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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Mar 08. 2019

널 위해 준비했어, 신문지 놀이

아이의 폭발적인 반응, 신문지의 가치가 올라가는 순간입니다.

오늘은 아이랑 무슨 놀이를 할까?


"오늘 뭐먹지?"와 맞먹는 고민입니다. 문득 어디선가 보고 지나쳤었던 신문지 놀이가 생각나서 부랴부랴 신문지를 잘랐어요. 노끈을 찾아 거실 한복판을 이어붙이고 길게 자른 신문지를 붙여나가기 시작합니다. 아이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서 "짜잔"하고 선보이고 싶기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데릴러 가야하는 시간이 15분도 남지 않았네요.


신문지를 길게 이어붙여만든 신문지 커튼


신문지 커튼 완성! 아이 마음에도 들까?


가까스로 신문지 커튼을 완성했어요. 거실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 지각을 면치 못했을거에요. 아이를 데릴러가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사실, 만들때만해도 잘 몰랐는데 다 만들어놓고 보니까 스스로도 그럴싸한거에요. 아이의 흥미를 끌만했어요. '아이가 좋아해줘야할텐데..' 속으로 걱정은 됐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해 주겠지?' 라는 기대감도 커졌습니다.


아이랑 처음부터 함께하는 놀이도 즐기지만, 가끔은 이렇게 하원 시간에 맞춰 놀이를 준비하곤해요. 미리 밀가루 반죽만들어서 상 위에 세팅해놓기도 하고, 놀이매트 깔고 모래나 밀가루 등을 펼쳐놓기도 하고요, 미션 임파서블의 한 장면처럼 아이 방문 입구에 마스킹 테이프를 지그재그로 붙여놓기도 합니다. 아이가 집안에 들어선 순간,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지요.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는 심정이란, 준비해본 사람만이 알거에요.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는걸요.



보자마자 돌고래 소리ㅋㅋ 폭발적인 아이의 반응에 엄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엄마, 저거 뭐야?


문을 빼꼼, 연 순간, 아이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엄마가 채유를 위해 준비했지"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는 신문지 커튼으로 돌진합니다. '꺄악 꺄악' 돌고래 소리도 내면서요. 신문지 커튼 사이를 통과하기도 하고, 신문지를 잡아 뜯기도 하고, 온몸을 내던져 줄을 끊기도 하며 아이는 정말 열심히도 놀아주었습니다. 그 모습에 엄마도 덩달아 목소리 톤이 높아집니다. 끊어진 줄로 치마도 만들어주고 한번 더 줄 끊어보라고 떨어진 끈을 몇번이고 붙여줬습니다. 엉금엉금 거북이 흉내를 내며 기어가기도 하고, 두 팔을 벌려 비행기처럼 커튼 사이를 통과하기도 하네요. 26개월 아이의 머릿속에 온갖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문지 커튼을 통과하기
떨어진 신문지 커튼을 돌돌 감아 만든 신문지 치마
몇 번이고 제 몸으로 신문지 줄을 끊으면서 즐거워했다


신문지가 이렇게 재밌는 놀잇감이었나?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놀이를 즐기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쩐지 제가 위안을 받았습니다. 아이의 시간을 소중하게 채워준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고, 큰 수고를 들이지도, 큰 비용을 들인 것도 아닌데 행복해하는 아이에게 고마웠습니다. 어쩌면 '놀이'라는 것이 이런거 아닐까요? 아이에게 놀이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흔하디 흔한 '일상'인 것을요. 함께 밥먹고, 함께 책읽고,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하고 이러한 소소한 일상들이 아이에겐 모두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랑 함께 놀면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고맙고 감사한 것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점이에요. 계절이 바뀌고, 구름이 지나가고, 새싹이 돋고, 바람이 부는 것을 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지요. 그런데 아이가 자랄수록 아이에게 이러한 세상을 공유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보니 저 역시 세상이 신기하고 궁금해졌습니다.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배움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때보다 커졌어요. 제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건지, 아이가 저를 키우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저를 변화시키는, 아이와의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신문지 더미에서 '어푸 어푸' 수영을!


채유 뭐해? 수영해!


정리하려고 신문지 조각들을 모았습니다. 산더미처럼 부피가 커지자 아이는 그 위에 슈육-하고 엎어집니다. 그러더니 '어푸 어푸' 소리내며 발장구를 치네요. 뭐하냐고 물으니, 수영을 한대요. 신문지가 넘실넘실 파도로 변했습니다. 아이가 바다 수영을 시작했으니 정리는 잠시 멈췄습니다. 움직일때마다 찰랑찰랑대는 신문지 소리가 파도소리 같이 들리기도 했어요. '동심이란 것이 이렇게 순수하고 맑은 것이구나', 생각하니 함께 신문지 더미에서 수영이 하고 싶어집니다.



신문지 찢기 요령을 터득한 채유, 신문지 찢기도 연습이 필요해요


엄마, 신문지 주세요!


신문지 놀이를 하고 난 며칠 후, 아이가 신문지를 달라고 하네요. 다 읽은 신문지를 주고 어떻게 놀까 생각하는 사이에 채유는 신문지를 북북북- 찢기 시작했어요. 신문지를 찢을 때 결대로 찢으면 엄청 쉬운데, 채유는 결의 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다보니 잘 안찢어졌습니다. 꽥-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안돼요 안돼요" 울먹였습니다. '신문지 찢는것 만큼 쉬운것도 없는데 이것도 아이한테는 어려운거구나'. 아이의 눈높이를 맞춰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겁니다. 머릿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지만 실천이 어려운 이유는 부모와 아이간의 이러한 생각차이에서 오는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엔,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1도 고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배움이 필요한 일이니 말이에요.


신경질이 난 아이에게 신문지 안찢어봐서 서툴수 있으니 함께 해보자고 타이른 뒤, 신문지를 가로가 아닌 세로 방향으로 찢으면 잘 찢는다고 얘기해줬습니다. 그말을 듣고는 세로로 시도해봤지만 한번에 되지는 않았습니다. 몇 번을 더 해보더니 이제야 아이가 웃습니다. 찌익- 찌익- 신문지 찢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습니다. 그러더니 두겹, 세겹 두껍게 겹쳐서 북북북- 잘도 찢습니다. 마치, 태어날때부터 신문지를 찢었던 것처럼 그렇게 쉽게 찢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못한다' 하지만, 한번 경험한 것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의 차이는 정말 큰 것 같습니다. 채유도 신문지를 못찢었던 좀 전의 채유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열심히 가위질을 하고 싶은 채유, 생각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신문지 찢기에 성공한 김에 가위질에도 도전해봤습니다. 평소 채유가 가위질에 관심이 많아서 종종 같이 하곤 했는데, 신문지는 일반 종이보다 더 얇으니까 조금 더 섬세한 동작이 필요합니다. 호기롭게 가위는 잡았는데 신문을 가위 사이로 넣지를 못했어요. 허공에 대고 가위질을 했죠. 싹둑싹둑 소리는 나는데 잘려나가는 신문지는 없었습니다. 채유도 시도하다가 결국엔 가위로 소리를 내는 놀이에 더 열중하더라고요. 흥미를 보이지 않으니 굳이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놀이로 넘어갈 타이밍이네요.



비닐봉지에 신문지를 달아 만든 연, 채유는 모자로 씁니다



비닐연을 만들었는데 신문지 술이 달린 비닐모자가 되었어요


채유가 길게 찢은 신문지를 비닐에 붙여서 연을 만들었습니다. 비닐 봉지 끝을 잡고 왔다갔다하니까 봉지 안에 바람이 들어가서 연처럼 나르기도 했어요. 그런데 채유는 비닐연을 자꾸 쓰고 싶어했습니다. "어 추워! 모자 주세요" 비닐 봉지가 채유 머리보다 작았는데 우겨썼어요. 채유가 쓰니 신문지 술이 달린 모자가 되었네요. 비닐모자를 쓰고 장갑을 달라고 하면서 밖에 나갈 채비를 하네요. "어디갈거니?" 하고 물으니 "세부" 라고 해요. 지난해 세부 여행을 갔다왔었는데, 정말 신나게 놀다와서인지, 아니면 첫 해외여행이어서 그런지, 어디가냐고 물을때면 항상 '세부'라고 답을 합니다.


아이가 어렸을때의 일을 커서는 기억을 못하니 취학 전에 너무 많이 다니려고 하지말고 너무 많은 것을 사주지 말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꼭 어른이 되서 기억해야만 좋은건가요?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 시절 행복하고 기분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뷔페가서 본전을 뽑는 일은 아니잖아요. 설령, 아이가 커서 어렸을 때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부모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못느낀다고 할지라도, 아이와의 시간을 즐겁고 의미있는 것들로 채우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의 다양한 경험과 감정, 자극들이 아이를 성장시킨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오늘도 아이와의 놀이를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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