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출간을 기념하며
테드 창의 소설집 <숨>에는 무동무언증이 나온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깨달은 사람들이 움직이거나 말하기를 그만두는 병이다. <삼체> 시리즈를 읽은 독자는 잠시 무동무언증에 빠진다. 작품이 뛰어나 말을 잇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삼체>가 인류의 운명을 눈 앞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체>는 인류와 우주 간의 이야기이다. 시간 배경은 서기를 넘고 공간 배경은 우주를 채운다. 이렇게 커다란 무대에 이야기를 꽉 채우는 작품은 적다. 몇 권 안 되는 소설에 긴 세월을 견디는 인물들과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 시대를 지나며 발전할 사회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불로장생하는 주인공이 나온 작품은 많았다. 시대를 넘어 사는 주제에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똑같은 사고방식에 똑같은 말을 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알고 보니 환생한 같은 인격인 작품도 흔하다). 배경만 우주에 실제 공간 범위는 나라 하나보다 좁은 작품도 흔하다. 행성을 넘나든다며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하고 우주가 나와봐야 소행성을 요리조리 피하는 정도다. 이런 작품에는 외계인이랍시고 피부에 녹색 분장을 하고 귀가 뾰족한 인간이 나온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미래와 우주를 모르기 때문이다. 먼 미래나 태양계 너머 외계인은 윤곽을 그릴 단서조차 없다.
밑바닥에서 쌓아 올리는 어려운 상상을 류츠신은 해낸다. 지금 인류가 아는 과학과 기술을 철저하게 공부해서 확장한다. 물리 법칙에 기반한 세계에 독자가 눈치채지 못할 작은 상상을 끼워 넣는다. 덕분에 독자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류츠신의 미래 우주에 납득한다.
류츠신의 우주에 딱딱한 물리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에도 역사와 철학이 있다. 우리 세계에서 데카르트가 사유 끝에 만든 한 마디처럼 그의 우주에는 흔들리지 않는 전제가 있다. 류츠신은 가장 단단한 전제에서 시작해 인류와 우주의 관계를 뻗어 그린다. 치고받는 우주 속 관계 안에서 문명도 이야기도 쉴 틈이 없다.
사람 사이에 생겨나는 복잡한 관계나 한 사람의 미묘한 성격을 보기 좋아한다면 <삼체>는 비현실적이고 사변으로만 읽힐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장단점을 아는 작가라 잘 쓸 수 있는 내용에만 집중했다. 삼체는 시대와 세계와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다. SF 작품을 즐기지 않았더라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삼체> 3부작을 읽으면서 상상력이 세상을 어디까지 그릴 수 있는지 그저 경이로울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