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춤을
우리 집 네 식구는 현재 다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동생 둘은 미국과 호주에 엄마와 나는 서울에서 강남과 강북 쪽에 터를 잡고 사는 중이다. 10여 년 전에 돌아간 아버지 제사는 주로 엄마를 중심으로 지내고 있는데 간혹 연휴를 포함해 여행을 가게 되면 여행지에서 간단한 현지 음식을 차려 놓고 차례를 지내거나, 아버지를 모셔둔 지방 납골당으로 직접 가는 날에는 미리 집에서 준비해 둔 음식으로 간단하게 지내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 새벽 가족 통화를 하는데 올해 추석에는 영상 통화로 제사를 같이 지내자고 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저녁에 엄마 집으로 간 나는 추석 연휴 첫날 느지막이 장을 보고 추석 날 새벽에 여유롭게 제기를 꺼내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제사상이 차려질 때 줌을 켜 동생들을 초대했다. 저녁이라 깨어 있던 미국에 있는 동생은 바로 참여를 했고, 호주에 있는 동생은 새벽부터 바쁜지 답이 없었다.
아버지 제사와 명절 차례상에는 아빠가 좋아했던 과자와 아이스크림 등을 올리고 나머지 조리하는 음식은 엄마와 내가 한 두기에 모두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으로 매해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한다. 작년에는 파스타를 했고, 올해는 골뱅이 무침이 먹고 싶어 골뱅이를 한 캔 사 왔다. 하지만 '어떻게 만드는 거냐?'라고 물어보던 엄마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답하던 나는 서로에게 골뱅이 무침 만들기를 미루다가 결국 제사상에는 음식의 형태가 아닌 캔만 올리게 되었다.
10개월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동생은 추석 차례를 지내는 그날도 일을 하고 제사 준비가 시작되자 몸이 찌부듯하다며 휴대폰을 켠 채 산책을 하러 갔다. 그리고 산책하는 구석구석 숨어 있는 동네 명소(?)들을 소개해 주었고, 제사상을 차리며 나는 지구 반대편을 보며 '좋다'는 소리를 연발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제사상이 그럴듯하게 차려졌고, 나는 동생과 엄마에게
자, 이제 제사를 시작합니다.
라고 제사의 시작을 알렸다. 걷고 있던 동생은 벤치를 찾아 앉았고, 정종 대신 화이트 와인을 담은 술을 따라 아빠에게 한 잔 올리고, 아빠 사진을 향해 절을 두 번 했다. 동생은 그 사이 목 인사를 함께 했다. 젓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상에 두 번 톡톡 친 뒤에 아빠가 가장 좋아할 만한 조기 위에 가장 먼저 올려 드렸다. 조기, 사과, 떡 등의 순으로 아빠가 좋아할 만한 음식 순서로 젓가락을 올렸다.
한 번 더 술잔을 올리고, 10여 분동 안 아빠가 제사 음식 드실 시간을 드린 뒤에 올해 추석 차례는 끝이 났다. 코로나 19로 추석 연휴의 모습도 많이 바뀌게 된 것 같다. 코로나 19 덕분에 늘 떨어져 있어 단톡 방에 사진만 공유하던 우리 가족도 영상 제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뭔가 사진과 영상의 차이일 뿐인데 이번에는 왠지 제사 지내는 시간 내내 동생이 바로 옆에서 함께 있어 그런지 좀 더 든든했다.
코로나가 보고 싶으면 오고 우리가 보고 싶으면 오지 말아라.
코로나 19로 고향 방문 자제하기 캠페인 영상을 봤는데 어떤 어머니가 자녀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엄마와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명절 캠페인을 보고 둘이 깔깔대며 웃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엄마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엄마와 눈만 마주치기만 해도 똥꼬 깊숙한 곳에서부터 짜증이 올라왔다. 엄마가 좋은 말을 하든 나쁜 말을 하든 엄마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듣기가 싫었고, 마음에서 반항심이 먼저 일어나 엄마와 말로 소통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만나기만 하면 엄마는 내게 "너는 말만 화면 그렇게 화내고 짜증부터 내냐?"라고 했고,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엄마에게 "엄마가 이렇게 짜증나게 하잖아."라고 얘기하는 레퍼토리가 늘 반복되었다. 그런데 명상을 시작하고 엄마를 대하는 내 마음이 매년 조금씩 달라졌다. 명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엄마가 하는 말의 일부에만 짜증이 나거나 분노가 생기거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일상의 소소한 대화가 조금은 가능해졌다. 그리고 작년 추석 연휴 때는 엄마와 산책을 했는데 엄마와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중에도 약간의 짜증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때 '아.. 그리도 내가 엄마와의 관계가 많이 회복됐구나. 이렇게 웃으면서 대화하는 날이 오다니..'하고 생각했다. 올해는 추석 차례를 지내고 내게 테니스를 치러 가자고 해서 '엄마가 원하니' 같이 가서 1시간이 테니스를 쳤다.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었고 내 감정에만 치우쳐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점차 상대방인 '엄마'가 원하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맞추어 주게 되는 것 같다. 테니스를 치고 엄마가 다른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원장님. 명상 지도해 주신 덕분에 올해 추석은 엄마와 이렇게 하하호호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쑥스럽지만 엄마와의 관계가 회복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명상을 지도해 주시는 원장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아빠 살아 계실 적에 명상을 시작했더라면, 아빠와도 한 번쯤은 그렇게 웃을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아빠를 덜 외롭게 보내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왠지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