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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Sep 01. 2019

삼체 3부의 호와 불호-2

호-전체주의를 이렇게까지 코 앞에 댄 작품이 있었던가.

본 글은 삼체 전 시리즈를 다 읽은 독자를 가정하고 쓴 서평입니다. 삼체 시리즈의 가장 큰 재미는 두드러진 발상과 반전입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은 앞서 쓴 <삼체를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스포 없이 영업하기>를 읽고 즐거운 우주병에 빠져보세요!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nasa.gov/image-feature/venus-at-sunrise-from-the-space-station








<사신의 영생>의 흡입력은 대단하다. 챕터 마지막마다 나오는 한 문장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다음 챕터가 궁금해 한두 페이지 더 읽을 수밖에 없었다. 새벽이 되니 문명과 우주의 흥망성쇠도 함께 끝나 있었다. 


앞선 글에서는 삼체 3부의 아쉬운 점을 정리했다. 재밌는 이야기에 왜 마음 한구석이 찝찝할까 고민하다 나온 글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었다면 글을 쓸 생각도 들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본래 들었던 고민과 반대 물음이 생겨났다. 이 아쉬운 이야기의 어디가 그리 좋았을까.


<사신의 영생>은 전체주의 실험장이다. 이래도 전체주의를 택하지 않을지 인물들의 입을 빌려 청신과 독자를 설득한다. 인류는 2차대전을 겪은 후 다음 세대에게 전체주의가 얼마나 나쁜지, 왜 열린 사회가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세뇌했다. 정작 새로운 세대는 전체주의가 정말 나쁜지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전체주의가 나쁘다 앵무새처럼 되뇌이면서도 자신이 하는 전체주의적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류츠신은 지각이 없던 우리에게 극약 처방을 내린다. "5분만에 전체주의가 되는" 무대를 꾸미고서 청신처럼 될 수 있을지 묻는 것이다.


주인공 청신은 개인의 의사와 행동을 소중히 여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지고자 분투한다. 청신의 사상은  동료 바디모프를 위로하는 한 마디로 압축된다.

"인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인류에 대한 사랑은 한 사람 한 사람 사랑에서 시작돼요. 먼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하세요."

그 반대급부에는 웨이드가 있다. 야수가 표효하듯 "전진! 전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전진하라!"고  외친다. 두 사람의 대립하며 인류의 운명이 갈린다. 


청신은 웨이드가 그의 상관이던 시절에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배한다. 명령에 따라 윈텐밍을 희생해 계단 프로젝트를 이루었다. 첫 만남 때 웨이드가 건낸 말대로 '어머니를 매춘굴에 팔아 넘긴' 행동이었다. 이후 청신은 웨이드에게 지지 않았다. 웨이드의 총격에서 살아남아 검잡이 자리를 얻고, 웨이드가 하려던 광속 기술 연구를 중단시킨다.


독자는 <사신의 영생>을 읽으며 끊임없이 묻는다. 청신 대신 웨이드가 검잡이가 되었다면, 청신이 광속 연구를 허가했다면 인류는 살아남았을까. 전체주의를 따라야만 했냐는 의문이다. 웨이드만이 아니다. 지자는 삼체 세계를 대표해 인류에게 "살아남고 싶다면 전체주의를 다시 배우고 인간의 존엄을 되찾으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된다. 지구의 자살 방아쇠를 당긴 주체는 웨이드도, 청신도 아닌 "우주에서 외톨이가 되어 5분만에 전체주의로 변한" 우주선 인류였다. 전 인류의 몰살 스위치를 누르면서도 손에 손을 얹어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집단 속에서 개인의 책임을 없애는 전형적인 전체주의적 광경이었다. 


삼체 문명도 전체주의로 망했다. 인류를 희생해 자기 문명을 존속할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위협의 세기 삼체 문명에 우호적이었던 인류와 협상해 화성이라도 얻었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 문명을 위해 인류가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결과는 공멸이었다. 


류츠신은 전체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삼체 3부를 쓰지 않았다. 그는 전체주의가 개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아는 사람이다. 1부의 예원제가 삼체 문명을 지구로 부른 이유도 전체주의에 삶을 찢겨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류 운명을 결정한 이는 예원제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전진"하던 홍위병과 공산당원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작가 본인조차 우주급 전체주의를 이겨낼 방법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삼체 2부 <암흑의 숲> 말미에 뤄지는 지자를 통해 삼체 세계 감청원과 대화한다. "사랑의 싹은 우주의 다른 곳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감청원의 말에 뤄지는 "눈부신 햇빛이 암흑의 숲 속을 비추기를 바란다"고 답한다. 뤄지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류츠신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인류를 멸망시키고 다시 살려냈을까. 인류 역사가 말해주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문명이 다른 문명에 멸망했는지. 인간이 얼마나 많은 종을 멸종시켰는지. 전체주의를 걷어내고 여기까지나마 오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암흑의 숲 논리는 서로가 소통할 수조차 없는 우주에서 태어났다. 뤄지도, 류츠신도 이를 깨트리지 못했다. 


류츠신 우주에서 전체주의는 독소처럼 전 우주에 퍼졌다. 의심의 사슬에 따라 단 하나의 문명이라도 생존하기 위해 나머지 문명을 몰살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문명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모조리 사라거나 단 하나의 문명만 살아남고 끝난다. 우주에 단 하나의 문명이 남았다고 하자.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하므로 이 문명도 어차피 멸망한다. 문명과 문명이 싸우느라 차원이 줄어든 단조로운 우주 속에서. 모든 문명의 운명이 이렇게 끝나더라도 개인은 이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류츠신은 있는 힘을 짜내 전체주의 우주에서 청신을 살려냈다. 청신이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운이 아니다. 검잡이 자리를 잃은 후에도 삼체인은 유난히 청신에게 잘해준다. 청신이 전체주의와 암흑의 숲 논리로 삼체 문명을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체인은 지구를 공격할 때, 우주에서 170억년이 지나고서조차 자신을 지켜준 청신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나머지 지구인들이 전체주의와 포퓰리즘 사이를 표류하다가 2차원으로 사라진 것과 대조적이다.


청신은 웨이드보다 '보통 인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청신이 되는 길은 어렵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세계에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택하는 대신 끊임없이 탐구해 대안을 찾는다. 그럼에도 중대한 선택에서 실패했다면 인정하고 책임을 진다.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상처를 주었을지언정 다신 그러지 않으리라 반성하고 나아간다. 삼체 3부의 주제는 여기에 있다. 우주에서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가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청신이 되어야 한다. 류츠신의 치열한 사고와 최선을 다 한 결론에 <사신의 영생>은 호(好)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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