놓은 일들이 많아, 갑작스레 맡겨진 주치의 일을 병행 하려니 힘에 부쳤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 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환자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각종 검사결과와 치료를 챙기는 일이 싫지 않았다. 환자들은 나를 통해 처음으로 암 선고를 받기도 했고, 이제 좋아졌으니 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제야 내 본업으로 돌아왔나 싶은 생각에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적은 인원의 과에서 1명의 공백은 꽤 컸다. 나도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며칠 전부터 목림프절 여기저기가 부어 올랐다. 금방 낫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왠걸, 퉁퉁 부어 올라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고, 전신통도 동반됐다. 당직 근무 중 열감이 느껴져 병동 체온계로 재보니 39.3도의 고열이 나고 있었다. 코로나 백신을 2차까지 맞았지만 아직 항체가 생길 충분한 시간은 지나지 않은 터라, 교수님께 상의를 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일은 어떻게든 메꿀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빨리 검사하고 치료받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급하게 동기에게 당직을 부탁한 후, 그렇게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응급실 격리실 침대에 덩그러니 누웠다.


당시 내가 맡고 있던 환자 중,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분이 두 분 있었다. 두 분 모두  가족들은 더이상의 적극적인 치료 (즉, 기관삽관, 투석 등)는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 였다. 그러면 보통 내과 주치의는 더욱 절박해 진다. 망가진 장기를 대체할 의학기술을 쓸 수 없다면, 오롯이 주치의의 관심과, 재빠른 조치 만이 환자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간 몇 번의 고비를 잘 넘겨 왔던 환자라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주치의 전공의가 몸져 누워 관심이 흐려지자 마자, 환자들 상태가 손 쓸 틈 없이 나빠졌다.  나 대신 이래저래 고군 분투한 펠로우 선생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환자 모두 한 날 한 시에 생을 마감하셨다. 내가 응급실 침대에 누운지 고작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대한민국 의료현실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너무 빈번하게 발생한다. 운명을 달리한 환자들은 과연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자신이 돌보던 환자를 내버려 둔채 수련을 포기한 1년차는 나쁜 의사인가? 몸이 아파 관심의 끈을 놓치고 환자를 소홀히 한 3년차는 나쁜 의사인가?


생명연장을 위한 의학장치를 거부한 가족들이 무자비한 사람들인가? 가족조차 포기한 환자를 살리겠다는 생각은 의사의 과도한 욕심이었나?


아니,

애초에 바이탈과를 선택한 우리가,

미련한 바보였을까?


다양한 생각이 교차하는 새벽이다.

 

2021년의 춥고 고단했던 겨울, 응급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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