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을 떠나며
연구실을 졸업했다. 석사 과정을 졸업하지는 못했다. 자리를 정리했다. 필기도구나 메모장은 공용 탁상에 두고, 연필꽂이는 옆 자리 후배에게 주었다. 나머지는 버렸다. 입학하고 맞춘 PC를 집에 가져왔다. 석사를 수료했고, 졸업은 다음 학기다. 심사를 비롯한 행정 일 외에는 연구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
세상사는 내 노력과 무관하다. 내 삶에서조차 그렇다. 수료와 졸업 사이에 한 학기 틈이 생긴 이유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작년에 나는 일을 같이 하던 연구실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교수에게 사정을 말하고, 혼자 일을 하겠다며 독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던 선배는 실험 방해죄(?)로 고소를 하겠다, 학교 인권센터에 제소를 하겠다며 다시 나를 괴롭혔다. 과정을 기록해 고스란히 교수에게 보고했다. 결과는 쌍방 근신이었다.
3개월쯤 쉬다가 연구실에 복귀했다. 2년 동안 한 일이 모두 가해 선배와 엮여있던 탓에, 석사 4학기째에 졸업을 위한 실험을 처음부터 준비해야 했다. 교수는 지금까지 해온 일과 전혀 다른 주제를 고집했다. 지도해주는 사람 없이 밑바닥에서 출발했다. 박사 과정을 준비하며 계획했던 독립 프로젝트는 다른 후배에게 돌아가 있었다.
교수는 학생을 신경 쓰지 않을망정, 입학한 학생을 내쫓는 사람은 아니었다. 전례는 많았다. 교수와 사이가 틀어지든, 갑작스럽게 실험이 날아가든 누구나 학위는 받고 나갔다. 학칙 상으로도 석사 학위는 교수 재량에 따라 논문 없이도 받을 수 있었다. 실험을 하며, 개발 괴발 데이터를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졸업할 터였다.
그럼에도 하루라도 빨리 연구실에서 떠나고 싶었다. 연구를 하지 않기로 정한 이상, 연구실에 매여봐야 시간 낭비였다. 게다가 선배는 랩에 나오지 못할 망정 끝까지 나를 물고 놓지 않고 있었다. 교수는 나에게 직접 말했다. 그가 나의 복귀 사실을 ‘불쾌하게 여긴다’고 말이다. 연구를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날 즈음이었다. 코로나 19로 학사 일정이 늦어진 덕에 졸업 심사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 지금까지 만든 데이터를 엮어 졸업을 신청하고 싶다고 했지만 교수는 실험을 더 하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난 후 연구실 동료에게 뒷이야기를 들었다. 가해 선배가 이번 학기에 지금껏 나온 데이터를 엮어 졸업한단다. 교수는 학생을 신경 쓰지 않을 망정, 입학한 학생을 내쫓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결과가 끝난 실험을 반복하고 재현하며 하루하루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이럴 때 열심히 하겠다고 의지를 부려봐야 무력하고 우울할 뿐이다. 학기 중에는 학부 과목을 신청해 들었다. 학기가 끝나고 시간이 남자, 평소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게임을 했다.
연구실에 복귀할 때부터 예상은 했었다. 20년 8월이든 21년 2월이든 어차피 졸업은 하겠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기가 참 힘들겠다고 말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17살 때로 돌아가, 눈 뜨고 일어나면 모든 일이 끝나 있길 바랐다. 어린 내가 수능을 보고 대학에 왔듯, 어느새 20년 8월이다. 될지 안 될지도 몰랐을 실험을 끝내고 논문도 썼다. 눈 떠보니 시간이 흘렀다고 말하기에는 어렵고 힘들었다.
결과가 아무리 보잘것없든, 작은 프로젝트를 끝낸 나를 격려한다. 지도해준 사람은 없지만 도움을 준 사람들도 많았다. 석 달 먼저 연구실을 떠난 박사 선배는 자기 연구도 다 끝난 마당에 내 실험 계획을 세우는 일을 도와주었다. 함께 입학했던 동기는 내 푸념을 푸념으로 듣는 대신 문제를 포착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주었다. 곁에는 처음으로 써보는 논문의 엉터리 영어를 갈아엎고서 단어부터 새로 써준 똑똑한 반려도 있다. 대학원 생활이 좋았냐면 그럴 리 없지만,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