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한 시기에는 비상조치가 필요하다
전 세계가 '비상'이다. 대한민국도 비상 정부 체제로 전환됐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지 엿새만이다. 유럽, 중동,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앞다투어 비상사태를 돌입하고 국경 문을 걸어 잠갔다. 실타래처럼 촘촘하게 엉켜있던 세계 곳곳의 연결고리가 툭 끊겨버렸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한 요즘이다.
요즘 나는 마치 파도가 심하게 출렁이는 배 위에서 생활하는 기분이다. 평범한 일상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코로나 19가 일상에 깊이 침투해서 감나라 배나라 하고 있다. 쫓아내고 싶지만 방도가 없다. 그저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을 뿐.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언제쯤 잠잠해질까 싶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연일 암울한 소식만 들려온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 듯하다. 확실한 것은, 이 상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 일상도 한시적 '비상체제'로 전환하기로.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조치가 필요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 중앙은행(ECB) 총재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유럽 중앙은행이 예정에 없던 심야 전화회의를 열고 1000조짜리 초대형 양적완화 조치를 내리면 서다.
위기 상황일 땐 응급처치가 필요한 법이다. 비정상적인 시기는 외려 평소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적기일 수 있다. 안정적으로 받치고 있던 균형이 무너질 때, 새로운 변화가 싹틀 틈이 생긴다.
이런 희망과 믿음을 갖고 나는, 어린이집 휴원이 예정된 4월 5일까지 한시적으로 '일상의 비상체제'를 돌입하기로 했다. 내가 내린 비상체제는 총 4가지다.
이번 기회에 가장 먼저 결심한 '일상의 비상조치'는 '자는 시간 줄이기'다.
'새벽에 일어나기'는 실은 나의 오랜 숙원과제이다. 새벽시간을 좋아하지만 잠은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습관으로 형성되지는 못했다. 들쭉날쭉한 기상시간은 종종 죄책감으로 돌아오곤 한다. 4시간만 자도 멀쩡한 약이 개발된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린이집 휴원이 길어지며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에 있었다. 나는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다. 그런데 올해 4세가 된 아이는 잠이 줄어들었고, 어린이집 휴원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2월부터는 낮잠을 아예 건너뛰면서 잠깐의 자유 시간도 덩달아 증발해버렸다.
가정 보육 연장을 받아들인 나는 나의 일상 중 가장 시급하게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잠 줄이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새벽 기상에 매번 실패했기에 새벽 기상이 아닌, '5시간 숙면'에 초점을 맞췄다. '새벽'에 집착하는 대신 기상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서 실천하기 부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밤 10시에 자서 새벽 3시에 일어나도 되고, 새벽 2시에 자서 오전 7시에 일어나도 된다. 아이가 밤잠을 일찍 자는 날엔 밤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새벽 늦게 잠들어 오전 9시에 기상해도 되는 것이다.
잠을 줄여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로 마음먹은 다음날인 오늘, 새벽 4시에 일어나 지금 이 글을 쓴다.
나는 아이랑 노는 것이 즐겁다. 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은 내게 큰 기쁨과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그렇다고 아이랑 놀이가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상호작용한다지만 놀이는 아이가 주도하므로 시간은 아이의 페이스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나는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이게 장시간이 되면 지친다. 엄마인 나만 지치는 게 문제다.
에너지는 소중하다. 그리고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유한한 에너지는 비축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써야 하는데, 가정보육이 길어지면서 난 에너지 배분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이랑 덜 놀아주자'라고. 조금만 힘을 빼자고. 그래 놓고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할까,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 애써 떠오른 아이디어를 흐트러뜨렸다.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평소와 다른 방식의 육아를 할 필요도 있다고 믿는다.
같은 맥락에서 절주를 하고자 한다. 체력과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수면 시간도 줄이고 운동도 못한 채 하루 종일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누군가는 절주,라고 하니 엄청 술고래인가 보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금주'를 내세우지는 못했으니 술을 좋아하는 것은 숨기지 못하게 됐다. 나 자신도 속일 수 없었다. 지난달, 호기롭게 선언한 '1주일 1 맥주'도 흐지부지되어버렸으니 할 말이 없다. 비상체제를 운운하면서도 느슨한 절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목표는 술 끊기가 아니라, '건강한 체력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이니 가급적 맥주를 내 손과 입에서 멀어지게 만들겠다.
그 누구도 코로나 19가 전 세계인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세계 경제를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뜨릴 줄 몰랐을 것이다. 올 초만 해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증이 세계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던 수많은 경제전문가들은 그들의 의견을 다시 수정해야만 했다.
안전자산인 금, 국채, 엔화도 하락세다. 달러 빼곤 다 폭락 중이다. 공포로 가득 찬 금융시장엔 '팔 수 있는 건 모두 팔아 현금을 확보하라'는 구호만 남았다.
이런 시국에 나 같은 개미 투자자들은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을까? 남편과 상의했다.
일단, 현금자산을 확보해놓자, 고 결론이 났다. 투자금으로 쓸 수 있는 현금 말이다. 남편과 나의 청약을 깨고, 금값이 오른 만큼 아이 돌반지도 팔기로 했다. 이것저것 긁어모으니 꽤 큰 목돈이 모였다. 올해가 우리에게는 30대에 찾아온 기회일지 모르는 일이다.
국내 증시는 11년 전으로 돌아갔고, 미국 증시는 3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주식 시계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왔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침체는 3~4년 이상 갈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몇 년 안에 당장 이사할 일도, 큰돈이 들어갈 일이나 가족 행사도, 월급이 줄어들 일도 거의 없다. 물론, 비상시에 쓸 수 있는 예비 자금은 남겨둘 것이다.
없어도 되는 현금으로 투자하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켓 타이밍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경제가 원상 복귀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니, 환율이 내릴 때마다 달러로 환전해놓고 주식이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분할 매수할 생각이다. 대박의 욕심은 없다. 제로 금리인 상황에서 예적금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대출규제가 강화된 부동산으로 눈을 돌릴 여력도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에 과감하게 도전해보자, 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전 세계를 공포로 빠뜨린 코로나 판데믹과 맞물리며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2>에서 의녀 서비는 이런 말을 한다.
“역병도 끝날 것입니다.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입니다.”
맞다. 요즘같은 비정상 시기는 언젠간 끝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범한 일상을 회복할 것이다. 그리고 난, 그러한 희망을 품은 채 일상의 물꼬를 트기 전까지 ‘한시적 비상체제’로 가고자 한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조치가 필요하다, 는 라가르드의 말을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