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by 라프

또다시 찾아온 백수 생활 2주 차. 아침에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나가려는데 감기 기운에 열도 나고, 오한까지 겹쳐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다행히 아침은 먹어서 배고픔까지 더해진 최악의 몸상태는 아니었다. 오후 5시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모르고 있는 엄마에게 너무 아파서 조퇴하고 집에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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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가시덩굴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온몸이 콕콕 쑤셔댔다. 평소에 무디던 피부의 감각들이 갑자기 예민해져 평소에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각들까지 모두 살아난 느낌이다. 머리와 눈 앞은 온통 뿌옇고 가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면 어지러워 눈 앞이 핑 돌아 몇 시간을 이불속에서 괴로움에 끙끙대며 정신을 못 차린다.


드디어 엄마가 왔다. 불려놓은 북어로 북엇국을 끓여 내게 주신다. 입맛은 없었지만 오로지 ‘먹어야 산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북엇국 한 그릇을 비우고, 약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잠을 자는 동안 입안은 바싹바싹 마르고 기침이 심해져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목이 타서 물을 마시고, 또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 오후부터 계속 잠만 잔 것 같다. 중간중간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시간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잠으로 보냈다. 첫날보다 몸이 조금 좋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귓가와 눈가 그리고 머릿속까지 뿌연 안개가 걷히지 않았다. 하루는 쉬고 또 하루는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일 처리를 하는 패턴의 생활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금요일이 되었다. 지금껏 의례히 그래 왔듯이 이번 감기도 밥 먹고, 약 먹고, 땀을 쫙 빼며 한숨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줄 알고, 마지막으로 시도를 해 보았으나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거의 일주일간 엄청난 양의 땀을 흘리며 쉬었지만 결국 몸 상태가 좋아지진 않았다.


결국 민간요법을 포기하고 힘든 몸을 이끌고 나가 동네 내과를 찾았다. 얼른 주사를 한대 맞고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30 여분을 멍하니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병원에 도착하고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찰실에 앉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증상을 물어본다.


“열나고, 오한도 있고요, 목도 아프고, 기침도 심해요.”

“콧물은요? 비염이 있나요?”

“아, 네. 콧물도 심하게 나요. 비염도 있고요.”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간호사 선생님이 체온을 재어 선생님께 말씀드린다.

“38.7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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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의사 선생님이 안경 너머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물어본다.


열이 꽤 많이 나는데, 이런 지 얼마나 됐어요?
네? 일주일 정도 됐어요.
아니, 안 아팠어요? 어떻게 참았어요?


정말 심하게 아팠다. 내 생에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약을 먹어도, 잠을 자도, 땀을 흘리고 나서도, 몸이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 거였다. 선생님은 폐렴과 독감이 의심되니 우선 엑스레이를 찍어보자 하신다. 다행히 엑스레이상에 이상은 없었고, 독감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나는 20여 분간 병원 침대에 누워 해열 주사를 맞았다. 20분간 이 주사를 맞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이 싹 내려가고 내 주변에 맴돌던 안개도 싹 걷혔다. 그리고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이렇게 간단하게 몸이 좋아질 것을 미련하게 혼자 나아 보겠다며 오래 참아 온 스스로가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아팠던 지난 일주일간 나는 최악의 무기력과 완전한 탈집중 상태를 경험했다. 누워 있기만 하는 시간이 아까워 책을 읽어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눈 앞의 뿌연 안개로 인해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책 읽기는 실패. 대신 온몸을 움츠려 이불속으로 밀어 넣는 데는 항상 성공했다. 신체의 고통은 생각을 마비시켰다.


“사람이 슬플 때에는, 침대의 온기 속에서 누워 있는 것이 좋다. 그 안에서 모든 노력과 분투를 포기하고, 머리를 이불 아래에 파묻은 채, 완전히 항복하고 울부짖음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다. 마치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프루스트의 말처럼 완전히 항복하고 몸을 내맡겼더니 그저 나의 모든 감각이 살아나 춤추는 것을 느끼고 있는 그것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번에 겪은 고통의 결론은 "아프면 참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자."였다.


* 2012년 4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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