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3학기에 맞이한 대학원 근신 기록
일상을 논하기에 요새 일상은 일상이 아니다. 요새 하루란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매일 최소한의 원칙은 30분 크로키와 요약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크로키는 유튜브에서 모델 동영상을 찾아 그린다. 요약 글쓰기는 작년부터 조금씩 시작했다. 인터넷 카페에 선생님이 올려준 그날의 칼럼을 네다섯 문장으로 줄이는 일이다. 하루는 길어서 크로키와 요약 글쓰기를 해도 시간이 남는다. 그럴 때는 짧은 글을 쓰거나 3D 펜으로 무언가를 만든다. 그마저도 재미없을 때는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 드라마를 본다.
훌륭한 백수 생활이지만 백수는 아니다. 나는 어엿하게 월급을 받고 있다. 월급은 대학원 연구실에서 나온다. 석사과정 대학원생의 한 달 월급은 노동의 대가로 받는 금액이 아니라, 학업을 보조하는 장학금 명분으로 받는 돈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학업을 계속하는 상황도 아니다. 내 생각에 지도교수가 내게 월급을 주는 이유는 입을 막기 위해서다.
작년에 나는 연구실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표면적으로 얻은 교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카카오톡을 대화 기록을 지우지 않고,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이면 녹음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학교의 심리 상담 센터를 다니면서는 혼자서는 얻지 못했을 깊은 가르침을 얻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을 소중히 하고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대로 별 일 없었다면 나는 상담 센터를 다니며 학업을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실 선배가 나를 되려 인권 센터에 제소하겠다고 협박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내가 결혼을 하고 신혼 여행을 간 사이에 인신 공격을 담은 메일을 보냈다. 여행에 돌아와 인신공격을 하지 말라는 답장 메일을 보내자, 그걸 빌미로 협박을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매일 내용 없는 협박 문자를 전달받으며, 인권 센터에 낼 피해 증거들을 모았다.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에게서 마지막 메일을 받았다. 새벽 두 시에 발송된 글이었다.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을 하고 싶지 않으니 제소하지 않겠지만 자신이 이러저러한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기록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였는지, 새벽에 감정에 북받쳐 쓴 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1년 치 괴롭힘에 일주일 치 괴롭힘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인권 센터에 보내려던 자료를 지도교수에게 보냈다. 지도교수는 둘을 불러서는 사건의 진위를 알고 싶지 않다며 무기한 근신을 내렸다.
그때부터 하루를 통째로 차지하던 연구실 일상이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는 비일상이 시작되었다.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애매했다. 하루는 두 달만에 연구실에 갔다. 지도교수는 ‘연구실에 물의를 일으킨’ 나를 복귀시킬 마음이 없었다. 대신 최대한 편의를 봐줄 테니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라고 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선배의 근황도 알려주었다. 큰 충격을 받고 석박사 학위를 그만두었단다. 내가 상황의 부조리함을 참지 못해 큰 일을 벌일까 경계하는 듯 보였다.
지도교수는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겪은 일 밑바닥에 ‘대학원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없지는 않겠지만, 동시에 내 사건은 누구의 삶에도 있을 법한 평범한 불운이었다. 불운이라는 단어의 ‘운’이라는 절반에는 모든 일에 스스로가 원인인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책임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은 길을 가다 싱크홀에 빠질 수 있고, 몇 달을 계획해서 간 오로라 여행에서 먹구름만 보고 돌아올 수도 있다. 싱크홀을 불운으로 인정한다면, 주변 사람을 이용하려는 소시오패스에게 휘둘린 1년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와서 내가 원하는 것은 석사 학위와, 커리어를 망친 선배가 나타나지 않을 안전한 밤길뿐이다.
나이가 들고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합리화를 자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기분 나쁜 메타 인지다. 메타 인지는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생각하는 행위이다. 보통 메타 인지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과가 높다고들 하는데, 이 상황에서 드는 메타 인지는 그저 씁쓸할 뿐이다. 나는 다시는 그를 마주하고싶지 않다. 그가 학위과정을 그만두었단 말을 들었는데도 연구실에 갈 때면 마음이 꺼림칙하다. 그러니 연구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상황이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어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