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욱하고 말았다
벌써 1주일이 넘었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
2주 전 수요일 아침, 어린이집 가기 전에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네도 여러 번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탔다. 신나게 노는 아이한테 넌지시 어린이집에 갈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줬다.
"이제 갈 시간이니 지금 놀고 있는 것만 마저 놀고 슬슬 정리해~ 엄마 여기서 기다릴게." 했다. 그리고 나는 놀이터 밖 벤치 앞에 서서 딸을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어깨 운동기구 손잡이에 어깨가 살짝 스친 직후였다.
그 손잡이는 아이의 어깨에 정말 살짝 닿을 정도로 스치기만 했다. 그뿐이었다. 분명 울만큼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놀이터가 떠나가라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마 작정한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린이집 안 갈 거야~~~ 으앙~~~
당황스러웠다. 15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닌 아이는 한 번도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거나 어린이집 앞에서 운 적이 없었다. 이제까지는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안 들어갈 거라고 분명하게 말을 한 것이었다.
일단, 왜 가야하는지 설명을 해줬다. 그래도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아이는 자꾸만 어린이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고 졸리다고 꾀를 내기도 했으며 내 눈을 애써 피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싫다고 완강하게 표현을 하는 아이를 억지로 어린이집에 들여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마음이 약해졌고 하는 수 없이 그 날 하루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부터 아이의 떼가 이어졌다.
물론, 아이는 집이 편할 것이다. 온종일 엄마와 아빠랑 함께 지내고 싶을 것이다. 나라도 엄마, 아빠와 매일매일 놀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는가.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는 것이 자신의 생활의 일부분임을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야호, 어린이집에 왔어요> 책을 빌려 함께 보고 아이가 생활한 알림장도 함께 보며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떼를 부렸고 그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나는 욱하고 말았다. 29개월 만의 첫 욱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집에만 있겠다고 옷도 안 입고 밥도 안 먹고 베개를 끌어안고 우는 아이를 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괴로웠다. 내 모든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와서 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뭐라도 해결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은영 박사의 책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를 찾아 읽었다. 다행히 책 속에 나와 우리 딸이 겪고 있는 상황을 발견했다.
아이가 "나 유치원 가기 싫어. 집에서 뽀로로 보고 맛있는 것 먹고 싶어!"라고 말하면 부모는 처음에는 '아, 올바르게 가르쳐 줘야겠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이해시키고 싶어 진다. 그리고 아이가 바로 납득했으면 한다. "너 다른 아이들은 다 유치원에 가는데, 너만 집에 있으면 바보 돼. 너 바보 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가 '아, 유치원 가서 공부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할까? 그러기는 힘들다.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대꾸를 해도, 일단은 다 듣는다. 다 듣고 나서 반응한다. "그런 마음이 드는구나. 어떨 때는 안 가고 싶구나"라고 해준다. 그다음은 지침이다. "그래도 유치원은 가야 해." 그래도 아이가 안 간다고 하면, 아이를 안고 가서 유치원 버스를 태워야 한다. 그러고는 "그래도 유치원은 가야 해. 잘 다녀와. 대신 갔다 오면 재미있게 놀자."라고 인사하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된다.
<못 참는 아이 욱 하는 부모> 중에서
생각해보니 평소에도 아이는 어린이집 문이 열리면 얼음이 되곤 했다. 멍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있는 아이를 향해 애써 밝게 인사하며 돌아올 때마다 내심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가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잘 지내겠지. 생각했다.
아침마다 놀이터에서 놀자고 한 것도 놀이터가 좋아서라기 보다 실은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서 그 시간을 늦추고 싶은 마음에, 혹은 엄마랑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생각했을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담임선생님과 여러 번 상담을 한 끝에 아이의 등원 거부 원인을 찾아냈다. 바로 낮잠이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의사를 밝힌 이후 어린이집 생활은 평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점심 먹고 낮잠시간이 오자, 아이는 선생님에게 자지 않겠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선생님도 자기 싫다는 아이를 재울 도리가 없어서 조용히 놀게 했고, 우리 아이는 모든 아이가 자는 가운데 유일하게 자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낮잠을 안 자고 혼자 우두커니 생활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지 않으니 일찍 하원 시키는 것도 방법 중에 하나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상담하는 날도 아이는 방 안에서 혼자 깨어있었다. 모두 자는 시간이었지만 아이가 깨어 있으니 선생님께 아이와 함께 돌아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을 때의 그 표정. 그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이는 곰돌이를 끌어안고 있었고 나를 보고도 웃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엄마가 앉아있는 것이 얼떨떨한 것 같았다. 아이는 울먹거리며 "집에, 집에 가요"라고 얘기했다. 감금당한 사람 같은 그런 절박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1주일간 더 지켜보기로 했다. 평소보다 더 일찍 깨우기도 하고 낮잠 자는 책도 함께 읽고 아빠랑 함께 낮잠은 기분 좋고 행복하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있다. 어제까지는 효과가 없었다. '오늘은 아이가 낮잠을 잤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가 잠이 많은 편은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주말에도 낮잠 안 자고 더 놀고 싶어 하다가 저녁 일찍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아이의 특성을 인정해야겠다. 그런 아이에게 낮잠을 강요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진다. 그렇다고 다 자는데 컴컴한 방 안에 심심하고 불안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선생님들이 편히 쉬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유시간을 조금 줄여서라도 아이를 일찍 데려오는 게 맞는 것 같다. 다행히 내가 어디에 메여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마음먹으면, 아이가 계속 낮잠을 자지 않는다면, 아이를 일찍 데려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오히려 아이가 자기 의사를 표현한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아이의 감정과 마음이 섬세해지고 깊어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가 크는 만큼 엄마도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짜피 장기전인 육아,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 엄마도 이렇게 배우면서 자라는거지.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잖아. 우리 차근차근 서로에 대해 알아가자. 엄마가 더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