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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Oct 17. 2019

구전동화, 한 번쯤 의심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 들은 이야기를 우리 아이에게 그대로 들려줘도 될까?

 이야기는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은 우리 부모의 부모, 그 이전의 부모, 또 그 이전의 부모 세대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말도 못 하는 어린 시절부터 구전동화를 듣고 자란 덕분에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몸에 밴 듯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이제는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들려준다. 우리 부모가 그래 왔던 것처럼.


 어렸을 적부터 수없이 들어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수많은 이야기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줄줄 읊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이야기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엄마가 된 후였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전하면서 '흠, 근데 과연 이게 맞을까?' '이렇게 말해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이런 생각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은 맞고,
베짱이처럼 노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토끼는 언제나 빠르고, 거북이는 항상 느리다고 할 수 있을까?
경주를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했다면 과정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화란 동물 또는 식물에게 인간의 감정을 담아 교훈을 전달하는 이야기이다. 우화 중 가장 유명한 '이솝우화'는 2,500년 전 그리스인 인 이솝이 지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솝우화는 이솝이 글로 남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보태지고 수정되면서 각색되었다. 아마 그중에 누군가는 많은 이에게 전달하고 싶은 '교훈'을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한가로운 어느 날 아침, 딸이 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동요 영상이었다. 줄거리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였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개미들은 줄지어 먹을 것을 창고에 나르고 있다.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들 뒤로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바이올린을 켜며 햇살을 즐기고 있는 베짱이가 있다. 개미는 놀고 있는 베짱이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번 보고는 다시 일터로 향한다. 계절이 바뀌어 추운 겨울이 왔다. 눈으로 뒤덮인 산속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는 베짱이가 따뜻하고 풍족한 개미네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구걸을 한다. 개미는 문을 열고 온기가 가득한 집에 베짱이를 들이고는 먹을 것을 나눠준다. 다시 따뜻한 봄이 찾아왔고, 베짱이는 개미와 함께 열심히 일을 한다.


 세 살배기 아이가 보기에도 '개미처럼 사는 게 옳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것 같았다. 나는 그 부분이 걱정스러웠다. 이야기처럼 정말 개미처럼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이 보장되는가? 베짱이처럼 좋은 날씨를 즐기며 여유를 부리면 꼭 불행한 미래를 맞이하는가? 세상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더욱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원하는 것은 누구일까? 자본가 들일 것이다. 자본가들은 지시받은 대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여유롭게 노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하고 불만사항을 요구할 테니까.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진 이유와도 같다.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 아니라, 생각 없이 지시를 잘 따라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토끼와 거북이 경주 이야기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느린 거북이는 빠른 토끼에게 경주를 제안한다. 모두 토끼가 이길 것이라 예상하지만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 자만한 토끼가 중간에 잠을 잤고, 그 사이 거북이는 성실하게 경기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아이는 물었다. "엄마, 토끼는 빠르고, 거북이는 느려?" 나는 아이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생각해보니 언제나 토끼가 빠르고 항상 거북이가 느리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달리기 경주를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했다면 어땠을까? 바다에서는 빠른 거북이, 느린 토끼 아니었을까? 그랬다면 토끼와 거북이는 어떤 자세로 경기에 임하게 됐을까?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고심 끝에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생각해보니,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거북이는 바다에서 날쌘돌이거든." 내 말을 들은 아이는 나를 올려보며 얘기한다. "채유처럼? 거북이도 채유처럼 수영을 잘해?" 신이 난 아이는 자신의 침대에서 거북이 인형을 가져와서 함께 수영하는 시늉을 한다.




 아이는 부모의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흡수한다. 내가 무심코 했던 말투를 따라하고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습관을 따라했을 때 흠칫 흠칫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 등 나의 많은 부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알고 있던, 너무나 익숙해서 생각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한번 쯤 의심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솝우화같은 구전동화처럼.

 

  지금의 아이가 커서 잘 훈련받은 숙련된 노동자로 크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열린사고로 문제의식을 갖고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행동하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으로 크기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창의력 발달에 좋다는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상상력을 키워주는 어떤 것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아이에게 구전 동화를 아무런 의심없이 들려주고 있다. 그 이야기가 아이의 생각에, 아이의 행동에, 그리고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이야기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설사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 벗어나는 것이라 해도. 익숙하고 잘 아는 것이 언제나 참된 진리는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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