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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Aug 14. 2019

건조기가 이렇게 소중한 존재였던가

 고장 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기기의 존재감

그날도 보통의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전날 밤, 다 된 빨랫감을 건조기에 돌려놓은 채 잠이 들었었다. 다음날 아침, 아무런 의심 없이 다 마른 빨랫감을 꺼내려고 건조기 문을 열었다. 예상과 달리, 건조기 안은 습한 공기로 가득했고 뒤엉킨 빨랫감들은 축축했다.


어? 내가 어제 건조기 버튼을 안 누르고 잤던가?


그럴리는 없었지만, 건조기 안에 이제 막 빨래를 마친 듯 축축한 빨랫감들이 한 움큼 들어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에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다시 건조를 시작했다. 건조기는 한참을 돌더니 1시간 27분이라는 견적을 내었다.


1시간 27분에 10분의 시간이 더 추가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다 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건조기 문을 열었다. 우습게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습기를 조금도 털어내지 못한 축축하고 뜨뜻한 옷 뭉치가 거기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나서야 현실을 직시했다.


건조기가, 고장 났다.


차라리 전날 밤 내가 건조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잠들었기를 바랐는데.


 




작년 5월. 건조기를 집에 들였다.

사실, 남편과 달리 나는 건조기 구매에 반대 입장이었다. 우리 집은 정남향에 햇살이 잘 들어와 빨래가 잘 마르는 최적의 환경이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빨래를 널고 개는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게다가 건조기는 그냥 한번 사보자 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 꼭 필요하다며 남편은 끊임없이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한동안 그의 청을 못 들은 체 했다.


내가 흔들린 것은 순전히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작년 겨울부터 미세먼지는 유독 기승을 부렸다. '삼한사미'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미세먼지는 우리 생활에 악영향을 미쳤다. 미세먼지 공포는 공기청정기, 건조기 수요를 급증시켰다. 우리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건조기를 작년 4월에 구매했지만, 그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건조기는 한 달이나 지나서야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건조기는 정말 신세계였다.


건조기는 집안일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하루에 3번씩 빨래를 돌리게 만들었다. 아이가 자다가 토를 해서 이불을 다 버려도, 남편이 수건을 헤프게 써도, 여행 갔다 온 뒤 빨랫감이 산더미같이 쌓여도 문제없었다. 건조기는 이 모든 것을 단 하루에, 혹은 반나절 만에 해결해줬다. 나는 시간을 압축한 듯한 그 스피드에 반해버렸다.


외부 환경과 무관하게 능률적으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높은 효율성도 만족스러웠다. 장마철에도 마음 놓고 빨래를 해댔고, 미세먼지가 심해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날에도 빨래를 돌렸다. 햇빛 쨍쨍한 날을 기다리며 이불빨래를 쌓아놓고 미루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건조기는 우리 집에서 가장 열일하고 또 열일하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탈이 난 것이다.



건조기 고장 후 우리 집 거실엔 다시 건조대가 들어왔다



하필, LG건조기 결함으로 난리가 난 시점이었다. 찾아보니 우리 집도 어쩌면 콘덴서 결함으로 고장이 난 것일지도 몰랐다. 난리통에 고객센터 연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방문 서비스가 3주나 걸린다고 했다.


가장 빠른 게 3주 후라고요??!!


상담원에게 순간 목소리를 높여 되물었고, 뾰족한 수는 없었기에 그거라도 잡아달라고 하고 전화를 마쳤다.


그럼, 그동안 어떻게 빨래를 한담?


희한하게도 건조기가 고장이 나자 어떻게 빨래를 하면 좋을지 난감했다. 건조기 사용한지는 1년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있다 없으면 그 존재를 확실히 깨닫게 된다고 하더니, 고장이 나자 건조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새 건조기에 한껏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걱정과 달리 건조기 없이도 빨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비 오는 날에는 거실에 건조대를 들여놓고 선풍기를 돌리며 말렸고, 해가 쨍쨍 날 땐 햇빛을 한껏 쐬어주며 빨래를 말렸다. 건조대에 널 빨래 양은 정해져 있으니 어른 빨래, 아이 빨래 하루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했다. 31개월인 아이 배변 훈련 시기와 겹쳐 젖은 팬티와 옷이 여러 벌 나왔지만 그마저도 차례를 기다리며 돌렸다. 따로 빨던 수건도 그때그때 같이 빨게 됐다. 쉰내가 나지 않도록 섬유유연제 양을 좀 더 늘렸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었다.


불편했지만 감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빨래 양을 나누고, 마를 시간을 계산하고, 널 공간을 생각하고, 일기 예보를 한 번 더 확인하는 정도의 불편함이었다. 날씨에 따라 건조대를 베란다에서 거실로 들여오기도 하고 다시 내놓기도 하는 정도의 수고로움이었다. 그래도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었고, 수고로운 것은 수고로운 것이었다. 건조기가 원래대로 작동이 잘 되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다.


고장 난 후에야 건조기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건조기는 있다 없으면 확실히 불편하다. 그렇지만 꼭 있어야 하는 필수 가전은 아니다.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


그치만 동시에 소중한 존재였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 생활의 윤택함을 가져다주는 존재. 있으면 안심이 되는 존재. 건조기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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