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인생이 부침개처럼 확 뒤집혀버렸어야
"내 인생은 비참한 인생이었다. 종친 내 인생. 귀신이고 나발이고 난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어. 다시 내 인생을 돌아보기도 싫어. 내 인생이 젤로 무섭지. 내 인생만치 무서운 게 어디 있어. 나는 늙어도 지금이 좋아. 행복해."
70살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지만 71살에 인생이 180도 바뀐 할머니 가 있다. 바로, Korea grandma, 박막례 할머니이다.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앨런 가넷은 자신의 저서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에서 초 대박이 나는 콘텐츠에는 공통된 흥행 공식이 있다고 밝혔다. '불행하거나 평범한 주인공이 - 작은 성공 - 위기 - 아주 큰 성공' 이라는 굴곡 있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는 것. 헌데,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자체가 이 흥행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믿기 어렵게도 말이다.
불행했던 유년시절
2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막례 할머니는 6.25 전쟁 때 오빠 둘을 잃고 딸이라는 이유로 글도 배울 수가 없었다. (집안이 유복했다는 게 반전.) 집안의 허드렛일을 죄다 도맡아 하면서 음식과 바느질에 재주를 보였고, 뭐든 배우고 싶었던 막례 할머니가 졸라서 다닌 한복 학원을 수료한 후에는 더 많은 일들이 주어졌다.
더 불행해진 결혼생활
그러다 스무 살 되던 해, 동네에서 알고 지낸 동갑내기를 남편으로 받아들이면서 막례 할머니의 인생은 더 불행해지게 되었다.
할머니 피셜 '느그 할아부지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조져놨어'.
그렇다. 할머니는 결혼 후에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하셨다. 스물넷 막일서부터 파출부, 식당일, 리어카 과일장사, 엿장수, 꽃장사, 떡장사, 식당 차리기까지... 큰 아들을 낳고 남편이 집을 나가자 아들이 세 살 됐을 때 할머니는 할 수 없이 시어머니한테 애를 맡기고 일을 하러 다녔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나 다시 데려와 같이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셋째 딸까지 낳아 아이 셋을 혼자 일하시며 키워내셨다.
숨통 트일 정도의 평범한 생활
그러다 서른일곱 살 되던 해에 할머니는 친구와 함께 식당을 차리게 된다. 동업한 친구는 떠나고 할머니 혼자 남아 그 식당을 안정적으로 운영하신다. 하지만 한숨을 돌리기엔 너무 일렀다.
두 번의 큰 시련, 친척한테 당한 두 번의 사기
첫 번째 사기는 고향에 살던 친척이었다. 상가에서 같이 장사하던 한 여자한테 친척이 돈을 빌려줬고 할머니가 보증을 서게 됐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그 여자가 가게문을 닫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친척은 매일같이 할머니 가게에 찾아와 장사를 못 할 정도로 이자를 달라고 엉겨 붙었다. 견디다 못한 할머니는 가게를 빼서 원금을 일부 갚고 다른 곳에 가서 호프집을 차리게 된다. 할머니는 말로 500만 원 보증을 서고 거의 5천만 원을 갚았다.
두 번째 사기도 먼 친척한테 당했다. 일본에 가면 한 달에 400만 원 번다는 꼬임에 호프집 가게를 빼서 300만 원을 넘겨줬다. 그리고 비행기 타는 날짜가 됐는데 연락이 두절됐다. 수소문 끝에 행방을 알아낸 그 친척은 노름에 빠진 사기꾼이었고 할머니는 거의 모든 재산을 날리게 되었다.
마흔여섯, 식당으로 일군 작은 성공
용인에 아주 작은 백반집 하나를 차렸다. 할머니를 등쳐먹는 사람도 많았지만 도와주는 사람도 참 많았다고 한다.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하며 식당이 자리를 잡았다. 된장찌개, 계란말이로 번 돈에다가 대출을 껴서 건물을 세우고 쌈밥집을 차렸다. 명절 딱 한번 빼고는 1년 내내 쉬지 않고 밥장사만 했다. 그렇게 허리가 굽도록 일하는 동안 할머니는 여기저기 병을 얻었고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리고 일흔 살이 되던 해,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다. 이렇게 죽어라 일만 하다 살다가 자식들한테 피해 안 끼치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여기까지가 박막례 할머니 인생 전반기의 요약이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책을 읽다 몇 번을 멈추고 커피를 마셨다가 물을 마셨다가 했는지 모른다. 할머니의 70 평생 한 많은 인생을 단 몇십 페이지 정도로 짧게 압축해놨는데, 그 내용이 너무 고농축이라 그냥 술술 읽히지가 않았다. 읽는 내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할머니의 인생도, 할머니의 세 자녀의 인생도 참 막막하고 힘들었겠다, 싶었지만 내 깜냥으로는 그 고난의 세월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71살에 말이다. 인생을 포기한 그다음 해에 할머니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셨다. 치매 위험 진단을 받은 할머니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한 손녀 유라 덕분이었다.
할머니에게 인생의 의미를 찾아주겠다는 생각으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이것 또한 드라마 같은 스토리) 손녀딸 유라와 박막례 할머니는 함께 호주 여행을 떠났다. 호주에서 할머니는 칠십 평생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고 유라 역시 이제까지 보지 못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이가 많으니 세상에 무뎌졌을 거라는 내 생각은 틀렸다. 손끝은 무뎌졌을지 몰라도 할머니의 감각은 초롱초롱 빛났다. 모든 것에 반응하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할머니보다 훨씬 적게 살았으면서 나는 뭐가 그리 익숙했을까. 뭘 다 안다는 듯이 살았을까. 할머니 덕에 나도 '처음'이 주는 셀렘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은 언제든 초면이 된다.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75p
유라는 할머니와의 추억을 남기고 싶어 여행 중 찍은 영상을 편집해서 가족들과도 공유하고 자신의 페이스북과 유튜브에도 올렸다. 가족들은 열광했다.
그게 끝이었다. 아니 끝일 뻔했다. 하지만 유라는 생각했다. '이왕 그만둔 김에 할머니랑 재미있는 시간을 좀 더 보내야겠다'라고. 그리고 할머니랑 파스타도 먹으러 가고 한강에서 카누 배를 타며 할머니가 재밌어하실 만한 새로운 경험들을 함께 했다. 함께한 순간들은 모두 영상으로 남겨 할머니가 보실 수 있게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고 가족들과도 공유했다.
구독자 18명, 평균 조회수 30~40회. 잔잔했던 박막례 할머니 계정은 단 하나의 영상으로 순식간에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스타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 영상은 조회수 100만을 넘겼고 메일함이며 메시지며 꽉 찰 정도로 난리가 났다. 할머니가 진짜 치과 갈 때 찍은 '박막례 할머니의 치과 갈 때 메이크업' 영상 때문이었다. 박막례 할머니는 자신이 치과에서 입을 아- 벌리고 치료하고 나오니까 손녀딸 유라가 '대박'이 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박막례 할머니와 유라는 함께 유튜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에 재능이 있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김유라 PD가 박막례 할머니의 손녀딸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할머니의 치매 위험 진단을 가볍게 여겼더라면, 할머니와의 효도 관광을 반대하던 회사에 순응하고 관두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의 박막례 할머니는 없었을 수도 있다.
누가 뭐래도 할머니가 새로운 인생을 사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은 그녀의 공이 컸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렇게 강조한다.
"그러니까 박막례의 인생 역전은 내가 옆에서 등 떠민 게 아니라, 다시 바다로 직접 그 두 발로 걸어 들어간 할머니의 용기에서 시작된 기적이었을 것이다."
박막례 할머니는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나이 많다고 혼나는 거 아니여?, 하면서도 커다란 헬맷을 쓰고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구명조끼를 입고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뚝 떨어지는 놀이기구도 거침없이 탄다. 그러다 때론 수줍고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호주에서 멀쩡한 캥거루를 보고 뒷다리가 쑥 빠져서 불쌍하다고 측은해하시고, (할머니는 캥거루라는 동물을 모르셨다고.) 파리에서 딱딱한 바게트를 먹다 이가 부러졌는데 한국에서 가져온 강냉이를 먹으며 '내 강냉이가 부러졌는데 이걸 먹고 앉아있네' 하신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는 올해 열린 구글 개발자 대회에서 콕 집어 박막례 할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할머니에게 당신의 이야기는 자기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영감을 준다, 고 직접 전하기도 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일흔세 살의 박막례 할머니를 감동시켰다.
구글 사장님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나, 새로운 결심을 한 거야. 인생 얼마 안 남은 거 알지만 지금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아보겠다고! 늙은이가 재밌게 사는 모습을 보고 세계 대기업 CEO가 영감을 받는 다는디 내가 더 즐겁게 살아줘야 하지 않겄어? 느그들 좋은 기술 많이 많이 만들라고 내가 더 열심히 즐기고 살아볼게!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326p
희망은 절대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혹시 희망을 버렸으면 다시 주워서 주머니에 넣으면 다시 내 것이 된다고 한 박막례 할머니.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할머니의 인생 그 자체는 아직 살 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영감과 메시지를 준다.
책을 덮는 순간 박막례 할머니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젊은것들아, 이 할미를 보고 절대 좌절하지 말그라! 느그들 인생 아직 망하지 않았어야! 고작 이십몇 년 삼십몇 년 살아놓고 염병하지 말고 끝까지 한번 잘 살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