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괴롭자고 선택한 길은 아니었을테니까
대학원생은 정신 건강을 챙기기 어렵다. 대학원생에겐 핑계가 없다. 일이 힘들든 사람이 힘들든 자신이 선택한 결과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멈추어도 내 손해다. 정한아 시인의 말처럼, 대학원생에게는 '파업을 해도 당신 말곤 아무도 타격받지 않을 현실' 밖에 없다.
대학원생을 갉아먹는 것들은 한도 끝도 없다. 일에 지칠 때가 그나마 낫다. 실험이 망했다면 다시 하면 된다. 그것이 몇 개월이 걸렸고,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해도 말이다. 비인간이 주는 좌절은 인간 마음 속 깊숙한 감정을 흔들지는 못한다.
사람은 사람과 부딪힐 때 다친다. 주변에 들려오는 교수 갑질은 매번 상상을 넘어섰다. 대학원생의 착취를 다룬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은 마음이 힘들어 다 읽지 못할 정도였다.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인간의 선을 넘은 교수는 공공의 적이라도 되지만, 상식의 선을 넘은 동료는 편을 가르고 다른 이를 따돌린다. 매일 가장 싫은 사람의 얼굴을 보며 같은 기구를 쓰는 삶이란 무한으로 늘어나는 n차 가해다.
스트레스를 받는데 일이 잘 될 리가 없다. 외부 요인으로 내부 능률이 떨어진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알고 있는 상황이라도 어느 순간엔 머릿속에서 다 섞이고 만다. 무엇이 장애물이고, 우연이었으며, 진정한 마음속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탓할 것은 모자란 실력뿐이다.
대학원 생활이 유독 버티기 힘든 이유는, 그것을 이해해줄 몇 안되는 사람에게 솔직히 말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사회에 대학원만큼 전문적인 영역도 없다. 어디 회사 다닌다고 할 때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 사람은 있어도, 대학원생에게 연구에 대해 묻는 사람은 같은 전공자 말고는 없다. 갈등과 고민을 털어놓기 전에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아무리 사려깊은 친구라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배경 지식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내부자이다. 그러나 갈등에 직접 연관될 수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기는 어렵고 위험하다. 실험실은 작은 사회다. 공공의 적이라는 교수에 대한 불만조차 조심해야 한다.
정신 건강 센터가 있는 학교에 다닌다면 운이 좋다. 상담사는 사회 생활이라는 버퍼 없이 마음속 깊은 생각을 터놓아도 되는 유일한 상대이다.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가 많더라도, 그런 이야기에 익숙한 상담사는 좀 더 쉽게 설명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정신 건강 센터를 이용한다. 그곳에서 나도 나에게 맞는 처방을 받았다.
어떤 이유로든 정 맞지 않다면 진로를 옮기는 것도 방법이다. 학계가 아니면 아무데서도 쓰지 않을 기술만 남았더라도, 그 기술을 익히고 계획해 행한 과정은 경력이다. 비인간과 맞닿은 업계일수록 학벌이나 학위보다 기술과 전문 지식이 중요하다. 회사에는 생각보다 대학원을 그만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가까운 친구는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야 나이와 경력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깨닫기도 했다. 그는 면접에서 어떤 일로 대학원을 그만두었는지를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았다. 삶의 시행착오 덕에 자신이 회사에 어울리는 인재임을 깨달았다고, 스스로를 내보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