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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Jun 05. 2020

담배, 시작과 끝

대학에서 맞이한 두 번째 여름,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방학을 맞이해 바닷가로 캠프를 떠났다.

함께 했던 멤버는 10명 정도였다. 그중 한 명은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여름 방학을 맞이하기 전 친구를 학생회 다른 친구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연애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동창 찾기와 동창 모임이 유행이었던 그 시절 나는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장난기 많은 꼬마가 어느새 훤칠한 남자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당시 그 친구와 내 관계는 썸이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마음을 접었고, 그를 '친구'로써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태평양 같은 오지랖이 발동해 그를 나의 친구에게 소개해 준 것이다.


다른 학교에 다녔던 친구라 학기 중에는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지만, 1박2일 캠프에서는 둘이 줄곧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 한편에 곱게 접어 두었던 친구에 대한 애정(?)의 불씨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분노의 마음이 일어났고, 그들을 보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


펜션 테라스는 함께 했던 멤버들 중 과반수의 흡연자들이 점령했고 친구와 친구의 애정행각을 보던 나는 결국 괴로운 마음에 친구에게 던지지 말았어야 하는 한 마디를 던지고야 말았다.


담배 하나 줘 봐


2003년의 여름, 그렇게 내 인생에서 10여 년간 끊어내지 못할 흡연의 역사가 시작됐다.

펜션에서 그들을 보고 가슴 앓이 하며 분노의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것이 바로 나의 성격이었다. 흔히 얘기하는 '화'가 많은 아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곧잘 참았다. 그래서 내 인생은 담배를 피우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담배 피우기 전에는 무조건 참았고, 담배를 피운 후부터는 참기 힘들 때 담배를 피웠다.


내게 담배에 저절로 손이 가는 건 주로 두 가지 상황이었는데, 하나는 가슴 한 쪽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지고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올 때와 술을 마실 때였다. 첫 번째 상황에 처했을 때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면 폐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입 밖으로 토해내는 담배 연기에 내 속에 차 있던 모든 분노와 화를 같이 내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 게이지가 높을 때면 연달아 두 대를 피울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한 대만 피우면 괜찮아졌다.


우리 과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나와 내 후배 둘 뿐이었다. 2020년인 지금은 길에서도 담배 피우는 여자들이 많아졌지만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길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10명 중 8명이 쳐다봤다. 쳐다보면 '뭘 봐?'하고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쳐다보는 시선을 즐겼던 것 같다. 일종의 '관종'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주목받는 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매일 피던 담배와 거의 매일 마시던 술은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되었고, 동전의 양면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내 인생 깊이 침투해 있었다. 하지만 담배 피운지 십여 년이 된 어느 날, 숨쉬기 힘든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아..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매일 아침잠에서 깨면 다짐했다.


'오늘은 담배를 한 대도 피지 말아야지.'


하지만 같은 날 잠자리에 들 때는 늘 '오늘도 실패했다'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과연 이 담배라는 녀석과 헤어지는 날이 올까? 하루하루가 갈수록 쉽지 않겠다는 마음이 커져만 갔다.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였는데, '끊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때부터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매일 담배와의 완전한 이별을 꿈꾸고 있던 내게 '명상'이라는 새로운 친구가 나타났다. 2주일에 한 번으로 시작한 명상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늘었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던 내가 주 3일 아침 7시 수업을 듣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나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담배가 맛이 없어


명상으로 인해 내 속에 있던 화와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져셔였을까? 담배가 맛이 없어졌고 그 날로 담배를 끊게 되었다. 그리고 7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딱 두 번 담배를 피웠다. 명상으로 거의 매일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았는데, 한 번 회사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마음의 고요가 요동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정말 오래간만에 회사 동료의 전자 담배를 두 번 빼앗아 피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담배 생각이 난 적이 없다.


7년의 시간 동안 내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실 7년 전까지도 나는 꽤나 이상하게 사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역시 이상하게 살고 있다. 7년 전에도 나를 이상하다 했던 친구는 지금 나를 더욱 이상한 인간이 되었다 말하고, 나를 잘 아는 선배는 7년 전과 너무 급변한 나를 보며 '사는 게 재미있니?'라고 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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