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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윙크의사 Jan 25. 2023

퇴원하는 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까맣게 모르고서.

정신없이 구급차에 실려온 지 어느덧 17일이 지나 퇴원하게 되었다. 얼굴 수술 부위에는 덕지덕지 밴딩이 붙어있고 안정이 필요하지만 통원치료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 조금 더 회복되길 기다렸다가 추가 수술들 (ex. 눈꺼풀 올림근 접합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갑자기 병원 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엄마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졸지에 엄마를 잃었던 우리 집 강아지 만두에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동생과 내가 따로 나가 살다 보니 가족끼리 한 달에 한번 저녁식사 하는 날을 정해 놨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당일에 퇴원을 하게 되어 가족 식사 약속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과정을 겪어낸 우리에게는 다 감사하고 좋은 일들이었다.


좋은 일이지만 난 솔직히 병원을 떠나는 것이 무척 겁이 났다. 괜스레 미열도 나는 것 같고, 눈에서 피도 나는 것 같고, 전공의 시절 환자들이 왜 이렇게 퇴원한다고만 하면 꾀병? 을 부리는지 의아했었는데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병원은 불편한 면도 있지만, 상태가 나빠질 경우 곧바로 조치가 가능하니까. 최소한 내 몸의 의학적 상태에 대해서만큼은 안심해도 괜찮았으니까. 


불안한 표정으로 “저 진짜 가도 돼요?”라고 물어보시는 환자 분들에게, 나는 “익숙한 환경으로 돌아가 일상생활을 잘하는지 보는 것도 치료의 연장”이라 말하곤 했다. 분명히 잘 해낼 거라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 응원하며 보내던 기억이 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입원하기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으로 퇴원하게 되었다. 눈 한쪽이 안 보이고 얼굴엔 붕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대신, 예쁜 안대를 구매해 배송시켜 두었다. 퇴원날 새벽엔 잠에서도 일찍 깨서 쇼팽변주곡을 듣다가 눈물이 났는데, 엄마한테는 음악 때문이라고 괜스레 민망해서 둘러대었다. 


퇴원 후 당분간은 ‘한 눈으로 일상생활 적응하기’라는 새로운 퀘스트를 마주하겠지. 두 개의 눈으로 바쁘고 발랄하게 지내던 일상을, 한 개의 눈이 되어버린 다친 나는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과 불안을 뒤로하고, 새 퀘스트에 잘 적응해서 돌아오겠노라고 스스로를 단단히 부여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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