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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Sep 06. 2021

<몸을 벗어난 생명>을 시작하며

VC blog » Blog Archive » Brain + Universe (visualcomplexity.com)

몇 년 전 인터넷에 돌던 사진이다. 왼쪽은 뇌를 이루는 세포인 뉴런이고, 오른쪽은 우주다. 사진 아래에는 짧은 글이 블로그 말투로 달려 있다. <이렇게 신기할 수가! 뉴런과 우주가 똑같이 생겼다니. 수없이 확대해도 같은 모양이 나타나는 프랙탈 구조처럼 우주는 똑같은 모양으로 반복되고 있다. 인간 뇌의 뉴런은 저마다 하나의 우주이다. 동시에 우리는 거인의 뇌세포를 구성하는 먼지 한 톨이다.> 


흥미롭지만 여기에 쓰고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졌다는 믿음이 굳어진 지 오래라, 이 주제로는 소설조차 지어낼 수 없다.


사진을 자세히 보자. 왼쪽 이미지는 뉴런을 형광 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오른쪽 이미지는 우주에 분포하는 암흑 물질 밀도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다. 얼핏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우주와 뉴런은 비슷하지 않다. 복잡한 대상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단순화하는 것도 비유라고 할 수 있다면, 두 이미지는 자연에 대한 비유이다. 뉴런은 빨갛지 않다 세포핵은 노란 색이 아니다. 암흑 물질은 애초에 눈으로 볼 수 없다. 농도가 짙어진다고 보라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지 않는다. 연구자가 갖가지 색을 써서 자연 현상을 비유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진에서 감탄할 요소는 피상적으로 보이는 뇌와 우주의 비슷함이 아니다.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뉴런을 우주처럼, 보이도록 가공하는 과정이다 (우주를 뉴런 모양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일도 매우 복잡하고 어렵겠지만, 이 과정은 천문학자에게 설명을 부탁할 부분이다). 우리는 모두 뇌를 갖고 있지만, 우리 뇌를 구성하는 뉴런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직접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생명과학자는 뇌 속에 있어야 할 뉴런을 밖으로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모자라 핵은 노랗게, 가지 부분은 빨갛게 물들였다. 어찌나 선명한지 가지에 나 있는 돌기마저 하나하나 보일 정도이다.




본 시리즈에서는 현대 실험실 생명과학이 몸 속 생명을 몸 밖으로 가져온 과정과 성과를 소개한다. 수백만 종의 생명 중 특히 인간과 인간이 속한 포유류 동물의 생명을 실험실로 끌어온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포유류 세포(mammalian cell)에서 얻은 지식은 인간의 생명 현상을 밝히는 가장 직접적인 단서가 되었다. 실험실에서 포유류 세포를 관찰하고 변형 가능한 존재로 길들였을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작은 단위에서 관찰하며 스스로 진화할 가능성을 가늠하게 되었다. 


생명을 구성하는 세포와 조직, 기관은 몸 안(in vivo)에서는 완벽하게 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는 사람이 관찰하거나 조작할 수 없다. 자동차를 뜯어보지 않고서 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생명과학자는 몸에 담긴 생명 전체를 보는 대신 몸을 구성하는 요소를 하나씩 실험실에 떼어오는 쪽을 택했다. 몸을 벗어난 생명 조각을 자세히 관찰하고, 입맛에 맞게 생명을 변형하고 재조립했다. 


'몸을 벗어난 생명'은 '완전한 생명'과 다르다. 자동차 엔진은 차 바깥에서도 엔진이지만, 몸에서 생명을 다짜고짜 떼어내면 죽은 살덩어리만 남는다. 생명을 살아있는 채로 유리병 속에 (in vitro) 가두는 데는 사람의 손길과 장비가 많이 필요하다. 간신히 살린 생명은 생명의 원리를 연구하는 데 두루 쓰인다. 한계는 있다. 몸을 벗어난 생명으로 확인한 사실은 유리병 속 연구라는 'in vitro' 딱지를 떼어내지 못한다.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가 온전한 생명체에서도 적용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똑같은 실험을 동물 실험이나 임상 시험에서 재현해야 한다. 생체 내(in vivo) 결과다. 'in vivo'의 생명 현상이 'in vitro'에서 해석되면, 'in vitro' 연구를 'in vivo'에서 재현하고 활용할 수 있다.


생명과학 연구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신약 개발이다. 위 그림의 '기초/탐색연구'는 보통 in vitro 에서 이루어진다. 비임상과 임상 시험이 'in vivo'에 해당한다.




실험실 생명 이주는 가장 작은 세포에서 시작한다. 1장에서는 몸을 벗어나 연약해진 세포를 실험실에서 소생하는 과정을 말한다. 생명을 실험실에 가두어 얻은 가장 화려한 결실은 맨 위 뉴런과 같은 선명한 사진이므로, 유리 속에 갇힌 생명을 촬영하고 색을 입히는 과정도 함께 설명한다. 물론 몸을 벗어난 생명이 우주 시뮬레이션을 닮은 멋진 사진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바이오 의약품’은 실험실 과학자가 유리병을 금속 배양기로 키워 만든 산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포가 만들어낸 항암제는 환자를 구하고, 아이의 키가 크지 않을까 불안한 부모는 성장 호르몬을 구입한다.


몸속 세포는 자연스럽게 모여 조직과 기관을 구성하지만, 현대 과학의 수준에서는 세포를 뭉쳐 조직을 만드는 일도 완전하지 않다. 2장에서는 세포가 조직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며 미니 장기인 오가노이드와 동물의 살덩이를 대신할 배양육을 소개한다. 실험실 생명과학이 지금처럼만 진행된다면 오가노이드는 몸을 대신해 각자에게 제일 잘 맞는 약을 찾아낼 것이다. 배양육 기술도 공장식 축산을 대신해 효율 높은 고기를 생산할 것이다. 미니 장기가 제 크기로 자라도록 뼈대를 만드는 바이오프린팅 연구를 소개한다. 세포 연구가 바이오 의약품 산업을 낳았듯, 오가노이드 연구는 몸속 장기를 대신할 인공 장기 산업이 될지도 모른다. 몸을 벗어났던 생명이 몸속으로 되돌아가는 흐름이 반복된다.




실험실에는 발 한 짝도 들이지 않을 이들에게 현대 생명과학을 ‘영업’하고 싶다. 현대 생명과학이라는 블랙박스에는 한 번만 실패해도 무위로 돌아가는 실험과 그것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의 노력이 담겨있다. 과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블랙박스가 낳을 결과만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정을 모르는 과학은 냉소만 남긴다. 대부분의 발견이 실패로 끝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과학 기사에는 '상용화 전까지 이런 기사 올리지 마라'는 악플이 달린다. 기사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마음이 좋지 않다. 실험실을 모르는 이들에게 몸에서 벗어난 생명을 다루는 어려움과 한계를 알려주고 싶다. 몸을 벗어난 생명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며 몸으로 돌아오는지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이라도 과학의 느린 발전에 조금 너그러워질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글을 읽고 오늘날 과학자의 노력에 여유를 갖고 응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현대 생명과학은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도 블랙박스다. '모든 생명을 포괄하는 이론'과 '실험실에서만 통하는 원리' 사이의 괴리감은 실험실에서 장기간 일해보지 않고서는 느끼기 어렵다. 연구자 외에는 쌓기 힘든 경험이기 때문이다. 생명과학 실험실 현장과 오늘날의 연구를 훑은 글을 통해 괴리감을 간접 체험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생명과학 진로를 고민하는 이에게 이 글이 조금라도 도움이 된다면 글 쓰는 사람으로서 퍽 보람찰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암실 속에서 현미경 화면만 노려보며 매일 조금씩 시력을 잃어갈 과학자들을 대신해 몸을 벗어난 생명을 감상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실험실 생명과학이 만드는 그림은 자체로 예술이다. 논문 삽화로 끝나기에는 아까운 그림이 많다. 안타깝게도 생명과학자들은 반복되는 실험에 무뎌져 자신들이 만든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우주를 닮지 않아도 뉴런은 여전히 아름답다.






커버 출처: 픽사베이


- '인터넷에 돌아다는 그림'은 블로그 VC blog » Blog Archive » Brain + Universe (visualcomplexity.com) 에서 찾았다. 같은 이미지를 차용하되 네트워크 구조의 유사성을 소개한 한겨레와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71805.html나 사이언스타임즈 기사 인간의 뇌, 놀라울 만큼 우주와 닮았다 – Sciencetimes도 있다. '실제로' 입자 하나하나를 우주라고 생각하는 이론에 대해 알고싶다면 '프랙탈 우주론'을 검색하면 된다. 


왼쪽 뉴런 사진의 원출처는 Mark Miller의 Flikr이다. neuro | Flickr 


오른쪽 우주 사진의 출처는 아래 논문이다.

Springel, V., White, S. D. M., Jenkins, A., Frenk, C. S., Yoshida, N., Gao, L., Navarro, J., Thacker, R., Croton, D., Helly, J., Peacock, J. A., Cole, S., Thomas, P., Couchman, H., Evrard, A., Colberg, J., & Pearce, F. (2005). Simulations of the formation, evolution and clustering of galaxies and quasars. Nature, 435(7042), 629–636. https://doi.org/10.1038/nature03597


신약개발 R&D 과정 그림 출처

의약품안전나라 > 의약품등 정보 > 제네릭의약품 > 제네릭 및 생동성이란 > 의약품 개발 및 허가과정 (mfd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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