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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Dec 03. 2021

1.7. 바이오산업을 책임지는 CHO 세포

주사 한 방에 햄스터 기운이 솟아나요

작성 12/3, 1차 수정 12/14


몸을 벗어난 생명의 쓸모는 유용한 물질을 만드는 것, 실험실에서 가능한 일을 공장 규모로 키우지 못할 것도 없다. 세포를 단백질 생산 공장으로 쓰는 아이디어는 바이오 제약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새로이 개발된 바이오 의약품은 수천만 환자의 고통을 덜었다.


바이오 의약품을 맞는 환자나 바이오 업계에 투자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바이오 의약품이 무엇인지 알겠지만, 이들이라도 업계가 어떤 생명으로 유지되는지까지는 모를 것이다. 오늘날 바이오 제약은 햄스터 세포로 돌아간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돌아가는 햄스터 세포 배양액의 부피는 두 회사가 있는 인천 송도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합친 부피보다 많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사 생산 규모는 각각 19만 리터, 36만 4천 리터이다. 반려 동물 한 마리 무게를 5 킬로그램이라고 하고, 물의 밀도를 기준으로 부피를 구해 나누면 11만 마리라는 수가 나온다. 공장 배양기에 반려 동물 11만 마리를 넣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2020년 기준 송도 인구는 약 18만 명이니, 1인 1반려동물을 하지 않는 이상 두 회사가 키우는 세포 배양액이 반려동물의 총 부피보다는 크다. 오해는 금물이다. 송도 지하에 거대한 햄스터 농장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이오 회사가 키우는 생명은 배양액 속에서 찰랑대는 CHO 세포이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각 회사 생산 규모. 배양기에 CHO 세포만 돌아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CHO (Chinese Hamster Ovary) 세포는 중국 햄스터의 난소에서 추출한 세포주이다. ‘초셀’ 또는 ‘초 세포’라고 읽는다. CHO 세포는 몸을 벗어난 생명 중 산업계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세포이다. 대장균을 더해서 계산해도 CHO 세포 비중이 제일 높다.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세포 유래 바이오 의약품 중 70%가 CHO 세포에서 나온다. 2020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약인 류머티즘 치료제 휴미라 , 2021년 셀트리온이 개발한 코로나 치료제 렉키로나까지 모두 CHO 세포로 생산한다.


코로나 항체 치료제, 성장호르몬, 혈액 응고 저해제 등 모든 바이오의약품은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화학적으로 만들기는 너무 복잡하지만, 세포에 단백질의 유전 정보를 주입하면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장 세포가 장에 필요한 소화 효소를 만들고, 모낭 속 멜라닌 세포가 머리카락을 검게 하는 멜라닌을 만들듯, 몸을 벗어난 세포도 유전 정보만 있으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세포는 분열한다. 세포 하나가 단백질 한 덩이를 만든다면, 분열해서 열 개가 된 세포는 단백질 열 덩이를 내놓을 것이다. 송도의 두 회사가 동네 반려동물의 부피만큼 커다란 CHO 세포 공장을 세운 것도 이해할 법하다.


최초의 바이오 의약품은 1979년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 제넨텍이 만든 인슐린이다. 인슐린은 혈액의 포도당 농도를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인슐린을 만들지 못하거나 인슐린이 있어도 제 기능을 못하면 당뇨에 걸린다. 단백질 호르몬인 인슐린은 화학적으로는 합성할 수 없다. 공장 생산이 불가능하니 예전에는 돼지가 만드는 인슐린을 추출해서 약으로 만들었다. 몸을 벗어난 세포에 유전 정보를 주입해 생산한 단백질을 ‘재조합 단백질’이라고 하는데, 제넨텍에서 재조합 인슐린을 만든 후에야 당뇨 환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인슐린을 맞게 되었다.

최초의 바이오 의약품이 출시된지도 40년이 지났다. 글로벌 바이오제약 산업은 2020년 기준 3250억 달러(한화 400조 원)에 이를 만큼 커졌다. 세계인이 한 개씩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시장 규모가 3783억 달러(한화 450조 원)이니, 바이오제약 시장이 얼마나 거대한지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의 바이오 제약 산업도 커지고 있다. 코스닥과 코스피를 나란히 이끄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 제약 기업이다.

바이오 제약은 스마트폰 시장만큼 크지만, 일상에서 바이오 의약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약이지만 약국에 가도 보이지 않는다. 바이오 의약품이 주로 위중한 병에 처방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보이는 의약품 대부분은 합성의약품이다. 구조가 단순해 화학 공정으로 생산할 수 있다. 바이오 의약품은 합성의약품에 비해 공정이 복잡하고 생산 비용도 많이 든다. 수지타산이 맞으려면 화학 공정으로는 못 만드는 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바이오 의약품이 암세포만 골라내서 공격한다는 ‘표적 항암제’, 이유 없이 몸이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치료제’ 등이다. 환자가 아닌 이상 이름도 듣기 힘든 약물들이다.


CHO 세포가 바이오산업을 이끌게 된 역사는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중반 중국 햄스터는 연구용으로 전망이 좋았다. 한 가지 이유는 세포의 염색체 수가 적은 점이었다. 사람 염색체가 23쌍, 생쥐 염색체는 20쌍인 반면 중국 햄스터의 염색체 수는 11쌍으로 다른 동물의 절반이다. 현미경을 보며 눈으로 염색체를 좇던 시대에 염색체 수가 적은 중국 햄스터는 세포 연구의 구세주가 될 것이었다. 40년대 후반, 중국 햄스터는 중공군의 눈을 피해 중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왔다. 이후 햄스터는 여러 연구실로 퍼지며 새로운 실험 모델이 되었다.


1957년, 헬라 세포를 연구하던 유전학자 테오도르 퍽은 암컷 중국 햄스터 한 마리를 얻었다. 퍽은 햄스터 난소의 세포를 추출해 CHO 세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CHO 세포는 헬라 세포보다 빠르게 분열했고, 암세포도 아니면서 끝없이 배양할 수 있었다. 퍽은 CHO 세포에 '포유류 판 대장균'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전 세계 과학자에게 나눠주었다. 이후 퍽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이 CHO 세포를 개량해 새로운 세포주를 만들었다.

 


CHO 세포의 모체인 중국 햄스터 (Cricetulus griseus)와 부유 세포로 배양된 CHO 세포 (세포 사진 위키피디아)


실험실의 CHO 세포는 30년 만에 단백질을 생산 전문 공장이 되어 바이오산업에서 쓰이고 있다. CHO 세포로 생산한 최초의 바이오 의약품은 1987년 미 식품의약국이 승인한 제넨텍의 ‘액티바제’이다. 혈액에 뭉친 혈전을 녹이는 단백질로, 급성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약이다. 이후 40년 동안 CHO 세포를 이용한 단백질 의약품은 50여 종류나 출시되었다. CHO 세포 생산 공정도 유전자에서 배양기까지 전 단계에서 고도로 최적화되었다. 오늘날 CHO 세포는 리터당 10g의 단백질 의약품을 생산한다. 1987년 당시 생산량이 리터당 50mg이었으니 2021년 기준, 35년 만에 200배나 증가한 것이다.


혈전 용해제 액티바제 © 2021 Genentech


CHO 세포가 아무리 최적화되었더라도 연구자의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바이오 의약품마다 단백질의 구조가 달라, 새로운 유전자를 넣을 때마다 최적화 작업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최적의 세포를 만드는 작업은 유전자 서열을 가다듬는 데서 시작해 생산 공정에 제일 적합한 세포주를 선별하는 일로 이어진다. 다음에는 작은 배양기에서 시작해 규모를 키우며 최적의 배양 조건을 찾는다. 모든 단계에 연구자의 노동이 들어간다.


다행인 점은 CHO 세포 배양이 다른 어떤 세포보다 편하다는 것이다. 이전 장에서 HEK293 세포가 연구자 걱정 안 끼친다고 했지만, 부유 세포 CHO 세포에 견줄 것은 안 된다. 세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나흘에 한 번씩 배양 접시를 옮겨주는 ‘계대 배양’을 해야 한다. 물고기를 새 어항으로 옮기거나 화분의 분갈이를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HEK293을 비롯한 실험실 세포 대부분은 배양 접시 바닥에 발을 내리고 자라는 부착 세포이다. 부착 세포 계대 배양은 ‘연구자의 손을 많이 탄다’. 손재주에 따라 세포가 무탈히 잘 붙을 수도, 배양 다음날 둥둥 뜬 채 죽어 있을 수도 있다. 부착 세포를 계대 배양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포를 바닥에서 떼어내야 한다. 분갈이를 하는 데 흙에 파고든 뿌리를 일일이 분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구자는 손으로 뿌리에 달라붙은 흙을 터는 대신 효소를 이용해 세포 사이를 찢는다. 효소는 바닥과 세포, 세포와 세포를 분리하지만, 세포 자체를 찢어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세포를 새 접시에 옮기는 일도 식물을 새 흙에 심는 것과 비슷하다. 세포가 바닥에 골고루 붙을 수 있도록 펴 주어야 한다.


공정에 쓰이는 CHO 세포는 부유 세포이다. 비유하자면 물에 떠 자라는 개구리밥 같다. 어릴 적 이웃집에서 키우던 물상추가 예뻐 분양을 받아온 적 있었다. 물상추 한 포기를 컵에 옮겨다가 우리 집 어항에 띄웠고 아주 잘 자랐다. 부유 세포 계대 배양도 비슷하다. 세포가 들어있는 배양액 한 방울을 새로운 배지를 넣은 접시에 떨어뜨리면 끝이다.


계대 배양은 식물 분갈이와 비슷하다. 부유 세포가 부착 세포보다 계대 배양하기 훨씬 쉽다.


세포 공정 개발의 고통은 실험의 양에서 나온다. 첫 단계에서 결정한 CHO 세포가 이후 모든 공정을 책임진다. 최적의 CHO 세포를 찾기 위해서는 후보의 수를 늘려야 한다. 수백 개의 플라스크를 배양하며 가장 좋은 세포를 골라내는 작업이다. 세포에 형질 주입을 하고 하나하나 분리한 후 수십, 수백여 개의 후보 세포주를 만들고, 세포주 후보를 키우며 단백질 생산 경주를 시켜야 한다. 배양 중 오염이라도 일어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먼지 가득한 대학원 실험실보다 세계 허가 당국의 감사를 받으며 실험실을 운영하는 제약 회사에서 오염이 더 잘 일어난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단백질 의약품을 생산하는 세포주는 항생제를 넣어서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세포주 하나를 고르기 위해 손목이 부러질 만큼 실험을 한다. 과장이 아니다. 과도한 실험으로 일어나는 관절 부상은 이 분야에서 자주 일어나는 산업 재해이다.


단백질 의약품 생산 공정 개발 과정. 자세한 과정은 아래 토막글을 참고하라

바이오산업에는 CHO 세포만큼은 아니어도 다양한 세포주가 쓰이고 있다. 특히 사람 세포로 만든 의약품은 햄스터 세포를 쓸 때보다 면역 반응이 덜 일어난다. ‘실험실의 세포 공장’인 HEK293 세포도 귀중한 생산 재료이다. HEK293 세포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처럼 바이러스형 백신을 만들거나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혈액 응고 인자를 생산한다. 다만 아직까지는 60년 동안 이루어진 CHO 세포의 최적화 수준을 따라잡은 세포주가 없다. 2021년 기준, 시장에 나오거나 승인을 기다리는 인간 유래 세포 의약품은 열 개가 되지 않는다.


의약품 허가 기관의 승인 요건은 매우 엄격하다. 사람 유래 세포주는 헬라 세포처럼 암세포 유래 세포주가 많다. 허가 당국은 암세포가 행여라도 암을 일으킬까 우려해 암세포에서 유래한 세포주로 만든 바이오 의약품을 잘 승인하지 않는다. 윤리적인 문제도 고민거리다. HEK293도 CHO 세포처럼 오랫동안 연구되고 최적화된 세포주이지만, HEK293으로 약품을 만들었다가는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 때처럼 낙태아 세포로 만든 치료제를 쓰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제약 회사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안정성이 확인된 CHO 세포를 선택하는 편이 제일 안전하다.


사람 세포가 만드는 단백질이야말로 사람과 제일 가까운 것은 사실이니, 언젠가는 사람 세포가 CHO 세포를 추월해 전 세계 바이오 제약 생산을 도맡을지도 모르겠다.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면역 반응 없고 윤리적으로도 깨끗한 ‘맞춤형 의약품 생산 세포’나 약물조차 필요 없는 ‘치료용 면역 세포’가 나올 수도 있다. 아직은 먼 이야기이다. CHO 세포의 최적화 수준을 따라잡고, 허가 기관과 의료계에 인정받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햄스터 세포는 쳇바퀴 대신 바이오 배양기를 빙글빙글 돌며 전 세계 환자에게 필요한 단백질 의약품을 만들 것이다.



본문은 여기까지. 아래 글은 바이오산업의 역사를 함께한 CHO 세포의 공정 발전을 다룬다. 생명공학이 어떻게 발달했는지 궁금하면 읽어보라.



<CHO 세포가 바이오산업에 쓰이기까지>



CHO 세포가 처음부터 바이오산업의 주재료가 된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바이오 의약품인 인슐린은 대장균에서 유래했다. 이후로도 미생물 유래 바이오 의약품은 꾸준히 만들어졌다. 하지만 미생물로는 복잡한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단백질을 만드는 데 성공하더라도 인체에 투여하면 면역 반응이 나타나 약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연구자들은 면역 반응이 적은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대장균보다 사람에 가까운 세포를 찾아다녔다. 대장균과 CHO 세포 사이에는 효모나 곤충 세포도 있었다.


미생물에 비해 복잡한 포유류 세포로는 원하는 단백질을 생산하기 어려웠다. CHO 세포가 아무리 ‘포유류 판 대장균’이라고 하더라도 진짜 대장균과는 비교가 안 된다. 20분에 한 번 분열하는 대장균에 비해 CHO 세포의 분열 주기는 하루에서 한 나절 사이다. 세포의 구조가 복잡해지니 세포 안에 유전자를 주입하고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연구자들은 ‘필요한 유전자’가 들어간 대장균을 선별하기 위해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이용했다. 대장균에 항생제 내성 유전자와 ‘필요한 유전자’를 한꺼번에 넣는다. 대장균을 키우는 배지에 항생제를 넣으면 내성 유전자가 들어있는 대장균만 생존한다. 생존한 대장균은 ‘필요한 유전자’를 복제한다. 반면 포유류 세포에서는 유전자가 잘 들어갔는지 확인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이용해 대장균을 선별하는 방법


과학은 이전 연구를 발판으로 발전한다. 포유류 세포의 선별 시스템은 대장균 선별 방법과 비슷한 원리로 개발되었다. 몸 바깥에 항생제가 듣지 않는 미생물이 말썽이라면, 몸 안에 생겨난 암은 기어코 항암제를 이겨내고 퍼지기도 한다. 1976년, 스탠퍼드의 과학자 로버트 슈미케는 암세포에서 항암제 내성이 생기는 원리를 연구했다. 슈미케가 연구하던 항암제는 DNA 조각을 만드는 효소를 막아 세포를 죽이는 약으로, 항암제라고 해도 보통 세포와 암세포를 가리지 않는 독이었다. 이런 항암제에도 살아남는 암세포가 있었다. 암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해보니, 항암제가 막던 효소의 유전자가 수백에서 수천 배 늘어나 있었다. 암세포는 ‘항암제 내성 유전자’를 만드는 대신, 항암제가 막는 효소의 유전자를 잔뜩 늘려서 항암제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은 것이었다.


항암제 내성 세포에서 유전자 증폭이 일어나는 원리


1980년 콜롬비아 대학교의 분자생물학자 리처드 악셀은 CHO 세포에서 DNA 조각을 만드는 효소 유전자를 망가뜨린 새로운 CHO 세포를 만들었다.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이 망가졌으니 살아남지 못할 것 같지만, 이런 세포도 배지에 DNA의 재료를 함께 넣고 키우면 잘 자란다. 새로운 CHO 세포를 단백질 공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유전자와 효소 유전자를 한꺼번에 주입해야 한다. 이후 배지에서 DNA 조각을 빼면 유전자가 들어간 CHO 세포만 살아남는다. 여기에 항암제를 조금씩 넣으며 유전자 증폭을 유도한다. 대부분의 CHO 세포는 죽지만, 소수의 CHO 세포에서 유전자 증폭이 일어난다. 필요한 유전자도 함께 불어나 단백질 생산량도 열 배에서 스무 배까지 증가한다.


바이오 의약품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비결은 부착 세포를 부유 세포로 전환한 것이다. 흙 속에서 자라던 고구마를 수경 재배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혈액 세포를 제외하고 몸을 이루는 세포는 대부분 덩어리로 붙어 자라는 부착 세포이다. 난소 조직이었던 CHO 세포도 원래는 부착 세포이다. 가만히 두면 배양 접시 바닥에서 붙어 자란다.


실험실에서 키우던 세포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 수준의 ‘스케일 업’을 해야 한다. 스케일 업은 단순히 크기를 늘리는 작업이 아니다. 라면 1인분 만들기는 쉽지만 10인분 라면을 끓일 때는 물이나 스프의 양이며 끓이는 시간까지 새로 맞추어야 한다. 부착 세포 스케일 업은 특히 어려웠다. 초창기 CHO 세포는 원통형 병의 벽면에 붙이고 눕혀서 배양했다. 병이 빙글빙글 돌아가면 세포가 배지에 적셔지고, 가끔씩 공기에 접촉해 산소를 얻는 방식이다. 실험실 단백질은 이 정도 설비로도 만들 수 있지만 산업적으로 규모를 키울 수는 없는 구조였다. 2차원으로 자라는 세포의 수를 늘리는 방법은 표면적을 넓히는 것뿐이지만, 배양 환경을 유지하며 면적을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CHO 세포를 부유 세포로 바꾸는 데 성공한 기업은 최초로 바이오 의약품을 출시했던 제넨텍이다. 접시 바닥이나 벽면에서 자라던 세포를 액체 배지 속에 띄워 키우게 되었다. 2차원으로 자라던 세포가 3차원에서 자라니 같은 부피에서 훨씬 더 많은 세포를 키울 수 있었다. 부유하는 CHO 세포로는 ‘공정 스케일 업’도 가능해졌다. 2L짜리 롤러 병에 붙어 자라던 CHO 세포는 이제 20000리터 규모의 배양기에서도 살 수 있다. 바이오 의약품 ‘공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부착 세포를 부유 세포로 만들자 세포 배양 방법도 변했다. 이제는 2L 남짓한 롤러 병 대신 버스 크기의 20000L 배양기에서 세포를 키운다.



통계 출처: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 https://www.mordorintelligence.com/industry-reports/global-biopharmaceuticals-market-industry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https://www.marketdataforecast.com/market-reports/smartphone-market

  의약품 판매량 통계: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258022/top-10-pharmaceutical-products-by-global-sales-2011/

동물 한 마리의 무게가 아니라 세포 수로 계산하면 턱없이 작아진다. 리터당 100만 개의 세포를 배양한다고 할 때 송도 공장 햄스터 세포 수는 반려 동물 1800마리의 세포 수와 같다. 세포 배양액과 몸의 밀도 차이 때문이다. 배양액은 몸보다 밀도가 훨씬 낮다. 배양용 세포 수를 아무리 늘려도 배지가 조금 탁해질 뿐이다. 고양이가 아무리 액체처럼 움직여도 진짜 액체보다는 밀도가 높다.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포는 주변 세포들과 전체 밀도에 영향을 받는다. 어떤 세포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지면 단백질을 만드는 대신 죽는 편을 택할 것이다.

  이하 CHO 세포의 유래와 기술 발전 역사에 대한 내용은 미국 과학사 연구소에서 2015년 겨울자로 발간한 LSF Magazine 중 <A brief history of cho cells>를 참고했다.
(http://biomanufacturing.org/uploads/files/547998065159985597-cho-history.pdf)

 Donaldson, J. S., Dale, M. P., & Rosser, S. J. (2021). Decoupling Growth and Protein Production in CHO Cells: A Targeted Approach. Frontiers in Bioengineering and Biotechnology, 9, 349.

Wurm, F. M. (2004). Production of recombinant protein therapeutics in cultivated mammalian cells. Nature biotechnology, 22(11), 1393-1398.

https://www.activase.com/ais/dosing-and-administration/reconstituting.html

Matasci, M., Hacker, D. L., Baldi, L., & Wurm, F. M. (2008). Recombinant therapeutic protein production in cultivated mammalian cells: current status and future prospects. Drug Discovery Today: Technologies, 5(2-3), e37-e42.

Dumont, J., Euwart, D., Mei, B., Estes, S., & Kshirsagar, R. (2016). Human cell lines for biopharmaceutical manufacturing: history, status, and future perspectives. Critical reviews in biotechnology, 36(6), 1110-1122.

DNA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담고 있지만, 단백질은 아미노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백질은 당 사슬이 붙는 당화 과정 (glycosylation)을 거쳐야 비로소 완전해진다. 당화 과정은 대장균 같은 원핵세포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며, 진핵 세포라도 종에 따라 당화 과정에 들어가는 당 종류가 달라진다. 사람 세포에서 만드는 단백질이 사람에 가장 가깝고, 사람과 가까운 생명일수록 사람에 가까운 단백질을 만드는 이유이다.

생명공학은 DNA 전달체(vector)에 ‘필요한 유전자(Gene of interest, GOI)’만 바꿔 끼워 세포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표준화되었다. 전달체 DNA를 끊은 후 필요한 유전자를 넣고 이어 붙이면 된다. 대장균을 이용해 DNA를 늘리는 과정을 클로닝 (cloning)이라고 하고, 필요한 유전자를 바꿔 끼워 늘리는 과정을 서브클로닝 (subcloning)이라고 한다. DNA 전달체가 표준화된 현재는 클로닝이라고 하면 보통 서브클로닝을 의미한다.

항암제 메소트렉세이트(methotrexate, MTX)는 이수소 엽산 환원 효소 (dihydrofolate reductase, DHFR) 저해제이다. DHFR 은 DNA 중 T 염기(thymidine)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 비슷한 방식으로 글루타민 합성 효소 (glutamine synthetase)와 저해제 MSX (methionine sulfoximine)을 이용한 세포주도 개발되었다.

사진 출처:
 배양기: https://www.gea.com/en/products/distillation-fermentation/biopharma-process-vessels/biopharma-storage-transporation-vessels.jsp
롤러 병: Clapp, K. P., Castan, A., & Lindskog, E. K. (2018). Upstream processing equipment. In Biopharmaceutical Processing (pp. 457-476). Elsevier.
출처를 표시하지 않은 이미지는 직접 제작하거나 Pixabay나 Adobe stock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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