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기쁨, 나만의 오티움
흔히 '결혼하면 어른이 된다'라고 하는 이유는 '남들이 뭘 하던 관심 없고, 나 밖에 모르던 삶'에서 '아이'라는 존재를 통해 '책임감'이 생기고, 아이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아이를 통해 또 다른 나 그리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그만큼 성장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짝꿍과 나는 2013년에 처음 만났고, 결혼 생각이 전혀 없던 내가 짝꿍을 만나 처음으로 진지하게 '결혼이라는 걸 한 번 해 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대화를 통해 '둘 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음'에 공감했고, 그렇다면 결혼은 하지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같이 산지 7년.
명상에 관심이 생기던 시기에 이미 10년 정도 명상을 해온 짝꿍을 만나 자연스럽게 스님들이 운영하는 윤주영 명상요가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는 동안 '명상'은 자연스럽게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회사 출근길에 10분씩 명상, 밥 먹을 때 씹으면서 명상, 걸을 때 한 걸음 한 걸음 명상, 회사에서는 컴퓨터 작업에 몰두해 있다가 1-2시간마다 숫자 세기 명상,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도 분명하게 알아차리기 명상.
우리가 다니고 있는 명상센터 원장 스님은 늘 일상에서의 명상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기 때문에 흔히 '명상'하면 떠오르는 장면인 정좌로 앉아서 눈을 감고 하는 명상이 아닌 일상 중에 함께 하는 생활 명상이었다. 물론 주말에는 법회가 끝나면 앉아서 하는 명상을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하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지만. ㅠㅠ)
이렇게 일상에서 명상을 한 지 4-5년 정도 된 것 같다. 원장 스님께 명상법 지도를 받고 일상에서의 명상이 훨씬 쉬워졌고, 굉장히 즐겁고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명상 수련을 시작하면서 내 삶의 질은 눈에 띄게 나아졌다. 가장 큰 부분 중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일고 스러지는 감정의 기복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화가 난다, 자각한다, 그러면 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와는 종종 아니 자주 아니 매번 대화를 나눌 때마다 화가 나곤 했다. 특별히 화를 낼 일이 아닌 일상의 대화로 시작하지만, 어느새 서로에게 못마땅한 부분을 강요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특히 엄마가 온갖 잡동사니들을 집안 곳곳에 쌓아 두고 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던 나는 엄마 얼굴만 보면 '제발 좀 버리시라'라고 울부짖으며 엄마와 부딪혔고, 그렇게 화를 내기 시작하면 눈을 마주치는 것도 싫었고 엄마와 웃으며 대화를 오랜 시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명상 수련을 시작하고 4년, 일상의 명상 수련을 한 지 2년쯤 지나던 시점의 어느 명절 연휴에 엄마와 뒷산에 산책을 갔다. 걸어가면서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갔고, 다행히 그때까지는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 우리의 대화는 다시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는 주제로 넘어가 버렸고, 또 욱하는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일상에서 연습한 명상이 빛을 발했다.
'뭐야. 지금 화내려고 있잖아. 아니야. 넣어 둬 넣어둬~'
화를 내려고 하는 마음이 감지됐고, 알아차리는 그 순간 마음을 가다듬고 화 내려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리고 화를 내지 않고 엄마와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가 명상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사람들 말대로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진짜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 후에나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만한 어떤 큰 사건이 있거나. 평생 엄마와는 원수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을지도...
또 한 번은 짝꿍의 요리를 도와주던 시간이었다. 요리는 1도 모르는 내가 옆에서 도와주는데 시간이 늦어서 빨리빨리 해야 하는 상황이라 짝꿍은 순간순간 내게 짜증 섞인 말투로 지시를 했다. 그리고 그 짜증 나는 말투를 듣는 내 마음도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니야. 화내지 말자. 그래. 나라도 내가 옆에서 도와주면 답답해 미칠 지경일 거야. 괜찮아, 릴랙스~'
이때부터 짝꿍과 있을 때 자주 이렇게 들썩거리는 내 마음을 자각하고 가라앉히는 것에 재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괜찮아. 이렇게 조금씩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거지. 저렇게 화를 내도 괜찮아. 덕분에 나는 이렇게 자각하면서, 즐거울 수 있잖아? 좋아!!!'
책 <오티움>(*오티움-배움을 즐기는 여가 시간, 자신을 재창조하는 능동적인 휴식)을 쓴 문요한 작가는 행복에도 엄연히 등급이 있다고 말한다. 가장 낮은 등급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순수한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것이고, 조금 더 상위의 행복감은 풍경이 좋은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노력은 있지만 그 환경이 사라지만 만족감도 사라지는 수동적인 행복이며, 이보다 더 상위의 행복감은 노동이 끝난 후의 휴식 아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이라고 했다. 문요한 작가는 이보다도 상위의 행복감에 대해서도 정의 내렸는데 몰입을 통한 성취 경험 즉 어떤 대상을 향해 스스로의 자연스러운 노력이 고조되어갈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내게 있어 문요한 작가가 말한 상위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오티움은 바로 명상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에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명상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기쁨'에 취했다고 할까? 즐거운 감정, 화가 나는 감정, 무언가에 '나도 모르게' 몰입하는 등 '나도 모르게' 일어나던 일상이 '내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면서 감정이든, 상황이든 내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되어 살 수 있다는 것이 현재 내가 명상을 통해 누리는 기쁨인 것 같다.
그래서 짝꿍과 나는 결혼과 아이 대신 '명상'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