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말 상처' 신문기사를 통해 아이랑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종이신문을 구독한지는 이달로 딱 1년 2개월이 되었습니다. 언론과 밀접한 PR AE로 산 세월이 있어서 매일 신문 보는 것이 익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독을 한 결정적인 이유는 모바일 뉴스로는 다양한 이슈를 접하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읽는 맛'이 달랐습니다. 아무래도 저에게는 '지면' 이 더 친숙했습니다. 전자 책보다 종이책이 주는 느낌을 더 선호합니다.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적 사람입니다.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자연스레 육아서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통해 유대인 교육법 중 하나인 하브루타도 알게 되었고, 아이랑 밥 먹는 시간에 질문하고 대화하는 유대인식 가정교육법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딸과 어느정도 대화가 되는 시기가 온다면 그때 토론하는 하브루타와 밥상머리 대화를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은 말이 빠른 편이었고 자기주장이 강한 성향입니다. 그리고 24개월에 접어들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곧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였을 겁니다. 아이의 말 표현에 감탄하고 딸아이와 대화하는 즐거움이 커지게 된 시점이요.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에 신문을 보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루에 한 번,
아이랑 신문기사로 대화를 나누자!
혼자 육아를 한 관계로 아이랑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저도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100일도 안된 딸아이에게 그 날 읽은 책 내용이나 주요 뉴스, 사회적 이벤트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했습니다. 아이가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듣고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아이는 제 눈을 보며 경청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 행동에 자신감을 얻은 저는 그 이후로도 뭐든 설명해주고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아이는 커가며 점차 옹알이를 하거나 간단한 단어를 말하며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이해력을 넘어 '대화'가 가능해진 25개월부터는 아이와 다양한 주제로 소통하고자 하루에 한 개의 신문기사를 가지고 대화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닌 ‘신문’을 택한 것은 편리성때문입니다. 신문구독을 하니 매일 쉽게 자료를 구할 수 있고 신문을 꾸준히 봐왔기에 따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결심한 이후 제가 추가한 것은 ‘아이에게도 보여줄 내용’을 염두하고 기사를 읽은 것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사가 바로 세이브 더 칠드런 '100가지 말 상처'였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내용이라 그런지 기사에 실린 그림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림에 나온 표정도 흉내 내면서 자신이 느낀 감정과 기분을 표현했습니다. 기사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집에 있었던 감정표현 책 'How Do You Feel?'을 꺼내 함께 읽으니 집중도가 확 높아졌습니다.
딸은 엄마, 아빠에게 말 상처를 받은 후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아빠가 아파', '잉잉잉 울고 있어'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향해 '호호' 불기도 했습니다. 아픈 상처를 달래주는 것처럼요. 아이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감정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여기 그림들은 친구들이 엄마, 아빠가 화내고 소리 질렀을 때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 그린 그림들 이래, 채유는 그림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
"... (뚫어져라 기사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채유)"
"채유도 엄마, 아빠한테 상처 받은 적 있어?"
"...(못 들은 척하고 과자만 야금야금)"
"엄마, 아빠가 화낼 때 채유는 마음이 어땠어?"
"아니야, (도리도리)"
"마음이 아팠구나, 이제부터 엄마, 아빠가 큰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더 사랑한다고 표현할게"
"...(베시시 웃으며 끄덕끄덕)"
그렇게 말을 쫑알쫑알하던 수다쟁이 아가씨가 입을 닫았습니다. 25개월 아이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아마 엄마, 아빠가 소리 질렀을 때 많이 놀라고 무섭기도 했겠지요. ‘알게모르게 아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기사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부모에게 상처를 받아 그림을 그린 저 아이들은 '학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학대에 가까운 심한 말을 들은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 표현'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뜨끔' 했습니다. 제가 자주 쓰는 말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을 상습적으로 들은 아이들은 그림으로 상처 받은 감정을 표출했습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온 우주와 같습니다. 보이지 않아서 잊을 때가 많지만, 아이의 마음은 모든 걸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부터라도 딸아이의 감정을 세심하게 해야려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따스한 눈빛’을 건네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