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끝난 줄 알았던 공포의 되감기, 잃어버린 눈에서 고름이 흘러나오다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다쳐서 응급실로 실려 온 지는 70일, 퇴원해서 일상으로 돌아간 지는 정확히 50일 만이다.
복귀를 앞두고, 일상에 적응하는 연습을 하던 참이었다. 혼자 지내는 연습, 그리고 이전까지 해오던 기능을 회복하는 연습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곧 벌어질 일들을 까맣게 모른 채 마음만 너무 앞섰나 싶다. 이 또한, 한 인간으로서 존재 의미를 되찾으려는 욕망과 힘겨운 발악이었겠지만.
지난 새벽, 유난히 잠을 설치고 꿈에 쫓겼다. 싸우고 때리고 맞고 도망가는 모든 종류의 액션이 담긴 꿈이었는데, 일어나 보니 식은땀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화장실 거울을 쳐다봤는데, 내 왼쪽 눈이 평소와 아주 달랐다. 지저분한 누런 찌꺼기가 들러붙어 있는데, 코 안 쪽으로는 역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깨닫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일단 손을 잘 씻고 휴지로 눈 주변을 닦았다. 그런데 웬걸. 씻어도 씻어도 왼쪽 눈꼬리 쪽으로 끊임없이 누런 고름이 흘러나왔다. 이번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떻게 살린 눈인데….‘ 불안했지만, 겉으로는 내심 의연한 척을 하며, “엄마, 나 병원에 좀 가봐야겠는데.”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했지만, 마음속이 복잡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얼굴에 또 무슨 절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눈 하나를 잃은 것에 겨우 적응하고 있는데, 난 또 어떤 불행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또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다른 일정이 있었던 엄마 대신, 아빠가 약속까지 취소하고 데려가 주시기로 했다. 혼자 갈 수 있다고 거듭 이야기했으나, 구태여 같이 가시겠다고 한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자식 일이 걱정되고 보호하고 싶은, 당연한 부모 마음인 것을. 죄송함과 감사함은 잠시, 긴장한 나는 차 안에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내 상태를 보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교수님들은, CT와 MRI를 찍자고 하셨다. 결과는 참담했다. 부러진 코뼈와 눈 주변을 덧대놓은 임플란트 주위로 무언가 지저분하게 잔뜩 고여 있었다. 즉, 수술 부위 주변으로 결국 균이 감염되었고, 감염으로 생긴 고름집이 커지다 못해 눈가의 뚫린 구멍으로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부은 얼굴에서 느껴지던 열감과, 통증, 흘러나오던 고름까지.
‘입원’ 결정이 내려졌다. 항생제 치료를 위해서다. 정맥 항생제로 치료가 잘 안 되면 임플란트 제거, 그리고 재삽입 수술을 해야 한다. 본과 시절 당연하게 배웠고, 환자들을 통해 자주 접했던 수술 후 합병증이다. 그때의 나는, 수술하면 당연히 합병증이 생길 수 있는 거라고 설명하곤 했었다.
하지만, 막상 내게 같은 일이 닥치니, 이토록 절망적일 수 없다. 전공의 때, 상태가 좋지 않아 외래에서 당일 입원 통보를 받고 병실로 올라오던 환자들을 봤었다.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간절한 희망을 품던 환자들. 그 절망 속에서 환자들을 꺼내 올리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나는 많은 것이 이해가 된다.
첫 번째 퇴원 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제 더 좋아질 일만 있을 거라 쉽게 단언했다. 인생은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는 일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로. 절망과 희망은, 결국 한 끗 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행히도 두 번째 입원을 맞이하는 나는 이전보다 단단하며, 의식과 의지 모두 뚜렷하다. 보호자 없이 혼자 있는 병실에 입원하기로 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긴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의 가족들을 보내며 다짐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던 투병 전쟁을,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겸허히 받아들임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 꿋꿋이 이 전쟁에 맞서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