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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Jun 22. 2022

1.4. 생명을 몸에서 꺼내는 방법

일차 배양(primary culture)의 역사와 과정

어릴 적 우리 집 책장에는 출처 불명의 공포 소설이 한 권 있었다. 아마도 해외 고전 소설의 해적판이었을 것이다. 줄거리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선반 위 어지럽게 놓인 유리병 사이로 누군가의 머리가 놓인 장면만 생각이 난다. 목이 잘린 머리에는 유리병에 연결된 호스가 꽂혀 있다. 성대가 동강 난 바람에 말을 해도 쉰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도 호러를 싫어하는 데도 이 책만큼은 특유의 괴기함에 빠져 여러 번 읽었던 것 같다.


소설 속 머리야말로 ‘몸을 벗어난 생명’이었다. 그는 비록 몸은 잃었지만 유리병에서 영양분을 공급받고 다른 병에 노폐물을 배출하며 생명 활동을 이어나갔다.


현대 생명과학은 몸을 벗어난 머리와 대화를 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도 생명을 세포 단위로 몸에서 꺼내고 관찰하는 일은 많이 해 왔다. 살아있는 몸에서 세포를 추출해 실험실에서 배양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과정을 ‘일차 세포 배양(일차 배양 또는 초대 배양, primary cell culture)’이라 한다. 그렇게 얻은 세포는 일차 세포(primary cell)라고 한다. 일차 배양은 생쥐 같은 실험동물은 물론 시신 기증자, 도축장에서 얻는 가축의 특수 부위까지 온갖 생명에서 가능하다.




세포 배양의 역사는 한 세기를 조금 넘는다. 최초로 일차 배양이 성공한 시기는 19세기 말이었다. 분자생물학에 역사에 등장하기 반 세기 전이자 진화론과 유전학이 태동하던 때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사회에 논란을 일으키며 개정을 거듭했고, 1865년 발견한 멘델의 유전 법칙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로 논문 더미에 묻혀 있었다.


이 시절 실험생물학자들은 생명이 태어나는 원리를 찾기 위해 개구리 알과 달걀을 보고 있었다. 알에서 태어나는 동물들은 어미의 배에서 자라는 동물보다 관찰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한다’는 말로 유명한 에른스트 헤켈도 이 시절 사람이다. 헤켈이 우생학자였고 반복 발생설도 배아 그림을 그럴싸하게 조작해서 만든 이론이었지만, 헤켈의 연구와 정교한 그림으로 생물학이 한 단계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헤켈의 반복 발생설. 왼쪽부터 물고기, 도롱뇽, 거북이, 병아리, 돼지, 소, 토끼, 사람의 배아를 관찰해서 그렸다. 실제 배아의 발생은 헤켈의 그림만큼 서로 닮지 않았다고 한다.


헤켈에게는 빌헬름 루라는 제자가 있었다. 1885년 루는 유정란의 신경판 조직을 생리식염수에 넣고 관찰해 보았다. 신경판 세포는 식염수 속에서도 13일 간 살아있었다. 루가 세포 배양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로 여러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개구리와 닭의 세포를 배양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세포 배양 기술은 포유동물의 세포와 인간 세포로 확장되었다.


일차 배양은 분자생물학부터 생리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분야에 기여했다. 21세기인 지금도 과학자들은 생명 현상이 궁금할 때 일차 배양을 통해 몸에서 생명을 꺼내어 확인한다. 한 가지 예시로, 일차 배양은 최신 오믹스 분석 기술과 결합해 개개인의 맞춤 연구에 쓰이고 있다. 인간의 유전 정보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같은 인간 안에서도 세포마다 필요한 단백질이 다르고, 세포의 유전 정보에도 오차가 있다. 일차 배양 기술로 환자나 기증자의 세포를 추출해 세포의 유전체와 단백질의 미묘한 차이를 분석할 수 있다. 찾아낸 정보를 토대로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환자에게 제일 알맞은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유전체 분석 기업 일루미나가 네이처에 올린 광고 중 일부. 오늘날은 유전체 분석 기술로 환자의 미묘한 차이까지 분석할 수 있으며, 그 기반에는 일차 배양 기술이 있다.





생물학과 학생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학문의 벽’은 분자생물학이겠지만, 이들이 만날 ‘마음의 벽’은 단연 일차 배양 실험이다. 실험에 필요한 세포의 종류에 따라 일차 배양 방법은 다르다. 그러나 환자나 죽은 동물의 조직을 어딘가에서 받아 오지 않는 이상, 생명을 죽이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연구를 위해 스스로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자기가 매드 사이언티스트일 줄 알았던 학생에게조차 어려운 일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읽는 것도 힘들 내용이다. 아래 세 문단을 넘기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도 좋다.


처음 해본 일차 배양은 실습수업에서 쥐의 면역 세포를 추출한 일이었다. 실험용 동물을 경추 탈골한 후, 대퇴골에서 골수를 채취해야 했다. 경추 탈골은 생쥐의 머리를 왼손으로 누른 채 오른손으로 꼬리를 잡아당겨 두개골과 목뼈의 연결을 끊는 것이다. 뇌와 척수 사이를 끊어 빠르고 고통 없이 생쥐를 희생하는 방법이다. 다음 단계로는 생쥐의 대퇴골, 넓적다리 뼈를 발라냈다. 넓적다리 뼈를 쓰는 이유는 생쥐의 몸에서 그나마 가장 큰 뼈이기 때문이다. 뼈를 발라낸 후에는 뼈 한가운데에 얇은 주삿바늘을 넣어 골수를 추출했다.


대학원에서는 일차 배양한 생쥐 신경 세포에서 유전자 발현을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나뿐만 아니라 연구실 모두가 매주 일차 배양 세포를 사용했다. 일차 배양만 전문으로 하는 연구원이 매주 세포를 준비해 주셨다. 그분은 일차 배양할 때마다 매번 힘들어했다. 신경 세포 일차 배양의 첫 단계는 새끼를 밴 어미 쥐의 배를 가르는 일이었다. 신경 세포를 얻는 데는 태어나지 않은 새끼 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경세포를 일차 배양하기 위해서는 신경세포 이전 상태인 신경 줄기세포나 신경 전구체 세포를 거두어야 한다. 뇌가 발달한 후에는 신경 세포의 가지가 길어지고 가지끼리 서로 얽혀서 세포를 온전히 분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지가 덜 자란 신경 줄기 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발생이 덜 이루어진 태아 상태의 뇌가 필요하다. 쥐의 임신 주수는 약 3주이다. 그 사이에 뇌의 발생 시점을 계산해서 뇌를 추출한다. 갓 태어난 생쥐가 새끼손가락만 하니까 태아 상태 쥐는 그보다도 작다. 태아 쥐에서 꺼낸 아주 작은 뇌를 현미경으로 들추며 필요한 부분을 절개해야 한다.





잔인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생명이 조직 단위로 작아지면 몸은 희미해지고 연구 대상만 남는다. 조직을 추출한 후에는 필요한 세포를 얻는 단계이다. 보통은 단백질 분해 효소를 이용한다. 파인애플이나 키위즙에 고기를 재워 연하게 만드는 것과 원리가 같다. 실험실에서는 효소의 농도를 낮춰서 사용한다. 세포는 온전히 두면서 세포 사이의 연결만 끊어 조직을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조직이 풀어지면 ‘파이펫’이라는 실험실 국자로 저어서 세포를 흩트린다. 덩어리였던 조직이 세포 하나하나로 흩어지면 현미경으로 세포의 수를 세어 배양 접시에 필요한 만큼 옮긴다.


실험실에서 쓰이는 다양한 파이펫. 모든 파이펫의 목적은 국자보다 정확하게 액체를 옮기는 것이다


세포를 거르는 데 원심분리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세포가 든 액체를 기다란 튜브에 담은 후, 원심분리기에 튜브를 넣고 ‘돌리는’ 것이다. 원심분리기는 원심력을 이용해 혼합물을 분리하는 기기이다. 일상생활에서 원심분리기와 제일 비슷한 것은 놀이터의 회전 놀이 기구이다. 쌩쌩 돌아가는 놀이기구에 있으면 몸이 바깥쪽으로 몰리는 기분이 든다. 우주인이나 전투기 조종사의 훈련에도 회전 놀이 기구보다 훨씬 강한 원심분리기가 쓰인다. 조종사를 원심분리기에 앉히고 돌려서 비행기가 급하게 움직일 때 하체에 피가 몰리는 상황을 재현한다. 사람 몸의 혈액도 원심력으로 이동시킬 수 있으니, 원심분리기를 섬세하게 쓰면 세포와 세포 외 물질이 섞인 액체를 층층이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액체에 층이 나누어진 후에는 파이펫 국자로 세포가 들어있는 층만 옮길 수 있다.


NASA의 조종사 훈련용 원심분리기와 실험실 원심분리기. 위키피디아 이미지


세포가 배양 접시나 플레이트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면 마침내 몸을 벗어난 것이다. 이제 실험실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일만 남았다. 세포 배양, 첫 장에서 말한 강아지 키우는 일의 시작이다.


세포와 강아지의 다른 점은 불어나는 속도이다. 세포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하루에 한 번은 세포 하나가 둘로 분열한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세포가 불어나면 배양 접시 바닥이 세포로 가득 차 배양 환경이 급격히 나빠진다. 접시가 세포로 미어터지기 전에 일부만 떼어 새로운 접시로 분갈이하는 것을 ‘계대 배양(subculture)’라고 한다. 계대 배양으로 세포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새로운 동물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연구자는 실험실에서 몸을 벗어난 세포를 관찰하며 궁금했던 생명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및 각주

어릴 적 읽은 소설의 제목이 너무 궁금하다. 누구든지 제목을 알면 알려달라

일차 배양 실험은 다양하지만 직접 일차 배양 실험을 한 경험은 적었다. 한국생물학정보센터(BRIC)에서 사람들이 나눈 일차 배양 노하우를 참고했다.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id=568069&Board=exp_qna)

Verma, A., Verma, M., & Singh, A. (2020). Animal tissue culture principles and applications. Animal Biotechnology, 269–293. https://doi.org/10.1016/B978-0-12-811710-1.00012-4

Magdalena Jedrzejczak-Silicka (2017). History of Cell Culture. In  (Ed.), New Insights into Cell Culture Technology. IntechOpen. https://doi.org/10.5772/66905

광고를 옮기고 싶지 않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이미지를 찾지 못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d42473-019-00403-1

Brewer, G., Torricelli, J (2007). Isolation and culture of adult neurons and neurospheres. Nat Protoc 2, 1490–1498. https://doi.org/10.1038/nprot.2007.207

Park, S., Mali, N.M., Kim, R. et al (2021). Clonal dynamics in early human embryogenesis inferred from somatic mutation. Nature 597, 393–397. https://doi.org/10.1038/s41586-021-03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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