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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Dec 06. 2019

글도 돈으로 교환이 되나요?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과거의 나를 죽이기 위해, 난 글을 쓴다

 

 나에게 글쓰기란 놀이다. 어떠한 보상을 바라지 않고 행위 자체에서 기쁨과 성취감을 느끼니 말이다.


 그렇다고 글 쓰는 과정이 마냥 재밌고 즐겁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글 쓰는 과정은 때때로, 아니, 꽤 자주 나에게 모욕감을 주고 상실감을 주기도 하며 무력감을 느끼게 하니까.

 

 글쓰기가 미워 보일 땐 이런 생각을 한다.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새 글이 차곡차곡 쌓일 테지. 그렇게 모인 글들이 나중에 한꺼번에 보상을 안겨줄지도 몰라, 적금처럼. 하는 생각. 그래서 난 때때로 적금 붓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3년 만기 일지, 30년 만기 일지 모를 적금이지만.


 




단편 소설, 금상이 되어 돌아오다



 그런데 얼마 전, 기대하지 않았던 복권에 당첨되었다. 로또로 치면 한 2-3등 정도 되려나? 상금 말고 기분이. 그만큼 뜻밖이었고, 또 좋았다는 얘기다.


 남편 회사에서 해마다 가족 문예전을 개최한다. 올해 소설, 수필, 사진 부문에 참가하였는데, 내가 쓴 소설이 금상으로 뽑히게 된 것이다. 다른 부문은 대상도 있었지만 소설 부분은 금상이 최고상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은상 이상은 시상식도 참석하라고 했다.


 시상식은 예상보다 화려했다. 운영 측에서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마련한 자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각 수상작을 전시한 별도의 전시관이 따로 구성되어있었고, 전시관 오픈에 앞서 테이프 커팅식이 진행됐다. 수상자 대표 6인 중 내가 포함되어 난생처음 테이프 커팅이란 것도 했다. 상장과 상금 보드판, 꽃다발 수여식이 끝나고 참석인원이 다 함께 전시관을 둘러본 후에 정갈한 식사가 차려진 곳에서 느긋하게 오찬을 즐겼다. 식 내내 귀빈으로 대접을 받고 있자니 마치 내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남편과 아이에게도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이벤트를 선사한 것 같아 뿌듯함을 느꼈다.



 실로 오랜만에, 자랑거리가 되었다



 문예전에서 금상을 수상하자 생각보다 더 많은 분들께 축하인사를 받았다. 이게 이렇게 축하받을 일인가? 싶게 격한 반응이었다.


 특히, 친정과 시댁에서는 내가 마치 신춘문예라도 당선된 것처럼 기뻐했다. 엄마는 회사 사람들은 물론 온갖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렸고, 하와이 여행 중이셨던 아버님, 어머님은 함께 여행 중인 지인들에게 거하게 한 턱을 내셨다고 했다. 며느리 덕분에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고, 정말 자랑스럽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엄마에게 연락을 받은 큰 이모는 따로 전화까지 주셨다. 언제부터 글을 썼냐고, 앞으로도 매진하라고, 축하한다고.


 밀려드는 축하 공세에 나는 어리둥절 해졌다. 큰 이모와 전화를 끊은 후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게 뭐라고. 엄마는 큰 이모한테까지 전화를 하냐. 사람 무안하게.

내가 이런 거밖에 자랑할 거리가 없는 딸이었나?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아니지! 아직도 자랑할 수 있는 딸인 거지!

 남편의 그 말이 참 고마웠다. 그의 말마따나, 나는 '자랑스러운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 나에게도 그렇게 주입시켰다. 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자랑스럽고 자랑할게 많은 딸, 며느리, 엄마야.라고.






 단편 소설 수상은 나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일종의 허락을 받은 기분이랄까. 너만 좋다면 취미로 소설쯤이야 얼마든지 써도 괜찮지, 같은? 금상 받은 소설은 내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쓴 습작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소설가를 꿈꾼 적도 없었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딱히 소설을 즐겨 읽는 편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올여름에 첫 소설을 쓰게 됐다. 불현듯, 소설이 쓰고 싶어 졌다. 이런 심경의 변화는 어느새 성큼 다가온 계절처럼 자연스럽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몰랐지만 쓰고 싶은 내용은 있었다. 주로 내 안에 어두운 부분이 끌려 나왔다. 꽁꽁 숨겨놨던 우울한 감정들, 상처 받았던 기억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피해의식, 열등감 같은 것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스럽게 소설도 어두워졌다. 그래도 다 쓰고 나면 후련했다. 작은 목표를 선정해 몰입하는 것을 즐기는 내게 소설 신인상 공모는 확실한 동기가 되어주었다. 그 해 여름, 두 달간 총 4편의 단편 소설을 작성해 2번의 공모전에 응모했다. 결과는... 참여하는데 의의를 뒀다고 말하고 싶다. (입문자가 당선을 기대하는 것만큼 놀부 심보도 없고)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종종 '엄마가 되고 비로소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중'인 것 같다, 는 말을 하곤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독서를 즐기고 글쓰기에 빠져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소설을 쓸 줄이야. 급기야 웹소설도 썼으며, 이번 달에는 그동안 수집한 아이의 말에서 영감을 받아 동시를 쓰기 시작했고. 내년에는 동화 쓰기에도 한 번 도전해볼 생각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나는 지금 여기 없는 게 분명하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자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는 칼럼니스트 김영민은 이렇게 말했다.

 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온다. 밤하늘의 별이 반짝여도,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 수 있다. 별이 폭발하기 전에 발산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우리가 그 별을 지금 보고 있을 뿐. 나와 공동체는 이미 죽었는데 현재 부고가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


 그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과거의 나는 이미 죽었다. 내가 죽은 줄 모르고 있을 뿐. 온전히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진 엄마가 된 이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라고. 과연, 부고는 죽음보다 늦게 오기 마련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저서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에서, 당신이 운이 좋으면 1년 전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고 했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나는 확실히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종종 요즘 내게,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어? 내가 이런 사람이야? 이런 걸 좋아한다고? 하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으니까.

 

 또다시, 마음 같아서는 자주, 내 글이 돈으로 교환되는 일이 생기길 바란다. 생계를 위한 벌이라기보다 (생계에 도움이 될 정도라면 더없이 감사하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되고, 꾸준히 정진할 수 있는 활력소가 되어주는 동시에, 가족들의 자랑거리가 되어주기도 하니까. 나에게는 그만큼 의미 있고 행복한 보상도 없으니까 말이다.


 아! 그리고 글을 쓰는 이유가 한 가지 추가되었다.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과거의 나를 죽이기 위해, 오늘도 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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