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월 아기의 눈 경험을 확장시켜주고자 밀가루 놀이를 했어요
올 겨울, 눈이 별로 안오나 싶더니 2월 중순에 하루 걸러 눈이 내리네요.
그것도 함박눈이 내려서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니 아이들은 마냥 신기하고 신이납니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떠보니 창밖에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채유야, 오늘도 눈이 오네?"
"어 추워, 염소 장갑, 토끼 모자" 하면서 장갑과 모자를 챙기는 채유.
어린이집에 가면서 소복소복 쌓인 눈길을 걸었어요.
나무 위에 쌓인 눈을 지그시 만져보고는 "아, 차가워" 하고, 눈 위를 밟으면서 "뽀드득 뽀드득" 입으로 소리도 내요.
어린이집은 바로 옆동이지만 눈을 느끼느라 하도 천천히 걸어서 외투도 좀 젖어버렸네요.
짧은 길이 아쉬운 눈치라, 이따 오후에 엄마랑 눈놀이 하자. 했어요.
그런데 점심쯤 되니 눈이 그치고 그 사이 눈이 다 녹아버렸지모에요.
'흠, 채유랑 바깥에서 눈놀이는 제대로 못할 것 같은데, 집에서 눈이 연상되는 놀이를 할 수 없을까?' 고민했어요.
'눈처럼 새하얀 밀가루로 눈놀이를 해주면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밀가루 놀이는 종종 하는 놀인데 채유가 좋아하거든요
오늘은 밀가루 놀이할때 "눈"을 주제로
오늘 아침에 걷고 만져본 눈과 연결시켜서 놀아줘야겠다 싶었어요.
하원 시간에 맞춰 밀가루를 놀이매트에 쏟아 놓고는 도서관으로 달려가 눈, 겨울과 관련된 책들도 빌려왔어요.
밀가루로 놀이를 한 후에 눈과 관련된 책들도 읽어주면서 채유가 경험한 눈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마침, 지난 주말에 평창 눈썰매장도 다녀와서 이번주에는 "눈"과 관련된 놀이들로 집중하며 확장시켜나가기에도 좋았어요.
역시나, 오자마자 밀가루를 보더니 놀이를 하겠다고 손부터 씻습니다.
몇주전에 욕실에 발받이와 아기 수전을 달아놔서 채유가 혼자 손씻는 재미가 들렸거든요.
거품을 씻고 또 씻고..
한번 손 씻으러 들어가면 5번씩 씻으며 거의 물장난을 하는지라 '또 한참 걸리겠거니' 하고 집에 온 택배를 뜯어보고 정리하고 있었어요.
뭔가 또 사부작사부작 거리면서 욕실에 있는것 같아서 "얼른 나와서 놀자" 하며 화장실로 가보니 글쎄,
채유는 어느새 놀이매트 안에 들어가서 혼자 밀가루 놀이를 하고 있었거있죠.
그것도 모르고 화장실로 달려간 엄마라니,
아이들의 행동과 생각을 미리 단정짓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눈 놀이를 하려고 체도 두개나 준비하고 평소보다 많은 양의 밀가루를 사용했어요.
"채유야 이거봐, 오늘 아침에 하늘에서 눈이 내렸지? (체에 밀가루를 거르며) 하늘에서 밀가루 눈이 내려요~"
"우와~" 하며 채유는 손을 뻗고 밀가루를 만져봅니다.
뭐든지 채유가 하겠다고 나서는 채유는 어김없이 "채유가 채유가" 하며 스스로 하겠다고 해요.
혼자 해보라고 하고 저는 지켜봤어요.
체에 밀가루를 가득 넣고는 옆으로 흔드는게 아니라 아래 위로 흔들다가 체를 엎어서 밀가루를 뒤집어 씁니다.
그 모습에 그만, 깔깔 대고 웃고 말았어요.
엄마가 웃은게 좋았는지, 얼굴에 밀가루를 엎고 또 엎고..
저번에 설탕놀이때 반응이 좋았던 풀로 그림그리기 해보려고 택배 박스랑 물풀을 준비했어요.
누런 택배박스 위에 자동차와 아파트에 눈이 쌓인 것과 눈 내리는 것을 표현하려고 풀로 그리고 밀가루를 덮은 후에 탈탈탈 털어줍니다.
아침에 창밖으로 본 눈이 내린 풍경과 흡사했어요.
혼자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채유는 반응이 어째 뜨뜨미지근 하네요.
풀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설탕을 묻혀서 설탕 그림이 나왔던 놀이에는 엄청 열광했었는데 말이에요.
역시, 애들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이제 그만 하겠다고 해서 욕실에 가서 씻겨야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욕실로 이동하는 동안 온몸에 덮인 밀가루가 후두둑 후두둑 다 떨어질 것 같았거든요.
팔 다리 가만히 있어줄 채유도 아니고요.
그래서 놀이매트 채로 화장실로 가기로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매트 썰매가 되었어요.
화장실로 가기 위해 매트를 쭈우욱 밀자 "꺄르르" 하고 빵 터진 채유.
너무 재밌어해서 저도 웃음이 터졌어요.
화장실 다 왔는데 "또 또"를 외치네요.
뭐, 아이가 즐겁다는데 한번 더 가야죠.
근데 두바퀴를 돌아도 "또 또" 계속 앵콜을 외쳐요.
헉헉 대면서 허리를 구부려 끌면서 뱅글뱅글뱅글
몇 번 더 도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저는 웃음기가 없어지고 더 놀아주고 싶은 마음과 달리, "이제 그만, 정말 마지막이야" 이런말만 하게 되더라고요.
다 씻은 후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겨울 그림책을 읽었어요.
겨울이 오기 전까지 거위털을 모아놓은 할머니가 이불을 털면 눈이 내린다는 <겨울 할머니>
눈 오는날, 삼남매가 투닥거기도 하고 눈싸움도 하며 외출한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내용의 <눈 오는 날>, 눈 오는 날 만든 큰 눈사람과 소년의 하룻밤 우정을 그린 <눈사람 아저씨>
아침에 눈을 보고,
오후에 밀가루로 눈놀이를 하고
겨울, 눈과 관련된 그림책을 읽으니 더욱 집중하는 채유였어요.
드라마든, 영화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육아도 그래요.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재미와 감동이 있어요.
매일 같은 재료로 같은 놀이를 하더라도 매번 반응이 다르고 놀이 방법도 매순간 달라져요.
아이들은 정말 역동적이고 종잡을 수가 없어서 아이랑 노는 것 역시, 부모의 계획과 의도, 목적같은건 제쳐두고 아이를 따라가다보면 더 재밌고 신나게 놀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노는건 아이들이 더 잘하잖아요.
잘하는 사람이 리드를 해야죠.
오늘도 리더 채유를 따랐더니 밀가루 놀이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