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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Sep 24. 2021

1.1.  세포를 키우는 장소

클린 벤치와 인큐베이터


세포도 생명이라, 세포 배양은 강아지 키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강아지와 행복하게 사는 첫 단계는 제때 먹이를 주고 배변 패드를 갈아주는 것이다. 세포 배양도 세포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전문 펫시터가 강아지를 돌보러 의뢰인의 집에 방문하듯, 연구자는 세포를 돌보러 실험실에 간다. 모두가 쉬는 주말, 어김없이 직장에 가는 두 사람에게 무슨 일로 출근하냐고 물으면 똑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밥 주러 간다."  


다른 점도 있다. 견주와 강아지는 산책을 가지만 연구자는 세포를 꺼내 실험을 한다. 산책이 강아지를 위한 일인 반면, 세포 실험은 연구자의 궁금증을 채우는 일이다. 개가 무리를 벗어나 인류의 식구가 된 지는 수만 년이 되었다. 세포가 몸을 벗어나 실험실에 온 것은 이제 한 세기가 넘은 정도다. 강아지는 주인의 채취가 남은 집이면 충분하지만, 세포가 살아가기에 세상은 아직 가혹하다. 연구자는 세포를 키우기 전에 세포가 건강하게 살아갈 환경을 먼저 만들어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생명과학 실험실이 ‘세포 배양실’을 따로 배치하는 이유이다. 세포 배양실은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고 내부인이라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세포는 배지에 담긴 채 자란다. 강아지 비유를 계속 들면, 배지는 사료와 집과 배변패드를 합친 무언가이다. 당장은 세포를 키우는 액체라고만 알아도 된다. 액체 배지는 배양 접시나 플라스크에 담긴다. 배양 접시는 세포를 키우는 손바닥 하나만한 플라스틱 접시이다. 플라스크는 만화 속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이 엄지와 검지로 목을 잡고 흔드는 원뿔 모양 병이다. 

 

세포의 집. 배양 접시와 삼각 플라스크


세포는 배양 접시 째로 인큐베이터에서 살아간다. 인큐베이터는 세포가 무탈하게 살아가도록 환경을 유지하는 장치이다. 인큐베이터는 소형 냉장고처럼 생겼다. 온도 유지 장치라는 점도 냉장고와 비슷하다. 살얼음이 끼는 온도를 유지하는 냉장고와 달리, 인큐베이터는 세포가 잘 자라는 온도여야 한다. 세포가 잘 자라는 온도는 체온과 비슷한 35-37°C다. 사람은 뇌에 온도 조절 장치가 있는 덕분에 사시사철 36.5°C 를 유지할 수 있지만, 몸을 벗어난 세포는 스스로를 데우거나 식힐 수 없다. 인큐베이터는 몸 구석구석을 데우는 혈액처럼 세포에게 딱 맞는 맞는 온도를 제공한다.




세포를 키우는 장소인 인큐베이터



세포 배양실의 인큐베이터는 세포 주변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유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수많은 기체 중 왜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절해야 하는지 의아할 수 있다. 인큐베이터 내 이산화탄소는 배지의 산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지는 세포를 담고 키우는 액체라고 했다. 액체의 산도(pH)는 생물의 생존하는 데 온도만큼이나 중요하다. 세포도 생명이라 매번 호흡하며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몸 안이었다면 적혈구가 곳곳의 혈관을 돌아다니며 세포가 뱉은 이산화탄소를 받아 폐로 옮길 수 있다. 실험실 세포는 그럴 수 없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세포가 만든 이산화탄소가 누적되며 세포 주변이 산성이 된다. 실험자는 세포 주변 공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절함으로써 배지의 산도를 맞출 수 있다. 세포가 뱉는 호흡이나 세포가 내놓는 노폐물과 상관없이 주변 산도를 알맞게 유지할 수 있다.

 

인큐베이터에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는 탄산 가스통


이산화탄소 농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가 많이 필요하다. 실험실에서는 LPG 가스통처럼 생긴 탄산 가스통을 사용한다. 압력 게이지를 확인하고 기압이 떨어질 때마다 탱크를 바꾼다. 탄산 가스가 떨어지지 않도록 제때 관리하는 것도 연구자의 일이다. 인큐베이터에 필요한 이산화탄소 농도는 세포마다 다르지만 대략 3-5%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100배 정도이니 이산화탄소를 꾸준히 넣어주어야 한다. 


행여나 이산화탄소가 다 떨어지면 인큐베이터가 삑삑 울리대며 실험실 비상사태를 선언한다. 한 순간 이산화탄소가 부족했다고 세포가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험으로 나온 결과가 연구자가 넣은 시약 때문인지, 잠깐 인큐베이터에 이산화탄소가 부족했기 때문인지 구별할 수 없다면 결과가 어떻든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인큐베이터의 제 1역할은 세포의 생존이지만, 동시에 세포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큐베이터는 스테인레스나 구리 제품이 많다. 스테인레스야 많이 쓰이는 금속이니 그렇다쳐도, 인큐베이터를 열었는데 붉은 구리판을 보면 왜 하필 구리로 인큐베이터를 만들었는지 이상하다. 앞서 말한 '내부인이라도 신발을 벗고 출입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힌트는 엘리베이터 버튼에 붙어있는 항균 구리 필름이다.





실험은 인큐베이터에서 세포를 꺼내 클린 벤치로 옮기며 시작한다. 클린 벤치는 직역하면 '깨끗한 자리'이며, 정식 이름은 층류 캐비닛이다. 클린 벤치는 '세포와 연구자만을 위한 무균 장소'를 꾸리는 장치이다. 강아지가 자유롭게 뛰어다니기 위해 운동장만한 놀이터가 필요하듯, 손바닥만한 배양 접시 하나를 보는 데에도 책상만한 공간이 필요하다.


린 벤치는 험 공간을 막고 위에 공기청정기를 달아놓은 구조이다. 실험대의 양 옆과 뒤는 벽이요, 앞쪽은 유리로 된 미닫이문이 있다. 험대 내부에는 형광등과 자외선램프가 달려있다. 실험을 하지 않을 때는 자외선 램프가 벤치 내부를 살균한다. 실험을 할 때는 자외선 램프는 꺼지고 내부 형광등이 빛을 조절한다.


세포와 만나는 장소인 클린 벤치. 뒷모습이 우울해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클린 벤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팬 전원을 켜야 한다. 기기 위의 팬이 돌아가면 바깥 공기가 안으로 들어온다. 바깥에서 들어온 공기에는 온갖 미생물과 먼지가 가득하다. 기기 내부의 필터가 공기를 거르면 깨끗한 공기만 벤치 내부로 들어온다. 연구자는 팬이 충분히 돌아 클린벤치 내부가 깨끗한 공기로 가득찰 때까지 기다린다. 시간이 되면 연구자는 유리문을 열고 실험대 내부를 깨끗이 닦아 세포를 맞이한다. 인큐베이터에 있던 배양 접시를 클린 벤치 내부에 놓으면 준비는 끝난다. 연구자는 유리벽 너머로 손을 뻗으며 실험을 시작한다.


클린 벤치의 종류


클린 벤치는 실험대 내부 공기가 흐르는 방식에 따라 수직 기류와 수평 기류로 나뉜다. 대부분 클린 벤치는 수직 기류이지만, 둘의 용도는 미묘하게 다르다. 수직 기류 벤치는 실험대 한 가운데 수직으로 공기가 내려온다. 그럼처럼 실험대 중앙에 공기로 된 벽이 생긴다. 유리문을 높이 열어도 공기벽에 오염 물질이 막혀 쉽게 실험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덕분에 현미경 등 큰 실험 도구를 넣고 작업할 수 있다. 수직 기류 클린 벤치에도 클린하지 않은 면이 있다. 배양 접시 바로 위에 먼지 등 오염 물질이 떠다닐 때, 물질이 공기의 흐름을 타고 바로 세포에 닿을 수 있다. 수평 기류 벤치는 이런 오염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수평 기류 벤치는 실험대 뒤에서 흐른 공기가 앞으로 나오는 구조이다. 연구자의 손에 오염 물질이 있더라도 수평 바람을 타고 실험대 바깥으로 나온다.



수직 기류 클린 벤치의 장점. 내부에 큰 실험 도구를 두어도 공기의 흐름이 깨지지 않는다.



수직 기류 벤치를 쓰든 수평 기류 벤치를 쓰든 클린 벤치 내부의 공기는 연구자가 있는 바깥 방향으로 향한다. 외부 환경에서 세포를 지킬 수는 있지만 세포로부터 연구자를 지킬 수는 없는 구조이다. 세포로부터 연구자를 지킨다니, 인큐베이터만 나와도 시들시들 죽어가는 세포가 감히 연구자를 위협할까? 그렇다. 생명과학자는 질병 치료법을 찾기 위해 질병을 직접 다루어야 한다. 연구자가 코로나19나 에볼라 바이러스의 감염 기전을 연구한다면 어떤 클린 벤치를 써도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연구자를 감염시킬 수 있다. 이름을 들어본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실험실에서는 여러가지 유전자 조작 바이러스를 사용한다. 이런 바이러스는 실험실 세포에서만 작동하도록 만들지만, 행여나 사람 세포에 감염되었을 시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생물 안전 캐비닛 (biological safety cabinet, BSC)을 사용한다. 클린 벤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공기 흐름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유리문 바로 아래에 공기가 통하는 그릴이 달린 것이다. 실험대 바로 앞 공기는 그릴을 타고 실험대 아래로 들어온다. 내부로 들어온 공기는 필터를 통해 무균 상태로 걸러진 후 실험대 내부로 들어온다. 세포도 안전하고 연구자도 덜 찝찝하지만, 일반적인 클린 벤치보다는 복잡하고 비싸다. 또한 그릴 위에 무언가를 올려두면 공기의 흐름이 깨져 연구자든 세포든 위험해진다. 벤치 위에서 연구자가 실험대를 조작하는 유일한 통로는 유리문 아래 좁은 틈이다. 바로 아래에 그릴이 있으니 팔에 힘을 놓으면 그릴을 막게 된다. BSC를 쓰는 연구자는 계속해서 팔을 든 채로 실험해야 한다. 강아지 산책에 다리가 고생한다면 BSC 세포 실험은 팔이 아프다.


실험실에서 주로 쓰이는 BSC의 구조. 실험대 내부에서 공기가 오염되더라도 바닥의 그릴로 빠져나간다.









참고문헌 및 이미지 출처


실험 장비 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ryopreservation_USDA_Gene_Bank.jp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ultiwell_cell_culture_plates-set.jpg

Forma™ Series II 3110 Water-Jacketed CO<sub>2</sub> Incubator (thermofisher.com)

File:Schott Duran Erlenmeyer flask narrow neck 250ml.jpg - Wikimedia Commons

탄산 가스통 사진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박상준 교수님께서 제공해주셨습니다.


엘리베이터 구리 필름 사진: 승강기에 붙은 '코로나 안티필름', 효과 있을까 -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40516030974413


클린 벤치 & BSC 관련 정보: 에스코코리아(Esco Korea) (escolifesciences.co.kr)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학생 시절에는 0.03%로 배웠는데, 어느새 0.04%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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