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 엘리 Oct 24. 2019

가성비가 지겨워졌다

치앙마이 가족여행을 세우다 현타가 왔다

 두 달 후면 우리 가족은 치앙마이로 떠난다. 9박 10일의 가족여행이다. 11년 만에 다시 가는 치앙마이. 이번엔 우리 딸과 함께 셋이서 그곳에 가게 된다니 설렌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벌써부터 구름 위로 붕 뜬 기분이다.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기분이다.


 비행기 표는 새싹이 돋는 계절에 일찌감치 끊어놨다. 시간은 잘도 흘러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도 오래다. 겨울옷을 꺼낼 채비를 마치자 12월에 떠나는 치앙마이 여행이 실감 났다. 그동안 미뤄둔 여행 계획을 짜야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숙소였다. 말이 '숙소'지, 두 글자로 끝낼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치앙마이에는 초호화 리조트부터 호텔, 콘도, 레지던스, 게스트하우스까지 종류도 가격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도 넓고 여행 프로그램도 다양해 일정과 동선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에는 3살 아이도 함께다. 밤마다 야시장이고 상점이고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현지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하는 남편도 있다. 바다가 없는 치앙마이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수영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겐 수영장은 필수 조건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필수 조건들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깨끗하고 쾌적한 시설, 널찍한 침대, 접근성 좋은 위치, 수영장, 키즈클럽 등의 부대시설, 맛있는 조식 등등.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면서도 예산 범위를 넘지 않는 적절한 가격까지.



사실, 호텔에는 가성비란 없다



 꼬박 이틀의 에너지를 쏟아부은 끝에 우리 가족에게 맞는 최적의 호텔을 예약할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은 남았다. 우리에게 시간도, 비용도 한정적이었기에.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호텔에는 가성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호텔에서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설이 낡았거나, 위생이 불량이거나, 위치가 멀다던가,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방이 좁다던가, 조식이 별로거나, 직원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던가, 수영장 같은 부대시설이 없다던가 하는.


 저렴하고도 좋은 호텔은 없었다. 비싸면 비쌀수록 비싼 이유가 있었고, 싸면 반드시 싼 이유가 있었다. 다양한 리조트, 호텔을 검색하고 이용 후기를 확인했지만, '가성비가 좋다'라는 말에는 '이러한 부분들이 아쉬웠지만 이 정도 낮은 가격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후기마다 꼭 한 번씩 보게 되는 '가성비'. 나는 수십 개의 숙박 시설을 검색하며 마주한 이 '가성비'가 지겨워졌다. 정확히는, '가성비를 따져야 하는 현실'이.



호텔은 비싸면 비쌀수록 좋은 법이다. 치앙마이 포시즌스 리조트(좌) 치앙마이 아난타라 리조트(우) © 각 리조트 홈페이지



 스물다섯, 내가 치앙마이에 머물던 시절에는 숙소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을 때였다. 방에 머무는 시간도 별로 없었다. 아침부터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고 카페에 머물고 시장 거리를 헤맸다. 밤에는 라이브 공연을 보러 다니고 야시장을 쏘다니는 등 온종일 밖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개인 방, 개인 침대, 개인 화장실만 충족되면 어디든 개의치 않았다. 설사 에어컨이 없어도 한낮에 에어컨이 빵빵한 쇼핑몰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면 그뿐이었다.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삶,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세 살 아이를 둔 삼십 대 중후반의 엄마 입장에서는 고려할 사항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그 고려할 사항은 대부분 돈과 교환이 가능한 것들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할수록 더 훌륭한 조건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있다.


 국내든 해외든 막론하고, 어린아이와의 여행에서 숙소는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컨디션과 체력을 생각하면 중간중간 숙소로 들어와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루에 여러 일정을 소화할 수도 없다. 그만큼 숙소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머무는 동안 시간을 알차게 보낼 다양한 시설들이 필요하다. 단 하루를 묶더라도 쾌적하고 편안하고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곳이 좋은 이유다. 숙소를 많이 옮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기간 중 며칠만 비싼 숙소에 '몰빵'하는 것이 안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과 집중은 어려운 가운데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욕심을 버리면 된다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아이 세 살 때 치앙마이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텐데, 하는 생각에서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매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그 소중한 시간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 순간들을 가능한 최상의 것들로 경험시켜주고 싶은 부모의 바람이 있다. 그리고 그 바람이 한낱 바람으로 머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또 다른 바람을 가져본다.






 여행 계획을 짜고 숙소를 예약하다 뜻하지 않게 '현실 자각 타임'을 가졌다. 뭘 하나 사도 가성비, 가성비, 가성비. 그동안 '가성비'를 따져서 구입했던 모든 것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됐다. '가성비'라는 말 뒤에 숨겨진 많은 의미들을 곰곰 생각해봤다. 늘 가격에 비교해 생각하는 습관을 돌아보게 됐다. 언제나 가격이 최우선 조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치앙마이 여행에서만큼은 가성비를 따지지 않겠다, 고 다짐해본다. 가격 말고 다른 것, 이를 테면 우리 딸이 좋아하는 액티비티, 남편의 입맛을 사로잡는 태국 음식, 치앙마이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소, 안전하고 편리하게 움직이는 이동수단 등등을 우선순위에 두고 싶다. 비용을 더 지불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삶, 적어도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구전동화, 한 번쯤 의심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