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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Jun 12. 2022

1.5. 헬라세포(HeLa cell)의 영생 비결

불멸화 세포주 개발과 HeLa cell 70년의 역사

'패러다임'이란 과학 공동체가 공유하는 인식 체계를 의미한다. 생명과학 공동체에는 '생명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몸에서 세포를 꺼내어 본다'는 패러다임이 있다. 용어는 어렵지만 요즘 세상 유튜브나 카카오톡 같은 '플랫폼'과 비슷한 말이다. 모두가 유튜브를 보는 세상이다. 유튜브에는 좋아요와 구독 수가 인기의 척도인 것 같은, 유튜브에서 통하는 문법이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함께 유튜브를 보고, 무언가 알리고 싶다면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야 한다. 


바야흐로 유튜브 시대이다. 그런데 나는 왜 글을 쓰고 있을까?


생명과학에서 세포 실험이 차지하는 위상이 유튜브와 비슷하다. 과학자들은 수백수천 종류의 세포를 수만 번 배양하며 배양법을 체계화했다. '생명체의 A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세포에 A' 실험을 한다' 같은 문제 풀이 방법이 정해져 있다. 생물학 교과서에 적힌 지식, 생물학자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식들도 수많은 세포 실험 결과를 토대로 단단하게 축적된 것이다.


'1+1=2'가 확실하면 '100+100=200'도 할 수 있다. 세포 배양이 정착한 이후, 포유류 세포는 실험실을 넘어 공장에서 배양되기 시작한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배양되는 세포는 연매출 1조 원을 거뜬히 넘기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생산한다.  




과거에는 세포 실험을 할 때마다 ‘일차 배양(primary culture)’을 했다. 일차 배양은 몸에서 세포를 떼어내 실험실에서 잠깐 배양하는 방법이다. 도축장이 열릴 때, 또는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 달려가 조직을 받아와야 한다. 실험동물을 희생해 필요한 조직만 채취하고 나머지는 폐기하기도 한다. 잔인하고 효율이 낮은 방법이다. 실험을 할 때마다 재료 준비부터 시작하다 보면 열정적인 과학자라도 지치기 마련이다. 


일차 배양 세포는 왜 오래 살지 못할까? 세포는 ‘호르몬’이나 ‘사이토카인’ 같은 화학 물질로 소통한다.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도 핸드폰을 열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찾듯, 세포도 바로 옆 세포가 분비한 단백질부터 뇌로부터 혈액을 타고 온 호르몬까지 몸의 온갖 곳에서 신호를 받는다. 화학물질은 ‘어떤 단백질을 만들어라’부터 ‘살아라!’까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세포가 받던 소통이 끊어지면 세포는 어느 시점에서 분열을 멈추고 서서히 죽는다. 


몸속 세포는 수많은 종류의 신호를 받는다. 혈액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고 노폐물을 배출한다. 실험실 배양 접시 위에서 복잡한 환경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과학자들은 몸을 벗어난 생명을 연구하기 위해 ‘불멸화 세포주(immortalized cell line)’를 개발했다. 불멸화 세포주는 그 이름처럼 유리병 속에서 고립된 채로도 끊임없이 분열하는 세포이다. 불멸화 세포주는 생존 신호를 듣지 않고도, 주변에 노폐물이 쌓여도 세포 수를 불리며 번성하는 기적의 덩어리다. 죽으라는 신호를 무시하면서까지 기어코 분열하는 세포의 정체는 무엇일까? 몸 안에 있을 때 이들은 종양이나 암이라고 불렸다. 불멸화 세포주는 대부분 암세포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인간 세포주도 종양 덩어리였다. 1951년 조지 가이가 키워낸 헬라세포(HeLa cell)이다. 헬라세포는 ‘헨리에타 랙스’라는 흑인 여성의 자궁경부암 조직에서 유래했다. 29세 헨리에타 랙스는 존스홉킨스 병원 산부인과에서 자궁경부암을 진단받는다. 헨리에타는 종양 절제 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었으니, 수술로 떼어낸 세포 한 덩이가 과학자에게 넘어간 줄은 몰랐을 것이다. 가이는 유리병 속에서 끊임없이 자라나는 헨리에타 덩어리를 전 세계 곳곳으로 퍼트렸다.


헨리에타 랙스의 가장 유명한 사진


현미경으로 찍은 헬라세포. 미국기준주관리원(ATCC) 제공




헬라세포는 암 연구자들에게 암을 몸에서 떼어 연구할 기회를 주었다. 우선 헬라세포의 유래인 자궁경부암 연구에 큰 진전이 있었다. 1985년 하랄트 추어 하우젠이라는 과학자는 헬라세포를 이용해 자궁경부암의 원인을 찾아냈다. 헬라세포를 비롯한 자궁경부암 세포주에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DNA를 발견한 것이다. 


사람 세포 하나의 유전체 서열은 30억 쌍이다. 인유두종바이러스의 서열은 800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 30억 쌍 중 8000쌍을 찾는 일이었다. 유전 정보도 정보이다. 한 번 찾으면 바로 보이지만 찾는 과정이 어렵다. 암세포 속에 숨은 바이러스 서열 찾기는 비유하자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의 ‘그런 말’을 찾기 위해 10년어치 카카오톡을 뒤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수십 번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아 하니, 끊임없이 분열하며 세포를 공급하는 세포주 없이는 불가능할 연구였다. 


추어 하우젠의 끈기있는 연구는 훗날 인유두종바이러스 대한 백신을 낳았다. 오늘날 자궁경부암은 70%까지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2008년 추어 하우젠은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67년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서 연구를 시작한 시절과 2008년 노벨상을 받은 시점의 헤랄드 추어하우젠


헬라세포는 암세포인 동시에 실험실에서 배양 가능한 최초의 인간 세포였다. 사람을 쓸 수 없던 수만 가지 실험의 대안이 되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53년 조나단 솔크의 소아마비 백신 개발이다. 솔크는 헬라세포를 대량 생산하여 백신의 효능을 검증했다. 이후로도 헬라세포는 생명 현상의 궁금증을 푸는 재료로 활용되었다. 바이러스나 세균을 감염시키는 것은 물론, 엑스레이를 찍거나 우주선에 태워 방사선이 세포에 미치는 작용을 알아냈다. 세포 안팎에서 일어나는 신호전달 과정, 영생의 비밀이라는 ‘텔로미어’ 연구까지 헬라세포가 쓰지 않은 연구는 거의 없다. 2022년 기준 구글 학술검색에 ‘HeLa cell’을 검색하면 200만 개의 논문이 나온다. 70년 동안 200만 개 넘는 연구가 헬라세포로 이루어진 것이다.




생명과학 연구가 깊고 섬세해지며 과학자들은 헬라세포와 사람 세포의 차이점을 찾기 시작했다. 인유두종바이러스가 헨리에타 랙스의 유전자를 온통 휘저어 놓은 탓에 헬라세포는 염색체 수준에서 사람 세포와 달라져 있었다. 염색체는 세포 안에서 염기와 단백질이 뭉쳐있는 구조물이다. DNA가 실이라면 염색체는 실뭉치이다. 사람 세포는 보통 46개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지만, 헬라세포는 비정상적인 복제가 일어나 80여 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었다. 헬라 세포의 실뭉치는 다른 세포보다 두 배는 많았다.


헬라세포와 보통 세포의 염색체. 한 쌍씩 있어야 하는 염색체가 한두 개씩 더 있다


2003년 사람의 유전체를 통째로 해독한다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었다. 헬라 세포의 유전체 분석 결과는 게놈 프로젝트 10년 후에 나왔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헬라세포 속 수많은 유전자들은 보통 세포보다 두 배 이상 복제되어 있었고 많게는 여섯 배까지 불어나 있었다. 염색체가 엉켜 새로운 염색체를 만들기도 했다. 헬라세포는 세계 곳곳의 실험실로 퍼지며 수를 불렸다. 60년이 지나고 보니 같은 헬라세포라도 실험실에 따라 전혀 다른 유전정보를 지니기도 했다. 


학자들은 인정해야 했다. 헬라 세포는 사람 연구의 기준이 될 수 없었다. 유전체를 분석한 과학자 슈타인메츠는 헬라세포에 대해 앞으로 10년은 쓰이더라도, 20년 후까지 헬라세포를 사용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헬라세포 유전체 연구를 실은 학술지 G3의 2013년 8월 표지. 표지의 둥근 그래프는 헬라세포의 유전체 도표이다.



헬라 세포의 전체 유전체 서열이 밝혀진 지도 10년이 되어 간다. 슈타인메츠의 예언대로 헬라 세포는 아직은 현역이다. 세포 실험이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이라면, 헬라세포는 70년 역사를 거치며 세포 실험에 최적인 플랫폼이 되었다. 헬라세포만큼 빠르고 잘 자라는 세포가 없다. 70년 역사 동안 수많은 실험이 헬라세포로 최적화되었다. 세포 분열이나 단백질 전사처럼 세포의 보편적인 성질을 연구하는 데 헬라 세포는 여전히 유용하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생명 현상이 얼마나 되지 아무도 모른다. 헬라세포로 밝힐 수 있는 새로운 생명 현상, 헬라세포만이 밝힐 수 있는 생명 현도 아직 많을 것이다.


세포 실험이라는 것이 생명 현상을 밝히는 목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몸을 벗어난 세포는 공학 도구가 되기도 한다. 헬라세포는 배양이 쉬워 생명공학 도구로 사용하기에도 알맞다. 연구자들의 상상력은 대단해서 헬라세포를 이용해 DNA 바코드를 만들고, 헬라세포를 광학-전자 현미경 사이 결과를 비교하는 기준으로 쓰기도 한다. 인공 생명을 만드는데도 헬라 세포가 쓰였다. 헬라 세포의 핵을 뺀 후 직접 조립한 유전 정보를 넣어 배양해보는 것이다. 이런 연구에서 헬라 세포가 사람 세포인지 암세포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헬라세포 이래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인간 세포주를 개발했다. 오늘날 세포주는 암의 종류보다도 다양해졌다. 암세포가 왜 죽지 않는지 알아내면서 평범한 세포도 유전자를 바꾸어 세포주'화'하는 것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헬라세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진보였다. 이렇게 생겨난 세포주들도 헬라 세포의 전철을 밟으며 여러 가지 연구에 쓰이고 있다. 


세포 실험이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이라고 했다. ‘패러다임’ 뒤에 가장 자주 붙는 말은 ‘전환’이다. 실험실에서 생명을 연구하는 방식도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세포 실험 방법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배양 접시에 한층씩 키우던 세포를 3차원 덩어리로 키우기도 하고, ‘오가노이드’라는 장기를 만들어 몸 속 복잡한 환경을 재현하기도 한다. 일차 배양 세포가 얼마 안 되어 죽으니 조직이나 장기 째로 들어내서 살려보기도 한다. 인류가 제 몸에서 최초로 꺼낸 생명은 암 종양이었다. 앞으로 다룰 생명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출처 및 각주


* 헬라세포가 생명과학 역사에 공헌한 바는 NIH 페이지에 시대별로 정리되어 있다. 

Significant Research Advances Enabled by HeLa Cells – Office of Science Policy (nih.gov)

* 헬라세포의 공헌과 별개로, 헨리에타 랙스와 가족에게 아무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세포주를 만들고 산업에 이용한 것은 생명과학의 흑역사가 되었다. 레베카 스클루트의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에 50년간 가족들이 겪은 기막힌 사연이 나온다. 책에 대한 서평을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올린 바 있다.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40956&SOURCE=6

* 헨리에타 랙스의 사진은 헨리에타 랙스 재단이 뉴욕 타임즈에 제공한 이미지를 인용했다.

https://www.nytimes.com/2013/08/08/science/after-decades-of-research-henrietta-lacks-family-is-asked-for-consent.html

* 헬라세포 사진과 헬라세포를 이용한 실험은 HeLa | ATCC 페이지를 참고했다.

Harald zur Hausen – Biographical - NobelPrize.org

* 헬라세포의 핵형 분석 이미지의 원출처는 찾지 못헀다. 이미지는 버몬트 대학의 유전학 & 유전체학 위키 페이지에서 인용했다. HeLa Cells | UVM Genetics & Genomics Wiki | Fandom

* 헬라세포의 염색체를 분석하여 발표한 논문 LAVAPPA, K. S., MACY, M. L., & SHANNON, J. E. (1976). Examination of ATCC stocks for HeLa marker chromosomes in human cell lines. Nature, 259(5540), 211–213. doi:10.1038/259211a0 

* 헬라세포의 유전체 분석 논문 Landry, J. et al., The Genomic and Transcriptomic Landscape of a HeLa Cell Line, G3 Genes|Genomes|Genetics, Volume 3, Issue 8, 1 August 2013, Pages 1213–1224, 
https://doi.org/10.1534/g3.113.005777

*슈타인메츠의 인용은 이 기사에서 찾았다.  Callaway, E. Most popular human cell in science gets sequenced. Nature (2013). https://doi.org/10.1038/nature.2013.12609



헬라세포를 이용한 최신 연구들

Fermie, J., de Jager, L., Foster, H. E., Veenendaal, T., de Heus, C., van Dijk, S., ... & Liv, N. (2022). Bimodal endocytic probe for three-dimensional correlative light and electron microscopy. Cell Reports Methods, 100220.

* Kaufman, T., Nitzan, E., Firestein, N., Ginzberg, M. B., Iyengar, S., Patel, N., ... & Straussman, R. (2022). Visual barcodes for clonal-multiplexing of live microscopy-based assays. Nature Communications, 13(1), 1-17.

Ho, K. K., Murray, V. L., & Liu, A. P. (2015). Engineering artificial cells by combining HeLa-based cell-free expression and ultrathin double emulsion template. In Methods in cell biology (Vol. 128, pp. 303-318). Academic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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