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넥스트 커리어 코치 Oct 08. 2020

면접관이 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부터 이력서를 참 많이 냈는데 대부분 서류 전형부터 탈락한 곳이 많다. 그나마 면접을 볼 기회가 처음으로 주어졌던 것이 바로 첫 직장이었다. 첫 직장에서 나온 이후에도 여러 번 직장을 여러 번 옮겼기 때문에 이력서를 곧잘 내곤 했지만, 전혀 모르는 곳에 이력서를 내고 서류 면접이 통과되고 면접을 보게 되는 지극히 일반적인 과정을 통해 직장을 구한 경우는 몇 번 없다. 지금까지 돌아보면 대부분 지인 소개로 직장을 구했다. 그래서 2013년 


‘도대체 왜 기업들은 하나같이 나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이런 이력서 양식으로는 도대체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잖아?’


하는 생각으로 ‘인재 박람회’를 개최했었다. 세상에 ‘존재 자체로서 빛나고 있을 사람들’과 이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좋은 회사’를 연결해 주면 좋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누구나 진입 가능하고 돈을 벌어갈 수 있는 애플의 앱스토어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 생태계를 꿈꾸었던 나는 인재 박람회 이후에 다시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갔고, 지난 3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나오기 전에 새로운 직원을 뽑기 위해 5명의 면접을 보면서 과거의 나, 나를 보아준 면접관에게 비쳤던 당시 나의 모습을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 입사 동기와 과거의 성과가 확실한 첫 번째 면접자

처음으로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일단 첫인상인 외모부터 굉장히 깔끔했다.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여서 지원을 했다. 중국어와 일본어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고, 이미 이전 회사에서 기존의 비즈니스를 확장시키고 추가 매출의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점이었다. 단지 아쉬운 점은 이 사람이 우리 회사에 와서 하고자 하는 것을 회사가 얼마나 서포트해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첫 번째 면접자와의 인연은 연봉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끝나고 말았다. 회사에서는 그 면접자가 원하는 연봉을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면접자 역시 우리 회사에서 제시한 적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고 싶은 만큼 회사의 콘텐츠가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첫 번째 면접자를 만나고 과거의 나를 생각해 보면 경험해 본 것도 없는데 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 이상주의자였다. 내가 입 밖으로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에 차서 말했지만 사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나를 보았을 때는 굉장히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능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흔히 요즘 사람들이 얘기하는 ‘스펙’은 만들어 놓은 것도 없는데, 그런 스펙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면접관들 눈에는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당연히 월급을 주고 최소한 그 월급만큼, 그리고 그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내기를 기대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검증된 스펙이 없는 사람을 뽑기에는 리스크가 큰 것이 사실이다.


# 엑셀'도' 못 하는 두 번째 면접자

두 번째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소위 얘기하는 스펙만 놓고 봤을 때 정말 특별한 것이 없었다. 지방 대학교 졸업에 고시 공부를 할 생각이었는지 학교 졸업 점수도 평균 이하였고, 눈에 띄는 아르바이트나 직장 경력도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자기 사업을 1년 정도 하면서 블로그로 홍보 마케팅을 했기 때문에 블로그는 잘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면접 말미에 '엑셀은 할 줄 아나요?'라고 질문했는데 할 줄 모른다고 해서 좌절했다. 해당 업무에서 엑셀의 고급 기능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엑셀로 정리되어 있는 파일이 많아서 기본 이상은 알고 있어야 일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 면접자의 이력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가족들이 화목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혼자 컸어도 조부모님과 자랐으면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두 번째 면접자를 만나보니 나의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동아리, 학생회, 학과의 소모임 등 학과 공부 외에 다른 활동들에 많은 신경을 쏟다 보니 학교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심지어 전공과목 중에 4학년 통틀어서 A학점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그나마 유일하게 A를 받은 과목은 '동양 철학의 이해' 수업이다. 학교 공부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성적표다. 사실 대학 졸업하면서 수 없이 많은 대기업에 원서를 냈지만 대부분의 대기업 입사에 필요한 최소 조건 중 하나가 바로 학점이고, 그 기준이 3.5 이상이다. 하지만 나의 성적은 3.4x로 대기업 입사에 필요한 최소 기준에 미달한다. 그러니 아무리 원서를 많이 내도 연락이 오지 않을 수밖에… 지금 생각하면 전공과목 공부는 좀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학자금 대출로 다녔던 대학인데 기왕 졸업증 받는 거 해당 전공으로 어디서든 일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상태로 졸업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 극한의 대표를 버틴 세 번째 면접자

다섯 명의 면접자 중에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장 강력하게 내비친 사람이었다. 면접 후에 결과를 통보할 때도 정말 아쉬워하는 게 느껴져 미안할 정도였다. 홍보 마케팅 대행사에서 6개월 정도 일을 한 세 번째 면접자는 틈만 나면 욕하고 화를 내는 극한(?)의 대표 밑에서 일을 배웠다고 한다. 처음 입사할 때 다른 선배들이 '얼마나 버티나 보자'라고 생각했다는데 생각보다 오래 잘 버텼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일로 인한 야근과 대표님과의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쓰러졌고,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영업팀 사원이 나간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뽑기 위해 영업팀과 마케팅팀 두 가지 직무로 구인을 했는데 그중 마케팅팀으로 지원한 사람이다. 회사에서 꼭 일해 보고 싶은 열정만큼은 일등이었는데, 마케팅팀 업무를 기대하고 왔다가 영업팀 업무를 하게 되면 실망할 것 같았고, 오래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결국 입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세 번째 면접자의 이전 직장에서의 상황을 듣는데 '어떻게 버텼을까? 나 같으면 당장 때려 치웠을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심각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사람 복이 좀 있는 나는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일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늘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일을 해 온 편이다. 때로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굳이 얼굴 볼 일을 만들지 않는 등으로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새삼 그간 만나온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열정적으로 꼭 일하고 싶다는 이 면접자를 보니 첫 번째 직장 면접 볼 때의 내가 생각났다. 당시 면접관이었던 지점장님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는데 거기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 안 뽑아 주시면, 매일 밤마다 꿈에 나타나서 괴롭힐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을 들은 면접관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얘는 뭔가?'하고 생각했을 텐데, 그래도 그랬던 나를 뽑아준 지점장님이 대단하다. 


# 지인 찬스, 20년 경력의 베테랑 네 번째 면접자

한창 면접을 보던 중에 메신저에서 동아리 선배와 대화를 나누는데 제조업과 매장관리 등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해 왔던 선배가 갑자기 마케팅 쪽 업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사람 뽑고 있다'라고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이력서를 내 보겠다는 게 아닌가. 그러라고 했는데 이 사람, 진심으로 이력서를 내고 일을 해 볼 생각이었다. 결국 면접까지 진행했고, 부장님은 내게 '당신이 같이 일할 사람이니 당신이 뽑으라'라고 하셨다. 내가 선택한 기준은 단 하나였다. '내 손이 얼마나 덜 가는 사람인가?'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에게 일을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이 또 다른 나의 업무가 될 것이 너무나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장 손이 안 갈 사람, 바로 선배를 뽑자고 했다. 다행히 영업팀 과장님 퇴사 며칠 전에 입사를 했고, 하루 종일 인수인계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선배가 다른 곳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왔다며 나가 버렸다.

돌아보면 내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 퇴사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두 번째 일을 했던 할인쿠폰 어플을 개발했던 스타트업에서 홍대와 이태원 등의 영업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투자 유치에 연이어 실패했고 결국 회사의 자금이 거의 바닥난 상황에서 월급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어 퇴사하게 되었다. 그때가 5월이었는데, 회사는 결국 5개월 정도를 더 버티다가 폐업 신고를 했다. 이후에 홍대에서 1인 가구 여성들을 대상으로 카페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어슬렁 정거장 역시 운영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에어비앤비를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린 시점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일을 조금 더 같이 해 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생각해 보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과 내가 필요한 능력을 쓰거나 키워나갈 수 있는 곳이 딱 맞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참 쉽지 않은데 나는 운이 좋게 그런 곳에서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내 능력을 많이 키워올 수 있었던 것 같다.


#  스펙을 열심히 만들어 온 다섯 번째 면접자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사회초년생으로 직장 경력은 없지만 본인이 일하고 싶은 회계 파트에 필요한 자격증 등을 많이 준비한 사람이었다. 회사 실무에서 얼마나 잘 적응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본사 재경팀과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는 나보다 신입직원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을 준비하면서 만든 자격증을 보니 그래도 면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안심'이 되었다. '이쪽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준전문가급으로 알고 있기는 하겠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게다가 편집장님이 원하는 '여자'였고, '비흡연자'라는 사실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편집장님 지인의 소개였고, 소개할 때 '함께 면접 본 사람이 엄청 까다로운 사람인데 이 친구 일을 잘할 것 같아서 뽑고 싶어 했다'라고 얘기해 준 것도 결정적이었다.

나는 사실 '스펙 그게 뭐라고?' 이런 생각이 있었다. 특히 자격증에 있어서 그런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어차피 회사에 가면 다 써먹지도 못할 텐데, 지금 그 자격증을 따 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자격증 준비를 해 볼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졸업할 당시에 유행(?)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 관련 자격증은 하나 따 놓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면접을 보니 자격증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어찌 됐든 그 자격증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 사람이 쏟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공부하면서 얻은 지식이 그 사람이 일할 업무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수의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덜 가르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니 말이다. 거기에서 사수인 나도 잘 모르는 분야인데 잘 알고 있다면 거기에서 점수는 다시 한번 추가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의 개인적인 견해에 따른 조건들-성별, 흡연 여부 등등등-까지 원하는 기준에 부합된다면 합격에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말을 하자면 첫 번째 면접자는 연봉이 맞지 않아 회사 입장에서 아쉽게 놓쳤고, 네 번째 면접자는 자기 경력을 다 포기하고 말도 안 되는 연봉에 일을 하기로 했지만 결국 자기 경력에 걸맞은 연봉을 제시하는 곳으로 갔다. 성격이 좋아 시키는 건 뭐든 잘할 것 같은 두 번째 면접자를 다시 뽑았지만 외근이 많은 영업을 기대했지만, 코로나 19와 여러 가지 요인으로 회사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을 힘들어해서 결국 한 달만에 퇴사했다. 그리고 마지막 면접자가 지금 현재의 자리에 남았다. 퇴사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듯하다.


*기존에 쓴 글을 퇴고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