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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Apr 11. 2019

서른여섯,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

아주머니들은 내 나이를 부러워했다

얼마 전 같은 반 수영 멤버들과 두 번째 정모를 가졌다.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다닌지는 11개월째다. 그러니까 11개월 동안 딱 두 번의 정모를 한 것이다. 나도 애엄마고 수강생 대부분이 애엄마, 애아빠다. 비율은 9:1로 애엄마들의 압승이다. 우리 반은 유독 회원이 많아서 스무 명 정도 되는데, 나 같은 30대 아줌마는 손에 꼽고 대부분이 40대 이상이다. 정확히 연세를 여쭤보진 못했지만 60대도 꽤 많으신 것 같다.


정모 장소는 수영장 근처 주꾸미 집이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주꾸미에 불맛이 나는 매콤한 양념을 입혀 맛이 괜찮은 편이었다. 참석자 대부분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매운 것을 일절 못 드시는 수영 강사님 빼고는. 귀띔이라도 해주셨으면 다른 음식점을 예약할 것을.


오래된 멤버도 있었고 나같이 신입축에 속하는 멤버도 있었다. 그러다 어떤 한 아주머니가 내 나이를 물었다.


"아참, 자기 몇 살이야?"

"저요? 저 올해로 서른여섯이에요"



아주머니는 내 대답에 진심 놀랬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출처 : The good place 1)



어머, 서른여섯?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나이네!!



갑자기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질문한 아주머니 목소리가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렸기 때문이다. 세상에나, 서른여섯이 세 살 딸을 키우고 있는데, 마흔넷인 내가 네 살짜리를 키우고 있네, 내가 서른여섯으로 돌아간다면 뭐든지 다시 해보고 싶다, 나는 결혼을 안 했을 거다, 정말 부러운 나이다 등등. 멀리 앉아계신 회원님들도 각자 한 마디씩 거들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그 자리에서 내가 제일 막내였다. 서른여섯인 내가.


서른여섯이요,라고 정확하게 대답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내 나이가 바로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한해 한해 나이를 세는 습관이 사라졌다. 아이를 낳고서는 한 해가 지났어도 숫자를 올리는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직도 어디서 날짜 쓸 때 2018년을 쓰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이 기쁘고, 그래서 내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출처 : unsplash)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나는 올해 서른여섯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이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부러운 나이라는 것이다. 서른여섯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나이라고는 솔직히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인생을 통틀면 젊은 나이겠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삶에서 큰 변화를 주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들의 말이 자꾸만 내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


유명 강사 김미경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김미경 TV에서 이런 내용의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내가 54살에 패션을 공부하겠다고 밀라노에 갔어요. 갔는데 그거 알아요? 50 넘어서 패션을 시작해서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가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지. 50이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니에요. 내가 54살에 패션을 시작했고 미혼모를 돕는 비영리 패션 회사를 설립해서 10년 동안 꾸준히 운영하고 영어도 잘하는 한국의 65세 할머니 패션 디자이너라면 전 세계 패션 업계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겠어요? 나는 10년 후에 꼭 그렇게 되고 싶어요. 먼저 2년 후에 밀라노에서 꼭 패션쇼를 열거예요."

 

그녀는 자신만의 '뻘짓 상상'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뻘짓'으로 들리지 않았다. 올해 54살인 김미경 씨는 자신의 나이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자신이 쌓아온 명성에 정면 도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껏 걸어온 적이 없는 다른 분야로.


나는 그녀를 잘 모른다. TV로 강의를 몇 번 들은 것 밖에는. 그녀가 쓴 책을 찾아 읽지도 않았고, 그녀가 만든 영상을 꾸준히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연히 본 그 영상에서 나는 그녀가 삶의 명확한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저분은 50대에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대단하다, 괜히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편견에 갇혀있다는 걸 깨달았다. '50대에도'라니.


이제 고작 서른여섯이다. 나는 뭐든 지 할 수 있는 나이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아주머니들이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라고 명명해주니 나는 내가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날을 후회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더라도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몇 살이든지, 그때에도 어떤 것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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