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아이와 치앙마이 9박 10일 여행 #1 동물교감 편
아이가 동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것은 생후 15개월 무렵이었다. 그 시기에 평창의 작은 동물농장에 갔는데 아장아장 걷던 아이는 토끼 수십 마리가 뛰어노는 우리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 당근을 먹여주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로 돼지, 양, 염소에게 다가가 손을 쭉 내밀어 엄마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자신이 주는 먹이를 동물들이 잘 받아먹자 아이의 표정은 해사하게 빛났다. 거칠게 쪼아대는 아기 젖소의 힘도 이겨내며 우유를 먹이고, 수십 마리가 몰린 기니피그에게도 일일이 먹이를 건네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승마체험을 하겠다고 손짓하더니 가장 큰 말에 앉아 마당을 몇 바퀴나 돌며 여유롭게 말을 타는 것이 아닌가.
그때 생각했다. 우리 아이는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동물에 겁을 내지 않는구나.
그리고 결심했다. 아이가 좀 더 잘 걸을 수 있게 되면 아이와 함께 치앙마이로 가야겠다고.
대망의 2019년 12월. 우리 부부는 35개월 된 아이와 함께 치앙마이로 날아갔다.
아이와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컨디션'일 것이다.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취향과 기호에 맞는 일정이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치앙마이 여행의 콘셉트는 딱 두 가지였다. 동물과 수영.
하루에 한 번은 수영장에서 놀 생각으로 수영장 시설이 잘 되어있는 곳을 선별해 숙소를 정하고, 3세 아이도 충분히 동물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곳에 중점을 두고 일정을 짰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안타깝게도 우리가 도착한 주에 치앙마이가 평년보다 기온이 떨어진 탓에 한낮에도 수영은 힘들었다. 수영장 물이 계곡 수준이었다는.
그래도 동물 체험만은 제대로, 기대 이상으로 즐길 수 있었다. 아이가 물개 손뼉 치며 좋아한 3곳은 아이에게도, 엄마 아빠에게도 행복하고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줬다.
태국은 코끼리의 나라다. 그중에서 치앙마이는 코끼리 프로그램이 발달된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아이와 함께 하기에 코끼리를 학대하는 곳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코끼리 보호소 정글 생츄어리. 라이딩이나 코끼리 쇼 없이 자연 그대로 생활하는 코끼리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아이가 조금 더 컸다면 하루 일정을 했을 텐데, 3세 아이의 체력을 고려해 반나절 투어를 신청했다.
호텔에서 썽태우라는 트럭을 타고 1시간가량 가야 하는 것이 부담되었지만 아이는 썽태우 타기도 즐기는 듯했다. 울창한 나무와 숲에 둘러싸인 곳에 다다르자 자유로이 거니는 코끼리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마치, 코끼리 집에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달까.
이 곳에서 코끼리에게 직접 먹이를 주고, 코끼리를 가까이서 만져볼 수도 있으며, 코끼리와 함께 강물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고 설명해주니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 홍콩, 브라질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이 모두 모였다. 빙 둘러앉은 후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자기 차례가 오자 야무지게 자신을 소개하는 채유. 예상치 못한 35개월의 당차고 깜찍한 행동에 다들 사랑스러운 웃음을 터뜨린다.
봄봄! 봄봄!
아이는 양 손에 바나나를 쥐고 연신 봄봄, 봄봄 하고 바쁘게 외친다. 코가 손인 코끼리답게 코끝에 바나나를 놓으면 입으로 가져가서 먹지만, 봄봄, 하고 외치면 코끼리가 코를 하늘 위로 쳐들고 입을 쫙 벌려 입에 직접 먹이를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코끼리 혓바닥의 감촉까지 느낄 수 있다. 아이는 코끼리 먹이 주는 시간을 가장 즐거워했다.
다음 시간은 코끼리 머드팩 발라주기와 수영시키기. 가까운 강물에 들어가 코끼리가 좋아한다는 진흙도 몸에 발라주고 샤워도 시켜주면서 코끼리랑 함께 강물에 퐁당 빠졌다. 다행히 물이 차지 않아 아이도 코끼리와의 물놀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코끼리가 코로 뿜는 물세례를 맞으며 아이는 손뼉을 치며 외쳤다.
정말 재밌어!
한번 더!
치앙마이 동물원은 우리의 치앙마이 여행 중 가장 첫 번째 일정이었다. 11년 전에 남편과 함께 찾았을 땐 제대로 된 동물 한 마리 보지 못하고 등산만 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엔 트램을 같이 예약했다. 걸어서는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다.
그런데 트램을 타기도 전에 대박 동물을 만났다. 덩치 큰 하마 네 마리가 우리 바로 밑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게 아닌가. 서울대공원에 갔을 땐 물에서 잠수하고 노느라 멀리서 매끈한 등만 겨우 볼 수 있었는데, 눈 앞에서 하마 전신을, 게다가 코 앞에서 하마 입 속까지 볼 줄이야! 엄마가 먼저 흥분했다. 당장 하마 먹이를 사 와 아이와 함께 하마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하마는 야들야들한 풀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었다. 하마가 입을 한껏 벌릴 때마다 아이도 한껏 신이 났다.
그 옆이 바로 기린사였다. 기린 두 마리도 좋아하는 풀을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먹이를 따로 파는 것이 아니라 주위 나뭇잎을 따다가 주면 되었는데, 주는 족족 잘 받아먹는 두 마리의 기린과 한 번이라도 더 먹이를 주고 싶어 하는 딸내미 덕분에 아빠의 점프 실력이 몇 배는 늘은 듯하다. 아이는 너도 먹고 싶니? 이번에는 너도 달라고? 하면서 기린에게 자꾸 말을 건다. 동물들과 교감하는 능력이 남다른 걸까? 하고 잠깐 생각하다 도리도리.
가기 전에 강태식 소설가의 '굿바이 동물원'을 읽은 탓일까. 앉아서 대나무를 우적우적 씹어먹는 판다가 꼭 판다의 탈을 쓴 사람같이 보였다. 1인당 100밧을 더 내야 팬터를 볼 수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들어갔을 때 대나무 먹방이 한창이었다. 딱딱한 껍질은 이빨로 벗겨내고 안에 부드러운 속살만 먹어서 판다 배 위로 대나무 껍질들이 수두룩 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본 아이는 뭐 먹을 때마다 입으로 껍질을 까면서 "나는 판다야"라고 한다.
대체적으로 평이 좋았던 나이트 사파리. 기대를 너무한 탓인가. 우리 부부에게는 세 곳 중에 가장 인상 깊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특별한 기억과 추억으로 남은 곳이 아닌가 한다. 아이가 가장 만나고 싶어 했던 부엉이를 만난 곳이기 때문에.
부엉이!
부엉이는 밤에 안자!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는 동물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아이가 한 말이다. 나이트 사파리에 가서 부엉이를 가장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사파리 트램을 타고 초식동물, 육식동물을 관람하는데 부엉이, 올빼미 같은 조류가 보이지 않는 거다. 공작과 타조는 있었지만, 밤에 자지 않는 대표 동물인 부엉이가 없으니 아이의 표정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호랑이쇼까지 보고 입구로 나가는데, 저 멀리서 부엉이가 보이는 게 아닌가! 부엉이를 발견하자 아이보다 남편과 내가 더 기뻐했다. 부엉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팔에 앉혀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아이는 가장 큰 부엉이가 좋다고 했고, 그 부엉이를 아빠 팔에 앉혀 가까이서 쓰다듬고 눈도 마주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느라 아이는 카메라를 보지 않은 채로 사진을 찍었다.
아이가 밤에 자기 싫어하면 그 뒤로 아빠는 '부엉, 부엉'하며 부엉이로 변신했고 '부엉이가 밤새 지켜줄 테니 채유는 코 잘 자' 하면 아이는 알겠다며 순순히 잠이 드는 날이 이어졌다. 부엉이 재우기는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틀째인 지금까지도 아직 유효하다.
치앙마이 곳곳에서 동물들을 만났고, 아이는 그때마다 동물들에게로 달려갔다.
두 번째 숙소인 쿰 파야 리조트의 연못에는 커다란 잉어와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조식으로 먹다 남은 빵을 가져와 연못에 던져주니 물고기들이 우르르 달려와 먹었는데 그게 재밌는 채유는 묵는 내내 물고기 밥으로 조식 빵을 꼭 챙겨 왔다.
리조트에서도, 쌈 캄팽 온천에서도, 수영하다 말고 일광욕을 하고 있는 고양이에게로 달려가 예쁘다, 하며 쓰다듬기도 했다. 치앙마이의 고양이들은 사람의 손길을 싫어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는 고양이가 반가운지 아이는 고양이 주위에서 계속 맴돌며 고양이가 결국 귀찮아하며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말을 걸고 쓰다듬었다. 질척 질척.
아이는 선데이 마켓에서 집에 데려갈 코끼리 인형 하나를 골랐다. 코끼리를 애지중지 품에 안고 지나가다 만난 뱀 인형도 예쁘다, 쓰다듬더니 그냥 가기가 아쉬운지 뽀뽀도 쪽, 한다. 그 모습을 본 엄마, 아빠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진다.
아이는 어디서건 동물들과 헤어질 때면 손을 흔들며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는 매번 진심이었으리라. 열흘 동안 아이가 치앙마이에서 만난 수많은 동물들에게도 아이의 따뜻한 진심이 가닿았기를. 아이의 다정함이 고스란히 전해졌기를. 한치의 의심도 없이 당당하게 외친 아이의 그 인사말이 ㅈ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 하다.
안녕! 잘있어!
다음에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