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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Nov 29. 2019

2020년 운동 다짐

크로스핏으로 지속 가능한 운동하기

크로스핏 3년 차 반려의 이야기다. 작년에 그는 항상 운동하던 크로스핏 체육관을 떠나 지하철 네 정거장 거리의 체육관에 갔다. 크로스핏 경기 시즌이었다. 기록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인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해야만 했다. 그는 본래 다니던 체육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전해 주었다. 크로스핏 하는 사람들이란 온갖 운동을 떠돌다 정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들 성실하고 열심히다. 하지만 그곳은 열심히 운동하는 분위기 이상이었다. 기록을 측정하던 누군가가 철봉운동을 하다 손가락 살갗이 벗겨져 피가 터졌다. 크로스핏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분이 피가 철철 나는 손바닥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동료들은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노력을 증명하는 붉은 손바닥과 피 묻은 철봉. 여기까지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뻘건 손바닥에 하얀 탄마 가루를 묻혀주며, 끝까지 하라고 북돋아주었다고 했다. 


사진의 철봉에 묻은 하얀 가루가 탄마 (탄산마그네슘) 가루


크로스핏은 자신과 벌이는 승부다. 크로스핏이 재미있는 이유는 안 되던 동작이 가능해지며 스스로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료에게 얻는 시너지 효과도 있다. 다 같이 열심히 하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운동을 해낸다. 긴장되는 분위기와 사람들의 격려 속에서 동작을 해낸다. 그러다 보니 운동 실력도 혼자 할 때보다 빨리 는다. 반려가 기록을 측정하러 갔던 체육관도 비슷했다. 고된 운동이 주는 보람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크로스핏이 위험한 순간은 성취감에 빠져 자기 몸이 어디까지 버틸지를 과대평가하는 시점이다. 운동에 슬슬 익숙해지며 슬슬 '고된 운동이 주는 보람'을 느낀다. 기꺼이 실력 이상을 해보려고 한다. '그 날의 운동'은 아무리 길어야 20분이다. 신체 능력에 정신력을 보태면 어떻게든 해낸다. 무리한 운동-성장-무리한 운동의 반복 고리다. 반복 고리는 몸을 아작 낼 때까지 빙글빙글 돌기를 멈추지 않는다. 건강해지자고 시작한 운동이 몸을 망가뜨린다. 몸 사리는 사람들만 다니던 반려의 크로스핏 체육관에서조차 몸을 다치고 못 나오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나도 같은 크로스핏 체육관에 가서 비슷한 운명을 겪을 줄은 몰랐지만. 


Google  'Crossfit injury meme' 검색 결과


반려의 '크로스핏 영업'에 넘어가 같은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대학원 생활을 버틸만한 체력을 기르기가 목표였다. 하지만 나조차 크로스핏 반복 고리를 타며 주객이 전도되기 시작했다. 운동이 끝나고서야 쓰라린 손을 알아차린 날이 있었다. 손바닥을 보니 살갗이 달랑거렸다. 스스로의 집중력에 뿌듯하기만 했다. 샤워할 때는 머리를 제대로 감지도 못했지만. 


크로스핏을 시작하고서 왼쪽 손목으로만 보험금을 세 번 탔다. 처음에는 손목 보호대 없이 바벨을 들다 삐끗했다. 무지가 부른 사고였다. 두 번째부터는 변명할 여지없이 크로스핏 반복 고리를 탄 결과였다. 처음으로 손목을 다친 후, 몇 달간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아도 손목은 절대 낫지 않았다. 일부러 염증을 일으켜 손목 인대를 회복시킨다는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고 몇 주가 지나자 버피를 해도 손목이 더 이상 시큰거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 올리고, 물구나무 푸시업을 완성하고 싶었다. 몇 번은 괜찮았다. 아프지 않은 손목을 운동을 계속해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어느 순간 손목이 다시 시큰거렸다. 지난번에도 그랬듯, 아무리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마사지 젤을 발라도 손목은 회복되지 않았다. 다시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고서 몇 주 지나서야 왼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고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내년의 운동 목표는 무거운 중량이나 철봉 동작이 아니다. 한 해 동안 손목으로 병원을 가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살아있는 가장 젊은 날이다. 내 남은 삶을 함께할 내 몸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운동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다.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 운동 후 느끼는 보람도, 성장하는 기분도 소중하다. 


자신과의 경쟁은 행동과 보상의 사슬을 끊는 싸움이 되어야 한다.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을 얻되, 제 몸을 망치지는 않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정신력으로 운동 기록을 경신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대신 삶에 운동을 더 오랫동안 두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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