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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사탕 Feb 27. 2022

난임을 마주해보다

마주하는 것과 인정하는 건 또 다른 차이가 있었다.


집과 가까운 병원을 알아보고 지역 맘 카페를 검색해 진료를 해 줄 선생님을 알아보고 진료 예약을 했다. 나의 상태를 직시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처음 방문한 병원이고, 난임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무거움에 약간의 긴장이 되었지만 나와 남편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상담 카드를 작성하고 준비한 검사 결과지를 제출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이 영겁의 시간 같았다. 새롭게 나의 담당이 될 선생님은 AMH 검사 결과지를 보더니 나의 상태는 너무 심각해서 이 정도 수치면 인공 수정을 건너뛰고 시험관을 바로 해야만 하는 상태라고 했다. 다만, 이 검사 결과는 난포의 수가 적다는 거지, 난자의 질은 내 나이를 따라가는 것이라 아직 너무 섣부르게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선은 자연 임신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미 한 번의 충격을 경험하고, 나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어서인지 직시한 현실이 크게 절망스럽진 않았다. 6개월 정도 자연 임신을 시도해보고 그때도 안되면 시험관을 결심해도 된다는 말이 커다란 위로의 말처럼 들렸다. 상태를 정확하기 알기 위해 나도 남편도 추가 검사를 받아야 했다. 생리가 시작하고 5~6일 뒤에 나팔관 조영술을 해야 했고,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다시 가야 했으며, 배란일을 체크하기 위해 매주 한 번은 병원에 가야 했다. 매주 반차를 써야 하다 보니 회사에서는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야만 했고, 오해를 해명하기도 그렇다고 다른 핑계를 만들어 거짓을 말하는 것도 싫어 묵비권을 행사해야만 했다.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고의 지난한 4주가 또다시 흘러갔다.


그중에서 나팔관 조영술이 가장 힘들었다. 이렇게 아프고 힘들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대체로 고통을 잘 참는 나로서는 아파봐야 뭐 얼마나 아프겠어, 하고 얕잡아 본 것도 있지만, 검사대 위에서 탭을 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서 정말 중도 포기를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알고 보니 왼쪽 나팔관이 막혀서 조영제가 잘 흘러가지 않았던 것.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었다.


다행히 남편은 무사했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건 자연 임신을 시도해보는 것. 그리고 그게 안되었을 땐 시험관을 할 마음을 먹는 것, 그것뿐이었다. 고작 그것뿐인데 매번 시험을 치르고 낙방하는 기분을 느껴야 했고, 그 패배감이 분해 엉엉 울기도 수개월.


그 사이 나는 퇴사와 이직에 정신이 없었고, 내가 나에게 부여한 임신에 대한 어떤 압박을 하기 싫은 방학 숙제처럼 한편에 미뤄두었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아이를 계획하지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을 빌어본 적도, 적어도 나와 남편의 가까운 미래의 어떤 한 장면에도 아이를 들여놓아본 적도 없는 나였는데, 그런 주제에 나의 의지대로 아이를 갖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마치 임신을 하지 못해 초조해하는 내가 등 뒤에 바짝 서 있었다.


우리를 기다려줄 리 없는 시간은 야속하게도 정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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