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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Jul 03. 2022

1.2. 세포에게 밥 먹이기

배지(media)의 기능과 조성

세포 배양과 강아지 키우기는 비슷한 점이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강아지와 산책할 때는 강아지 목에 목줄만 채우면 된다. 세포를 관찰하는 연구자는 아주 조심스럽다. 인큐베이터에서 세포를 꺼내 세 걸음 거리의 클린 벤치로 배양 접시를 옮길 때 연구자는 살얼음판을 가듯 종종대며 걷는다. 배양 접시에 담긴 배지가 찰랑찰랑 흘러넘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는 배지에서 자란다. 세포는 죽기 전까지 배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배지(medium, 복수형 media)는 몸을 벗어난 세포를 둘러싼 인공 환경이다. 세포는 배지의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지에 노폐물을 내놓는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은 배지를 데우고, 세포는 배지에 잠긴 채로 따뜻한 온도를 즐길 것이다. 세포를 배양할 때는 주로 액체 배지를 쓴다(고체형 배지도 있지만 많이 쓰이진 않는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세포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몸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최초이자 최적의 배지가 혈액의 주요 성분인 혈청(serum)인 이유이다. 혈액에는 세포에 필요한 모든 물질이 들어있다. 호흡에 필요한 산소와 소화 기관에서 얻은 영양분, 내분비샘에서 나온 호르몬, 곳곳의 신호전달 단백질까지 몸에 필요한 모든 물질이 혈액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혈액은 노폐물을 수용하는 능력도 좋다. 몸에서 생긴 노폐물은 모두 혈액을 타고 배설 기관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혈액은 웬만큼 노폐물이 쌓여도 완충이 된다. 세포를 몸에서 꺼내더라도 신선한 혈액에 담가 두기만 하면 세포는 몸 안에 있을 때와 비슷하게 잘 자랄 것이다.


혈액이 생겼다고 그대로 세포 배양에 사용할 수는 없다. 혈액에 있는 혈구 세포를 걸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혈액에는 출혈이 생겼을 때 혈액을 굳히는 ‘응고 단백질’이 존재하지만, 이것도 세포 배양에는 불필요하다. 혈액에서 세포와 혈액 응고 단백질을 제외한 액체가 혈청이다. 혈구와 단백질이 없어졌기 때문에 혈청은 붉지도 걸쭉하지도 않은 누런색 액체다.


혈청을 컵에 옮기는 연구원. U.S. Navy photo by Photographer’s Mate Airman Timothy F. Sosa.


혈청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혈액을 추출해서 가만히 두면 혈구 세포와 응고 단백질이 알아서 뭉친다. 뭉친 혈병을 혈액에서 제거하면 혈청이다. 혈청은 세포 배양 초창기부터 쓰였으며, 오늘날에도 세포를 잘 키우는 만능 배지로 쓰이고 있다.




혈청이 세포에 최적의 배지인 것은 맞지만, 연구자 입장에서 혈청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몸에 있는 세포를 굳이 꺼낸 이유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이다. 연구는 ‘변인 통제’가 중요하다. 모든 세포를 같은 조건에서 배양해야 한다. 연구자의 처치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온도, pH, 영양분 등 세포 주변의 환경은 오차 범위 안에서는 같아야 한다.


혈청은 변인 통제가 불가능한 물질이다. 혈액은 동물의 상태에 따라 성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분이 달라도 어떻게 다른 지 알면 조절할 수 있을 텐데, 아직까지도 혈청에 무슨 물질이 들어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과학 기술이란 새끼손가락의 피 한 방울에서 50년 후 걸릴 질병을 알아내는 모습이다. 실상은 액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내는 분석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시가 광우병이다. 연구에 제일 많이 쓰이는 혈청은 소 태아 혈청 (FBS, Fetal Bovine Serum)이다. 혈청을 추출한 소가 광우병에 걸렸는지 알 방법이 없다(무시무시하게 들리겠지만, 광우병에 걸렸는지 알 수 없기는 냉장고에 들어있는 소고기도 똑같다). 혈청 속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수많은 물질은 확인할 수 없으니 통제하기는 더욱 불가능하다. 혈청은 ‘세포의 배양 환경은 중요하지 않고, 아무튼 세포가 잘 살기만 하면 되는’ 경우에만 쓸 수 있다.


과학자들은 혈청의 불확실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적어도 나의 실험 결과가 옆 실험실에서도 그대로 나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지의 성분이 표준화되어야 했다. 수많은 학자들이 혈액의 성분을 연구하며 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물질을 찾았다. 혈청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었다. 혈청에 들어있는 수천 가지 단백질 중 무언가는 세포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 세기 전, 세포에 필요한 영양분을 담은 ‘기본 배지’가 표준화되었다. 비유하자면 기본 배지는 냉면의 육수 같은 것이다. 대량 생산된 육수에 마법의 소스를 조금 넣어 간을 맞추듯, 연구자들은 기본 배지에 혈청을 섞어 세포를 배양했다. 무척 잘 자라는 세포는 혈청 없이 기본 배지만 사용해도 배양이 가능해졌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법 소스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유명한 배지의 이름만 말해보겠다. 1959년 해리 이글과 레나토 둘베코는 각각 ‘이글의 최소 필수 배지 (Eagle’s minimum essential medium, MEM)’, ‘둘베코식 변형 이글 배지 (Dulbecco’s Modified Eagle’s medium, DMEM)’를 개발했다. 7년 후 면역 세포를 위한 RPMI 1640배지도 개발되었다. 특이하게도 배지를 개발한 연구소 이름(Roswell Park Memorial Institute)을 따서 배지의 이름을 지었다. 이들 기본 배지의 성분은 60년간 그대로이다. 생명과학 학회에 가면 온갖 실험재료 회사들이 와서 자기네 시약을 홍보한다. 상표와 병 모양은 달라도 성분은 모두 같다.


Gibco 브랜드의 배지. https://www.thermofisher.com/


혈청 제조 과정도 엄격해졌다. 1950년대에는 혈청이 필요할 때 신문 광고로 지원자를 받아 병원에서 뽑아냈다. 이제는 동물의 혈액을 무균 공장에서 여과해서 만든다. 제조가 끝난 후에는 여러 가지 병원균 검사를 거친다. 애석하게도 이 모든 과정이 세포 실험 비용을 늘렸다. 2022년 기준 소태아혈청은 500mL에 60만 원이 넘는다. 기후 위기로 소 농장 면적이 줄어들면 혈청의 가격도 올라갈 것이다.


이제는 대부분 세포를 혈청 없이 키우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오늘날 배지에 혈청을 넣을지 넣지 않을지는 실험 목적과 비용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제약 회사에서 일하며 ‘배지 할아버지’와 ‘버퍼 할머니’의 신화를 들었다. 외국의 연구소에서는 나이 든 연구원이 은퇴하는 대신 짧고 단순한 업무를 맡아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일회용 플라스크에 라벨을 붙이며 어딘가에 있을 연구소를 상상했다. 20년 전 신약 개발을 전두 지휘했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하루만 회사에 나와 배지를 만드는 할아버지나, 회사의 기반 세포주를 설계한 과거를 묻고 오전에만 버퍼를 만들고 퇴근하는 할머니 말이다. 그런 연구소에서 일한다면 말단 연구원 생활이 힘들어도 다닐 맛은 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험이 잘 안 될 때면 인생의 선배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끝없는 승진을 선택하지 않고 작은 일을 해도 실험실에 남는 길을 가신 분들이니, 회사의 높은 사람들처럼 꼰대도 아닐 것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배지 할아버지가 일할만큼 오래된 곳은 아니었다. 배지 제조는 말단 연구원의 몫이었다. 제약 회사에서 배양하는 세포에는 혈청을 사용할 수 없다. 이곳의 최종 생산물은 사람에게 쓰이기에 제조 과정에서 들어가는 모든 성분이 확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의약품은 세포가 아니라 세포가 생산하는 단백질이며, 수확된 단백질은 여러 번 정제되어 약물로 가공된다. 그렇지만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사고가 날 여지는 없애는 것이 낫다. 말했지만, 우리는 액체에 들어있는 성분을 모조리 알아낼 수 없다.





무혈청 배지는 최소 원가에 최적의 배양 조건을 갖춘 첨단 물질이겠지만, 그런 배지를 제조하는 일은 단순 노동이다. 레시피를 보며 물에 가루를 타면 된다. 규모만 컸지 20인분 분유 만들기와 다르지 않다.


배지의 기본은 물이다. 그냥 물은 아니고 여러 가지 필터로 거른 초순수를 쓴다. 물에 불순물이 들어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물에 전기를 흘리는 것이다. 순수한 물일수록 이온 농도가 낮아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연구자가 직접 측정하는 것은 아니다. 초순수 제조 기기에 표시되는 수치를 확인하고 물을 따랐다.


실험실마다 한 대씩은 있는 초순수 제조기  https://www.merckmillipore.com/


먼저 물에 소금 간을 맞춘다. 배지가 싱거우면 세포가 죽는다. 물은 세포막 사이로 드나들 수 있다. 맹물에 들어간 세포는 물이 스며들어 불어 터진다. 배지는 체액과 동일한 농도만큼 간이 되어야 한다. 맹물에 체액만큼 소금을 녹인 용액을 생리식염수라고 한다. 생리식염수에 담긴 세포는 양분이 없어 굶더라도 당분간은 생존할 것이다.


소금 간을 맞춘 다음에는 산염기(수소이온 농도, pH) 간을 맞춘다. 음식에 식초를 넣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에도 간을 잘못 맞춰 너무 시거나 써지면 세포는 죽는다. 세포는 세포막 사이로 끊임없이 이온을 내보내거나 받아들인다. 배지의 산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수소이온 비율이 달라져 생명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포의 주요 성분인 단백질도 산도에 따라 구조가 변한다.


소금 간과 산염기 간이 다른 점은 세포가 밥을 먹으며 간을 바꾼다는 것이다. 세포가 생명 활동을 하면 이산화탄소나 젖산, 암모니아를 내놓는다. 이런 노폐물이 배지의 산도를 바꿀 수 있다. 배지는 혈액처럼 안정적으로 완충 작용을 해야 한다. 산도를 맞춰가며 산 염기 완충 물질을 섞어 넣는다.


배지는 세포가 사용할 영양분을 담고 있어야 한다. 주 영양분은 포도당과 글루타민이다. 포도당은 생명의 기본 에너지원이다. 글루타민은 단백질을 조립하는 단위인 ‘아미노산’ 중 한 물질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따로 보조제를 챙겨 먹는 영양소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아미노산 중 글루타민을 콕 집어서 넣는 이유는 글루타민에 질소가 많기 때문이다. 유전 물질인 DNA부터 에너지를 저장하는 단위인 ATP까지, 세포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물질에는 질소가 들어간다. 글루타민은 세포에 질소를 제공하는 동시에 포도당이 부족할 때 호흡에도 쓰이는 요긴한 물질이다.


이후부터는 배양하는 세포의 종류나 회사의 비밀 노하우에 따라 배지 조성이 달라진다. 글루타민 말고도 필요한 아미노산을 넣고, 비타민과 무기 염류를 추가한다. 인슐린이나 성장 호르몬을 넣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오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균보다 작은 막으로 용액을 걸러낸다. 세포에 먹일 밥을 만들고, 그 밥을 세포에게 먹이며 월급을 받았다. 월급을 받아 먹고 살았으니 세포와 나는 서로가 서로의 밥을 먹이는 삶을 살았다.
 


참고 문헌 및 각주

이미지 출처: wikipedia (Serum (blood) - Wikipedia

Yao T, Asayama Y. Animal-cell culture media: History, characteristics, and current issues. Reprod Med Biol. 2017 Mar 21;16(2):99-117. doi: 10.1002/rmb2.12024

FBS에 대해서는 써모 피셔 사의 설명을 참고했다. 이곳의 깁코(Gibco)는 세포 배양에 제일 많이 쓰이는 재료 브랜드이다.

What is Fetal Bovine Serum | Thermo Fisher Scientific - KR

시료 속에 어떤 물질이 들어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을 ‘검출’이라고 한다. 원하는 물질이 일정 농도 이상으로 있을 때만 확인할 수 있고, 확인할 때마다 비용이 들어간다.

혈액에서 변형 프리온을 검출하는 방법은 여전히 연구 중인 영역이다. 2016년 미국의 연구진이 혈액 내 프리온 검출 방법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나, 아직까지 후속 연구가 결과가 없는 것을 보아 산업에 활용할 만큼 개발되지는 않은 것 같다.
Detection of prions in blood from patients with 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 Concha-Marambio L, Pritzkow S, Moda F, Tagliavini F, Ironside JW, Schulz PE, Soto C. Sci Transl Med. 2016 Dec 21;8(370):370ra183. doi: 10.1126/scitranslmed.aaf6188

국제 혈청 산업 협회 (International serum industry association)은 변형 프리온이 혈청을 통해 전파되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 혈청 산업 협회는 설령 소가 광우병에 걸렸어도 혈액을 통해 전염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BSE (serumindustry.org)

배지의 표준화 과정은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p145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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