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 엘리 Dec 05. 2019

공동육아 어린이집 설명회에 가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육아 가치관과 교육관에 맞는 현재 어린이집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설명회를 마치고 나니 순간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말한,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는 말 말이다.

 

 내가 딱, 그러지 않았나 싶었다. 지금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만족하면서도 그곳에 없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깨닫는다.

가정 어린이집이라 공간이 좁으니 아이가 더 넓은 곳에서 생활했으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들이를 다녔으면

자연을 더 가깝게 느끼면서 자연과 함께 클 수 있었으면

아이보다 더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과 함께 놀면서 어울리는 힘을 길렀으면




 

 

 3,4세 영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보육이다. (라고 생각한다.) 집에 버금갈 정도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최우선이다. 건강한 먹거리, 쾌적한 공간, 세심한 보육교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지금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은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별도의 예체능 프로그램 없이 그림책과 오감놀이, 하루에 한 번 산책에 집중하는 방식도,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구직기간도 긴 보육교사들을 보유하고 있어 원의 운영이 안정적인 것도, 공공형 어린이집으로 선정된 것도, 한살림과 생협 먹거리만 사용하는 것도, 종종 부모교육, 전문가 특강, 안전교육 등을 실시하는 것도, 원장님의 교육 철학과 가치관이 나와 일치하는 것도.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딱히 불만이랄 게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하기 전까지는.



어린이집 친구들과 매일 아침 산책을 통해 계절을 느끼며 자라는 아이  © 엄마 엘리




 아이는 커가면서 점점 더 활발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집이나 실내보다는 탁 트인 야외를 좋아했다. 걷기 시작한 11개월부터 아파트 복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리 힘을 키우더니, 15개월 땐 혼자서 그네에 앉아 탔으며, 18개월 전후에 미끄럼틀 사다리를 오르는 등 활동적인 기질을 보였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매일 아침 7시경 동네 아파트 산책길을 걸으며 세상을 탐색하는 것을 즐기던 아이였다.


 모래밭으로 된 놀이터를 양말 벗고 맨발로 다니고, 떨어진 나뭇가지, 돌멩이, 열매 등을 가지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아이가 가정 어린이집에서 답답함을 느끼는구나. 4세가 되면 좀 더 큰 기관으로 옮겨주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처음에는 숲 유치원을 생각했다. 지금 다니는 곳이 영아 전문이라 4세까지 밖에 못 다니니 어린이집 졸업 후 유치원 갈 나이가 되면 숲 유치원처럼 자연 체험에 중점을 두는 곳이 우리 아이랑 잘 맞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집 근처 찾아보니 숲 유치원이 딱 하나 있었다. 그래서 카페도 찾아보고 동네 엄마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이름만 숲, 이고 다른 유치원과 큰 차이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많았다. 원의 위치도 차가 많이 다니는 주택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숲 한 번 나가려면 어디 멀리 나가야 할 것 같아 아이들의 안전도 염려되었다. 




매월 푸드 브릿지 식재료를 활용해 요리하고, 세시절기 활동의 일환으로 송편을 빚고, 김장을 한다 © 엄마 엘리



 

 그러던 차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알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이자 지인인 비단 거북이를 통해서였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생소했는데, 비단 거북이님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설명회를 가다 글을 읽고 이거다! 싶은 거다. 여기가 바로 내가 찾던, 우리 아이에게도 잘 맞고 나의 육아관과 가치관에도 부합하는 기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꽂혀서 많은 글과 경험담을 찾아 읽었고 아이 둘 모두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보내는 비단 거북이님을 만나 보다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부모 조합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부모 참여가 많아 번거로울 수도 있으나 아이에게는 정말 좋다고, 아이가 정말 좋아할 것이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터전마다 다를 수 있으니 설명회에 꼭 가보라고.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나는 결심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보내야겠다고. 4세부터 보낼지, 5세부터 보낼지는 좀 고민해봐야겠지만 아이의 다음 기관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지난달,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아이랑 남편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한 공동육아 설명회를 다녀오게 된 것이다.



낙엽 왕관을 만들고 블럭을 쌓고 밀가루 아이스크림을 만들며 좋아하는 아이 © 엄마 엘리




  어디든, 설명회는 꼭 참석해야 하는 것 같다. 구성원을 직접 만나보고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생각과 분위기를 느껴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홈페이지만 봐서는, SNS를 통해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 현장에는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어떤 교육관과 철학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조합비도, 월 비용도 예상대로였다. 집과 거리가 좀 있고 셔틀버스가 운영되지 않아 매일 자차로 등 하원을 시켜야 한다는 것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게 찜찜하고 왠지 모르게 여기가 우리 아이랑 잘 안 맞을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어쩌면 직감, 감각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내가 우려하고 있는 부분들이 조금 더 명확해졌다. 질의 과정을 통해 이곳이 우리 가족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강한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포인트는 크게 3가지였다. 

(참고로, 참석했던 어린이집에 한정하여 내가 주관적으로 느낀 것이며 모든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공통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1. 유연하지 않은 등 하원 시간

 여기는 전체 인원이 9시 30분 등원해서 5시부터 하원을 할 수 있었다. 운영자는 일반 기관과 달리 등 하원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전에 2~3시간 이상 나들이를 다녀오기 위함이었다. 하원도 낮잠을 자고 오후 간식을 먹고 자유놀이를 하고 난 후 5시부터 하원이 가능한데 그전에 하원은 가급적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먼저 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나머지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동요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이들 각각의 기질과 컨디션이 아닌, 공동체 생활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낮잠 안 자는 아이는 어떻게 하나요? 내가 질문했을 때 운영자는 낮잠도 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해서 자게끔 독려한다고 답했다. 낮잠이 교육이었던가? 아이 중심이라고 하면서 잠이 없는 아이의 자지 않을 의사도 존중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도 가끔 원에서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가 이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내년이면 이제 4세가 되는 아이가 아프거나 불편할 때 집에 갈 수 없거나, 가도 선생님들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면 아이도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전업 엄마가 되었는데,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내가 아이를 5시 넘어서까지 원에 두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워킹맘에게는 이게 큰 장점이 되는 것 같다.) 내 자유시간을 좀 더 늘리기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며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내 두 눈에 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게 되었다.



2. 사교육 지양 서명, 꼭 해야 할까? 

 사교육을 지양하고 적기 교육을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6세만 돼도 유치원에서는 보육보다 교육에 더 초점을 맞춰 한글이나 영어, 수학 등 인지교육을 하는 기관도 많다고 들었는데, 나는 아이가 빨리 배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이의 속도대로, 아이의 관심대로, 아이의 욕구대로 크길 바라고 있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적기 교육이란 방침이 좋았다.


 그런데 입학을 하면 사교육을 지양한다는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 부모의 자율이 아니라, 서명까지 해야 하냐고. 공동체의 일환으로 함께 규정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훌륭하고 좋은 취지도 강제성을 띄면 그 의미가 퇴색하기 마련이다. 아이가 태권도, 수영, 미술 등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표현할 때 오히려 내가 아이의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3.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장점 대부분이 현재 어린이집에서 충족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에서 발행한 팸플릿을 보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교육과정의 특징이 잘 나와있다. 그중 내가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이렇다. 생활중심, 생태중심, 놀이중심, 아동 중심, 지역사회 중심, 안전 먹거리. 이곳 원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였다. 어? 여기서 하는 것들, 이곳 아이들의 생활이 지금 아이가 다니고 있는 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네? 


 그랬다. 돌이켜보니, 현재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의 원장님의 철학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철학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많았다. 지금 원장님도 아이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놀이 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덕분에 주관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한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과 생활에서 배우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매일 가까운 아파트 단지 내를 산책하며 봄에는 목련과 개나리와 개미를 관찰하고, 여름에는 앵두를 따고, 가을에는 낙엽을 줍고 감을 따는 등 자연을 자주 접한다. (산책 시 우리 아이가 걷는 속도가 가장 느린데, 호기심이 많고 관찰력이 좋아서 그렇다는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이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명절에는 한복을 입고 전통놀이를 하고, 매월 채소와 친해지는 푸드 브릿지의 일환으로 요리 놀이를 하며, 분기에 한 번꼴로 아동 뮤지컬, 아동도서관 등 근거리 나들이도 한다. 


 원이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서 지역사회는 물론, 동네 주민이기도 한 같은 반 어린이집 엄마들 7명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을 통해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질 수 있었다. 아이는 이웃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주말 농장 임대해서 농사짓고 
숲 속으로 캠핑 가고
우리가 더 신경 쓰면 될 것 같아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설명회에서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느라 남편과 의견을 나눌 수가 없었는데, 설명회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남편이 운전하면서 말했다. 우리가 아이가 최대한 자연을 느끼면서 성장할 수 있게 신경 쓰면 될 것 같다고. 어디 기관을 보내느냐 보다 키우는 부모의 가치관과 철학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나는 조용히 끄덕거렸다. 남편은 동네 근처 주말 농장 임대하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면서 알아보겠다고 열의를 보인다. 아이랑 함께 봄에 상추도 심고 감자도 심어서 나중에 수확하는 기쁨도 느끼게 해 주겠다고 한껏 들떠있다. 그런 남편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는 내년에도 다니던 원에 다니기로 했다. 5세가 되면 걸어갈 수 있는 유치원으로 알아볼 생각이다. 원래 잠이 많지 않았던 데다 크면서 잠이 더 줄고 있는 우리 아이에게는 낮잠 자지 않고 일찍 하원 하는 유치원이 더 나을 것 같다. 어떤 기관에 보내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는 남편의 말이 어쩐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어떤 유치원을 보내던 유치원 설명회는 꼭 가봐야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엔 꼬마 장 미셸 바스키아가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