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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Oct 28. 2021

완벽함이란 파랑새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 됨>, 즉 <자기 화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조셉 캠벨 저) P306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나를 점점 옥죄고 있다. 사실 내가 완벽함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책 <강점 혁명> 설문을 해서 나온 5가지 강점 중에 ‘최상주의자’가 있었다. 최상주의자(maximazer)의 기준은 평균이 아니라 최상이다. 내게 주어진 다양한 기회들이 완벽함에 대한 나의 집착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놓치고 있었던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춤을 추고 싶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부러웠다. 클럽에 가거나, 어떤 모임에서나 춤을 출 기회가 생기면 나는 가볍게 몸을 흔들긴 하지만, 몸동작이 크지는 않았다. 손을 위로 뻗어 흔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춤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클럽 댄스든, 힙합이든, 스윙댄스든 춤을 ‘제대로’ 배우고 나면 자신감 있게 어디서든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윙댄스를 배웠다. 하지만, 음악에 맞춰 적절한 동작을 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첫 단계는 무사히 마쳤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 포기했다. 완벽하게 즐길 수 있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생길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스윙댄스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아’라는 핑계를 대며 배우기를 그만뒀다. 그리고 춤을 춰야 하는 자리는 되도록이면 피해 다녔다.

 


연기도 해보고 싶었다. 감정표현이 무척이나 서툴었기에, 왠지 연기를 해보면 다양한 나의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2009년 말에 우연히 인디 극단에서 뮤지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공연 중간중간에 보이는 여러 가지의 배역을 맡았다. 한 달간의 연습 끝에 드디어 공연 당일이 되었다. 다행히 큰 실수를 하지는 않았고 연습을 많이 했던 배역은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난 후, 공연 동영상을 봤다. 내 얼굴 표정이 많이 굳어 있었다. 연극이 끝난 후, ‘좀 더 준비가 될 때까지, 다시 연기는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준비라는 것은 ‘연기를 배우는 것’과 ‘감정표현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였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연기를 배울 기회가 있긴 했지만, 배우지는 않았다. 감정표현에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1년 전과 나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기회가 생기면,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첫술에 배부르랴’라고 쿨하게 생각하고 ‘하다 보면 잘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조금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 그때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작이 없으면 완벽해질 기회도 없는데 말이다. 


언젠가 누가 내게 물었다.


“신치는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예요?”

“특별히… 없어요.”

“좋아하는 음악은요?”

“음악도 특별히… 없어요.”

“그러면, 신치는 도대체 관심 있는 게 뭐예요?”

“음… 관심 있는 거요? 저는 저한테 관심이 많아요. 내가 어떻게 살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이런 것들이요.” 


사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에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면, ‘나도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 배우, 혹은 음악이 있으면 좋겠어.’라고 외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하지만, 마니아가 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해. 음악 장르 하나를 좋아하려면 그것과 관련된 모든 음악을 들어봐야 하는데, 언제 그 많은 것들을 듣고 있겠냐고!!’라고 외치며 어느새 포기하고 있는 내가 있다.


그냥 좋아하는 장르를 하나 정하고, 그와 관련된 음악들을 하루에 2-3곡씩이라도 조금씩 듣다 보면, 음악을 알게 되고, 뮤지션을 알게 되고, 그렇게 좋아하게 되는 것인데 말이다. ‘꼭 마니아가 되어야 해? 그냥 좋아하기만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질문을 던져보면, 대답은 ‘그렇지.’이다. 꼭 어떤 분야에 마니아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많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완벽함’에 집착하고 있을까? 어떤 것을 하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내게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들을 차단하고 있다. 춤도, 음악도, 연기도, 그리고 어쩌면 사랑도. 내가 가진 기준의 ‘완벽함’에 부합하는 준비가 되지 않으면, 시도하려고 하지 않거나,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지금껏 익숙한 것, 스스로가 만족스럽거나, 이미 자신 있어하는 것들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그 틀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로워진 나와 마주하고 싶다.




돌아보니 이 완벽함이란 녀석은 내 인생 전반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특히 매 순간순간 각 시기에 '본질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현재에 집중하지도 만족하지도 못했고, 내가 상상하고 있는 '완벽한 미래의 모습'만을 늘 그리며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꿈꾸던 '완벽한 미래의 어떤 시점'이 막상 현실이 되면 역시 만족하지 못했고, 또 다른 미래를 그리워했다.


첫사랑을 만날 때에는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언젠가 크게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극도로 아꼈다. 심하게 아낀 나머지 적극적으로 표현하던 첫사랑은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만나는 줄 알고, 2년을 최선을 다해 사랑해준 뒤에 떠나고 말았다.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 직장인 푸르덴셜 생명에서 재무설계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본인의 꿈을 이루어가는데 돈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진짜 라이프플래너가 되기 위해서는 매일 밤 술자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재무설계사라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자격증을 따는 등 공부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결국 스스로가 만든 상담력의 한계에 부딪쳤고, 그로 인해 첫 직장에서는 실패를 맞이했다.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선생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3년을 노력해서 드디어 연구원이 되었다. 매주 책을 읽고 글을 썼다. 1년의 연구원 과정이 끝나고 졸업여행을 간 자리에서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야, 인마. 너는 그렇게 연구원이 되려고 했으면서, 왜 열심히 하지 않았냐?" 

"제가요? 아하하.. 그러게요. "


사실 그때는 선생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몰랐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의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구본형 선생님과 함께 했던 그 시간 역시 '현재에 오롯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뿐만 아니라 변경연 카페인 살롱 9에 있을 때에도, 어슬렁 정거장에서 홍보와 프로그램 기획 담당으로 있을 때, 장애인 문화예술 판에서 교육 기획을 할 때, 매거진에서 온라인 마케팅 담당자로 일할 때도 늘 그런 모습이었다. 내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늘 멀리 미래의 어딘가 혹은 내가 하고자 하는 다른 무언가에 있었다. 


마지막 종착역이라 생각했던 명상요가 지도자를 하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명상요가센터에서 지도자를 하면서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 돈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마음이 갑자기 일어나 각종 강의를 들으며 현재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동안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찾던 '완벽함'이란 녀석은 저기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여기'에서 매일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해내야 하는 것들은 다 놓쳐버리거나 대충대충 하고선, 완벽해지기를 바랐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이제는 내가 꿈꾸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상상 속의 완벽함'이란 파랑새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구본형 사부님이 말씀하시던 '매일의 힘'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2011년 4월 25일에 쓰고 2021년 10월에 덧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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