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 회사 동지와 맥주 한 잔

by 라프

오늘은 백만 년 만에 회사 사람과 술을 한잔 했다. 대상은 바로 우리 회사의 보살이라 불리는 분이다. 몇 년 전 회사에 한두 달가량 몸담았던 친구에게

그분이 마감 끝나고 맥주 한잔 하자고 했어.


라고 했더니. 그분이 웬일이라며 엄청 힘드신가 보다 하고 걱정을 했다. 그리고 이 분을 도인(보살)이라고 표현한 다른 직원-지금은 퇴사한-의 말이 생각났다.


무튼. 7년 명상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감정의 동요가 없는 이 분이 어디 풀 데가 없다며 맥주 한잔을 하자고 했다는 것은 ‘지금 나 엄청 힘들다’고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침 나도 힘든 상태였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마감 끝나면 한잔 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이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와 비슷한 점이 참 많았다.


# 다른 사람이 힘들다고 할 땐 그러려니 했어요

이 분은 이 분대로 같은 업무를 하던 (지금은 그만둔 여러 명의) 팀원들이 힘들어했던 과정을 지켜보았고, 그 과정에서 각각 사람은 달랐지만 힘들어했던 포인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들이 하는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데, 지금 그들과 같은 상황이 되고 보니 그때의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겠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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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랬다. 내 옆자리에 영업팀 과장님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을 때는 내가 일을 하나씩 벌릴 때마다 ‘그거 하나 한다고 얼마 벌지도 못하는데, 그 일로 인해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는 표정으로 사사건건 반대했던 그 마음이 내가 그분의 업무를 맡아서 해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리고 퇴사를 앞두었던 여러 직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가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할 때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사람은 없고 해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사라지고 점점 팍팍한 일상이 되어가는 것. 그것이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 바뀔 줄 알았지

무언가를 함께 하고 발전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변화를 기대하다가 결국 떠나간 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요


그러게. 지금 내 마음이 딱 이 마음이다. 처음 한두 번은 '이러이러하니 저러저러하게 바꿔봅시다'라고 얘기해 보지만 얘기를 해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기만 한다면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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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거나, 내 마음을 바꿔 먹거나.


오늘 술자리를 함께 한 이 분도 세 사람이 있어 각자의 강점에 맞추어 적절하게 일이 분배되어 있을 때는 할만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명이 세 사람이 하던 몫을 하게 되니 점차 시간과 마감에 쫓기고 할 일은 늘어나고 야근도 늘어서 회사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지금의 상황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여 더욱 힘들다는 것.


# 그래서 결론은...

어찌 됐든.. 회사에 애정이 아직은 남아 있는 두 사람의 바람은 우리가 회사에 남아 있지 않더라도 회사는 잘 됐으면 좋겠다는 것. 지금 성장을 앞둔 과도기에 있으므로 여기에서 조금만 더 하면 잘될 것 같다는 의견에 둘 다 동의했다.


2차로 옮긴 맥주집에서 마지막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버터 바른 먹태를 안주로 씹으면서 그동안 분출하지 못한채 쌓이기만 했던 스트레스를 약간은 날려버릴 수 있었다.


개인적인 결론은. 얼마 남지 않은 이 회사에서의 마지막 시간 동안.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자는 것으로 아름답게 마무으리.. 어찌 됐든 지난 시간 나를 키워준 회사에 대한 의리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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