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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Oct 30. 2021

클라이밍 새내기반 종강 후기

자세와 기술로 시작해 안전으로 끝나는 글

클라이밍 새내기반 수업이 끝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은 물론이요 수업 듣는 분들과도 친해졌다. 한 달 사이에 실력도 늘었다. 다니던 암장 기준으로 한 달 전에는 난이도 3이 수월하고 4는 힘들었는데, 이제는 난이도 4도 너무 어렵지만 않으면 풀리고, 친절한 문제는 첫 시도만에 완등도 했다. 


나는 두 달짜리 새내기 수업을 듣는 보통 사람들(?)과 상황이 다르기는 하다. 크로스핏을 오래 한 덕분에 코어와 팔다리에 힘이 있는 편이다. 전국 팔도 암장도 두루 돌아다녔다. 나를 영업한 사람도 많고 내가 영업한 사람도 많았던 덕분이다. 수업을 듣기 전에도 다양한 문제를 접하며 요령이 쌓였다. 마침내 체계적인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수업을 들었다.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익혔고 말로만 들었던 기술을 몸에 익혔다. 동작을 글로 옮길 수는 없으니 말로 옮길 수 있는 내용만 정리한다.




1. 클라이밍은 팔힘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다.

대부분 초보들은 팔을 구부리고 다리를 편 채로 움직인다. 하지만 벽을 탈 때는 골반을 최대한 열어서 개구리 자세로 몸을 벽에 붙여야 한다. 개구리 자세가 바른 이유는 팔보다는 다리 힘이 세기 때문이다. 다리를 써야 하는 이유는 지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팔을 펴고 무게중심을 아래에 둔 채 벽에 붙는 자세는 땅에 붙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벽에 가장 오래 붙을 수 있는 자세이다. 클라이밍은 비싼 취미다. 일일체험 2만 원도, 십만 원 단위 자유이용권도 싼 가격이 아니다. 


강습 때마다 팔에 힘을 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에 익숙해지기 위해 지구력 벽에서 자주 연습했다. 지금도 완전히 팔에 힘을 빼지는 못한다. 익숙한 지구력 루트에서는 자세가 잡히지만 볼더링 문제는 팔 힘으로 올라가기 일쑤다. 그래도 요새는 시작 자세나마 의식적으로 팔에 힘을 놓고 자세를 낮춘다. 


2. 기본은 발 바꾸기와 손바꾸기

새내기 수업 초반에 발 바꾸기와 손바꾸기를 배웠다. 발 바꾸기는 한쪽 발이 밟던 홀드를 다른 쪽 발이 밟도록 발을 바꿔치는 기술이고, 손바꾸기도 홀드를 잡은 손을 바꾸는 일이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추락하지 않고 발을 잘 바꾸기 위해서는 바꿀 발을 홀드가 아니라 홀드 바로 위 벽에 놓고 미끄러지듯 내려와야 한다. 팔에 힘이 좋은 나는 홀드를 잡은 채 벽에 발을 부딪히며 발을 바꾸었다가 지적을 자주 받았다. 


볼더링 문제에서는 손 홀드가 좋지 않아 불안정한 자세에서 발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발을 바꾸지 않아도 가능한 문제들이 많지만, 발을 바꾸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다. 연습을 많이 하니 지금은 작은 홀드에서도 그럭저럭 발을 바꿀 수 있다.


손바꾸기는 조금 다르다. 동작에 익숙해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루트 파인딩 할 때나 등반 중 손바꾸기를 예상하고 미리 손바꾸기가 잘 될 자세로 홀드를 잡아야 한다. 볼더링 문제 중 손을 바꾸는 상황은 합손을 하기에 작은 홀드를 붙잡고 온 무게를 쥔 손을 떼는 순간이다. 팔힘이 엄청나게 좋은 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홀드를 중앙보다는 위나 아래로 잡아 반대편 손이 들어갈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3. 잘 모르는 기술을 함부로 구사하지 않는다.

클라이밍은 내가 하는 시간만큼 남들 보는 시간도 많다. 모르는 기술도 자꾸 눈에 들어오면 어설프게나마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대로 배우지 않은 기술을 함부로 구사해서는 안 된다.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이상 그 기술을 언제 '쓰면 안 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옴폭한 홀드에 힐훅을 하다가 선생님께 혼이 났다. 인사이드(개구리 자세로 다리를 벌려서 홀드를 밟는, 기본적인 다리 이동 자세)로 가능한 거리에 왜 힐훅을 쓰냐는 것이었다. 힐훅을 했다가 홀드에 발이 걸린 채로 손을 놓으면 머리부터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위험한 자세였다는 건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그때까지 아무도 나에게 힐훅을 쓰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들었다면 힐훅 배우는 첫 시간에나 들었을 이야기였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아직 기술을 쓰면 안 되는 순간을 모른다. 그러면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기술을 쓰면 안 된다.  


클라이밍에는 멋진 동작이 많다. 한 번에 뛰어 홀드를 잡는 다이노와, 홀드를 징검다리처럼 딛고 올라가는 코디 같은 것들이 그렇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매번 구경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번쩍 뛰어보고도 싶다. 토훅이나 힐훅도 그랬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던 문제를 남들이 발을 걸어서 푸는 것을 보면 따라 하고 싶었다. 위험하던 참에 말로 사고를 막았다.




여기에 아무리 멋진 착지 동작보다 다운클라이밍이 낫다는 것, 무엇보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도 추가하고 싶다. 오늘 못 푼 문제가 내일 사라질 수도 있지만, 풀 수 있는 문제는 무한히 많으니 여유를 가져야 한다. 문제 하나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 다치지만 않으면 운동할 시간은 많다. 부상 한번에 운동할 수 있는 날이 달 단위로 줄어들고, 심하면 통째로 사라진다. '운동할 수 있는 날'은 비유로 쓰이는 목숨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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