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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Oct 08. 2019

어린이집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하며 생긴 일

알고 보니, 책이 아니라 술로 맺어진 엄마들

 뜻이 맞는 엄마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한지도 어느덧 3개월째다. 이른바 '자조모임'. 우리의 매개체는 아이, 그리고 어린이집이다. 7명의 엄마 모두 자녀를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고 아이들은 모두 한 반에서 지내는 동갑내기다. 나는 아이가 하나지만, 아이가 넷인 집부터 셋, 둘까지 다양하고, 전업맘, 워킹맘, 프리랜서 맘 등 엄마들도 다양한 편이다.


 그렇게 다양한 육아 환경에 있는 7명의 엄마들은 2주에 한 권씩 동일한 육아서를 읽은 후 함께 모여 독서 토론을 벌인다. 형제, 자매가 있는 경우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대해야 하는지, 아이가 떼를 쓸 경우 부모가 취해야 하는 태도, 아이와 놀이 시간에 부모가 어떻게 참여하는 것이 좋은지 등등 책의 내용에 따라 한 주제에 집중해 서로의 경험을 나눈다.


 같은 책을 읽고 그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기대 이상으로 유익했고 흥미로웠다. 똑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서로가 처한 육아 환경과 상황도 다르고, 아이들의 성향도 다르기에 다채로운 경험담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내가 변화할 수 있었던 게 가장 고마워



 우리 모임 중 가장 큰 언니는 아이 4명의 엄마로, 큰 애가 초등학교 4학년, 막내는 3살이다. 언니는 자신이 아이를 여러 명 키웠음에도 요즘처럼 편안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육아를 하는 것은 정말 처음, 이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육아서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모임을 통해 다양한 책을 읽고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고, 자신이 변화하니 아이들과의 관계가 너무 좋아졌다면서 감사하다는 진심 어린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좋은 책, 그리고 좋은 사람들


 사실, 나는 책은 혼자서 읽으면 되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독서모임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고, 그저 아이와 문제가 생길 때만 찾아 읽었던 육아서를 꾸준히 읽고 싶은 마음에 참여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편협한 생각은 첫 모임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나이와 상관없이 대부분 둘째 이상의 자녀를 둔 엄마였으므로 나보다 육아 경험이 많은 데다가 육아에 열정적이기까지 한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 독서모임이 단순히 책을 함께 읽는 모임만은 아니구나. 깨달았던 것이다.


 아이 둘 이상의 엄마들은 무엇하나 전전긍긍하는 법이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생긴 크고 작은 일들, 아이들끼리 놀다가 벌어진 일, 아이의 안 좋은 습관, 버릇 등등에 대해 초월한 태도를 보였다. 내려놓음의 경지에 이른다는 게 이런 것일까.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태도가 아니라, 작은 것에 집중하다 큰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말하고 차분하게 행동하는 것이랄까. 다른 일도 아니고 우리 아이일이기 때문에.


 그건 3살 아이 하나만 키워온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 조금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육아를 해도 되겠구나. 아이가 걸어갈 긴 인생을 크게 보면 지금 이 문제는 별일도 아니겠구나. 아이가 크면서 생길 수 있는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의미부여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모임을 가지면 가질수록 나도 알게 모르게 그녀들의 무던하고 차분한 태도를 배워갔다. 육아에 있어서 조바심 내고 가볍게 행동하던 나의 안 좋은 습관도 차츰차츰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알고 보니, 애주가 엄마들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즈음, 누군가가 밤 모임을 제안했다. 일하는 엄마를 배려한 것이었다. 문제는 장소였다. 밤에 커피 마시는 것은 내키지 않고.. 어디 좋은 데 없을까? 그때였다.



우리.. 가볍게 맥주 한잔씩 하며
얘기 나누는 것은 어때요?


 

시작은 가볍게 생맥주로 © Unsplash



 누군가 슬며시 맥주 모임을 제안한 것이다. "아우 좋지요~" 7명의 엄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찬성했다. 시원한 늦여름밤, 맥주 마시며 책 이야기를 나눈다?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청량한 맥주가 들어가니 대화 주제도 풍성해지고 모임이 더욱 활기를 띄었다. 누구 하나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 모임은 4시간, 5시간, 훌쩍 넘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밤늦도록 동네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맥주를 마신 적이 언제였던가? 이사를 많이 다녀서 동네 친구가 없었던 나는 이런 경험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아이, 남편, 시댁의 험담, 육아의 불평불만에서 벗어나(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육아를 하기 위해 토론하는 건설적인 모임이라니!



책과 술이 함께하는 독서모임



 원장님의 배려로 어린이집에서 모임을 한 적도 있었지만 뭔가 활발한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모두들 아쉬워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술과 함께 해야 하나 봐. 누군가 말했고 우리는 동의하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또 2주 후. 그날따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뚫고 오전 10시 30분에 엄마들이 모였다.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가볍게 한 잔 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서 하기로 했다.


"비 오는 날엔 막걸리, 파전이지!"

"언니, 이 시간에 문 연 곳이 있어요?"

"저기 전집 11시 30분부터 열어, 나만 따라와!"



비오는 날, 파전, 모듬전에 막걸리 한 잔 (엄마들은 음식 사진 안찍는 관계로 포털 사이트에서...) © 네이버 검색



  빗소리를 들으면서 먹는 파전에 막걸리라니. 어떻게 이야기가 술술 안 나올 수 있겠는가. 육아서를 읽은 후 느낀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고, 최근에 있었던 아이와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때때로 현재의 고충을 토로하며 그렇게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운다 하더라도 각자 사는 곳이 너무 멀다 보면 어린아이를 데리고 먼 걸음을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운전해서 가는 곳에서는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기도 어렵다. 결론은 자주 만날 친구들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자조모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알고 보니, 책과 술로 맺어진 한 동네 어린이집 엄마들. 이 엄마들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끈끈한 사이로 발전해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애초에 모임은 4개월간 하고 11월에 마무리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한 회 한 회가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11월이 지나도 아마 독서모임을 빙자한 애주 모임은 쭉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흠.. 나만 그런 건가? 아무튼. 우리, 계속 모임 해요. 제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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